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성악가 엄정행(38) 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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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성악가 엄정행(38) 동문

3,169 사무국 2005.07.02 11:57
부산광역시가 격월로 발행하는 [부산이야기 7.8월호]에 게제된 엄정행(38) 동문의 기사를 옮겨 싫었습니다.

나의 망향가 - 성악가 엄 정 행

국민 성악가 최고의 명성

동래고에서 배구선수 맹활약…

"일정이 바쁠 때도 부산에서의 공연에는 빠지는 법이 없었다"는 엄정행. 그는 "'엄정행 성악콩쿠르'를 응원해 주시는 분들을 위해서라도 조만간 부산에서 다시 공연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라틴 팝의 대부'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축구 선수였던 그는 부상으로 선수생활을 할 수 없게 되자 제2의 선택으로 음악을 시작했다. 뒤늦게 입문했지만 타고난 목소리와 뛰어난 감성을 가졌던 그는 결국 전세계적으로 2억5천만장의 앨범을 팔아치운 스타가 됐다.
국내에도 이렇게 운동 선수였다가 음악으로 전공을 바꿔서 대성한 경우가 있다. 성악가 엄정행(62)이 그 주인공. 고교 3학년까지 배구선수였던 그는 대학입시를 한달 남겨놓고 음악으로 전공을 바꿨지만 국내 최고의 테너가 됐다.

배구선수에서 성악가로
엄정행은 1943년 부산 인근인 경남 양산에서 출생했다. 그는 동래고등학교 배구부에서 세터로 활동했다. 단신이라는 약점을 감각적인 토스 능력으로 이겨내고 있던 그에게 위기가 찾아온 것은 고교 3학년 2학기 무렵.
9인제 배구가 6인제로 바뀌면서 각 대학들이 특기생 정원을 대폭 축소한 것이다. 경희대학교 체육대학을 목표로 하고 있던 엄정행은 6인제 배구에서는 자신의 자리가 없다고 판단했고 운동을 그만 뒀다. 그리고 시작한 것이 성악. 음악 교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클래식을 즐겨 듣고 노래도 곧잘 불렀지만 단 한번도 개인지도를 받은 적이 없었던 그로서는 도박에 가까운 선택이었다.
그러나 부모님에게서 '좋은 악기'를 물려받았기 때문에 목소리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고 결국 한달 간의 연습만으로 경희대 음대에 진학하는데 성공했다. 그는 입학 이후 다른 학생들이 이미 다 알고 있는 음악 이론을 하나하나 새롭게 공부해야 했다. 그만큼 힘이 들었고 전문 성악가가 돼야겠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한달 25회 이상 공연
때문에 졸업 이후 7년 간은 아예 성악을 떠나 있었다. 악기 장사를 하기도 했고 커피숍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자신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성악으로 돌아왔다. 결심을 굳힌 이후에는 남들보다 몇 배 이상으로 노력했다.
학창시절 운동선수였던 사실은 이 때 도움이 됐다고. 체력에는 자신이 있었던 데다 운동 선수시절 쌓아온 끈기가 뿜어져 나왔다고 한다. 성악가로 성공하면서 성균관대 교수가 된 그는 한때 월 25회 공연이라는 초인적인 일정을 소화하기도 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팬을 가진 그에게