【서울=뉴시스】오동현 기자 = 프로축구 K리그 원년 멤버 울산현대가 1983년 팀 창단 이후 30년 만에 처음으로 아시아 정상에 등극하는 기쁨을 만끽했다. 10개월 간 치열한 경쟁을 거친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가 울산의 우승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울산은 조별리그(4승2무)부터 토너먼트(6승)까지 총 12경기 무패 행진을 내달리며 결승에 올라 지난 10일 홈경기에서 알 아흘리(사우디아라비아)를 3-0으로 꺾고 안방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알 이티하드(2005년·사우디아라비아), 우라와 레즈(2007년), 감바 오사카(2008년·이상 일본)에 이어 역대 네 번째 무패 우승팀의 주인공이 됐다. 최다연승(9연승) 신기록이라는 금자탑도 쌓았다. 김호곤 울산 감독(61)은 실업선수로 나선 뒤 40년 축구 인생 중 가장 화려한 업적을 남기며 아시아 클럽 최고의 명장으로 우뚝 섰다. 1983년 울산 코치를 시작으로 지도자와 축구 행정가로 30년을 보냈다. 2009년 울산의 지휘봉을 잡은 김 감독은 풍부한 경험을 앞세워 3년 만에 강력한 ‘철퇴축구’를 완성했다.
▲김호곤 감독의 ‘神의 한 수’
김호곤 감독이 지휘하는 울산은 10일 울산문수구장에서 열린 알 아흘리와의 2012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곽태휘(31)와 하피냐(25), 김승용(27)의 연속골로 3-0 완승을 거뒀다. 1983년 울산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김 감독은 30년의 풍부한 경험을 갖춘 K리그 최고령 감독이다. 국가대표팀을 이끈 경력도 화려하다. 1986년 멕시코월드컵 당시 수석코치를 맡아 본선행을 도왔고,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는 감독으로 8강을 이끌었다. 그러나 프로팀 사령탑으로선 이렇다 할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지난해 K리그 컵대회 우승이 유일했다. 이번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이 프로에서 쌓은 두 번째 우승 경력이다. 올해 울산은 한때 K리그, FA컵, AFC 챔피언스리그 등 ‘세 마리 토끼’를 모두 노릴 만큼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대표팀 차출 등 빠듯한 일정 소화로 선수들의 체력이 급격히 고갈돼 고비를 맞았다. 결국 김 감독은 K리그를 내려놓고 AFC 챔피언스리그에 모든 것을 걸기로 했다. 욕심을 버리고 선택과 집중을 택했다. 주전 선수들의 체력을 안배하며 K리그 경기에 투입했다. 특히 울산의 ‘필승 카드’ 김신욱(24)과 이근호(27)의 ‘빅 앤드 스몰’ 조합을 아꼈다. 2014브라질월드컵 최종예선 이란 원정(10월17일)으로 빠진 2경기를 포함해 4경기 연속 K리그에 출전시키지 않았다. 대신 AFC 챔피언스리그에 집중하게 했다. 김 감독의 작전은 적중했다. 결승전에서 김신욱과 이근호는 가벼운 몸놀림으로 3-0 완승에 기여했다. 특히 이근호는 후반 30분 김승용의 골을 돕는 완벽한 크로스로 공격포인트를 작성했다. 김 감독이 선수를 보는 안목도 빛났다. 올 여름 J리그 감바 오사카에서 영입한 브라질 출신의 하피냐는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득점을 포함해 7골을 퍼부으며 숨은 진주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3년전 울산의 지휘봉을 잡은 김 감독은 3년 만에 울산의 ‘철퇴축구’를 완성했다. 김영광(29), 곽태휘를 필두로 수비 조직력을 강화한 뒤 최전방 공격수 김신욱, 이근호, 김승용 등을 통한 강력한 한 방으로 울산은 AFC 챔피언스리그 12경기에서 24득점 10실점을 기록했다. 공수에서 안정적인 밸런스를 보였다. 김 감독은 “감독으로서 내 축구인생 가장 기쁜 날”이라며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이다”고 기뻐했다. 울산은 골키퍼 김영광을 비롯해 곽태휘, 김신욱, 이근호 등 대표팀 단골들이 대거 포진해 전력 누수를 피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이 대신 잇몸으로 버텼고 해당 선수들은 강한 체력과 정신력으로 소속팀 울산의 우승을 이끌었다. 이에 대해 김 감독은 “K리그와 병행하면서 어려움이 많았지만 참아준 선수들에게 고맙다”며 선수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명예와 돈' 세계 무대 노크
아시아 챔피언 울산은 이제 세계 무대에 도전한다. 울산은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팀 자격으로 12월6일부터 16일까지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월드컵에 출전한다. 아시아, 유럽, 남미, 아프리카 등 각 대륙의 챔피언 클럽들이 벌이는 세계 대회다. 이번 클럽월드컵에는 아시아를 대표한 울산을 비롯해 북중미 대표 CF몬테레이(멕시코), 남미 코린티안스(브라질), 유럽 첼시(잉글랜드), 오세아니아 오클랜드시티(뉴질랜드) 등 5개 팀의 출전이 확정됐다. 개최국 자격으로 J리그 챔피언이 자동출전권을 얻었고, 아프리카 우승팀까지 총 7개 팀이 세계 최고 클럽을 가리기 위해 치열한 혈전을 펼친다. 대진 추첨 결과 유럽과 남미 대표는 시드를 받아 준결승에 안착했다. 울산은 12월9일 오후 4시 아이치현 도요타스타디움에서 북중미 우승팀 CF몬테레이와 준준결승을 치른다. 몬테레이만 누른다면 준결승에서 유럽 챔피언 첼시와 만나게 된다. 국내 축구팬들이 가장 손꼽아 기다리는 꿈의 대결이다. K리그 팀이 클럽월드컵에서 유럽 대표와 만난 적은 한 차례 뿐이었다. 지난 2010년 성남이 준결승전에서 인터 밀란(이탈리아)을 만났다. 그러나 0-3으로 패해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해야 했다.
김호곤 감독은 “2009년과 2010년 클럽월드컵을 통해 K리그가 세계적인 팀들과 실력 차이가 난다는 것을 실감했다. 쉽지는 않겠지만 한국 축구의 위상을 올릴 수 있도록 도전하겠다. K리그가 세계 최고 수준으로 가는 준비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잘 준비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울산은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상금으로 150만 달러(약 16억원)를 챙겼다. 앞서 조별리그와 8강전, 준결승 승리수당과 원정지원금 등으로 확보한 65만 달러(약 7억원)도 고스란히 울산의 몫이다. 10승2무로 단 한 번도 지지 않아 승리수당도 많아졌다. 아시아 챔피언 자격으로 참가하는 클럽월드컵은 출전만 해도 두둑한 상금이 주어진다. 클럽월드컵 우승 상금은 500만 달러(약 54억원)이며, 준우승 400만 달러, 3위 250만 달러, 4위 200만 달러, 5위 150만 달러, 6위에 100만 달러가 주어진다. 울산은 준준결승에서 몬테레이에 져도 6위를 확보하기 때문에 100만 달러를 챙길 수 있다. 챔피언스리그 우승으로 최소 34억 원을 벌어들인 울산이다.
▲이근호 AFC ‘올해의 선수’ 야망
이근호는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로피와 함께 최우수선수(MVP)상을 거머쥐는 겹경사를 누렸다. 그는 올해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빠른 발과 폭발적인 득점력을 앞세워 팀 우승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 12경기 전 경기에 출장해 4골 7도움을 기록했다. 결승전에서는 골을 터뜨리지 못했지만 상대 문전을 끊임없이 휘저으며 동료 선수들에게 득점 기회를 제공했다. 후반 30분에는 김승용의 골을 돕는 완벽한 크로스로 공격포인트를 작성했다. 대회 MVP에 선정된 이근호는 프로생활 이후 처음으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짜릿함도 맛봤다. 그는 “MVP를 받을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축구를 하면서 받은 가장 큰 상이라고 생각돼 너무 기쁘다”며 “내가 상을 받기는 했지만 다른 선수들이 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팀 동료 모두가 잘 했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이날 대회 MVP를 수상함으로써 이근호가 AFC 올해의 선수에 선정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국은 1991년 김주성(현 대한축구협회 사무총장) 이후 21년 동안 AFC 올해의 선수를 배출하지 못했다. 이근호는 “내가 AFC 올해의 선수 후보라는 것을 뉴스를 통해 알았다. 오늘 결과로 인해서 더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받았으면 좋겠다”며 수상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올 시즌을 끝으로 잠시 울산을 떠난다. 내년부터 상주상무에서 활약하며 병역 의무를 이행한다. 다행히 12월 열리는 클럽월드컵 출전은 가능하다. 전 세계가 지켜보는 클럽월드컵에서 이근호가 다시 한 번 날아오를 수 있을 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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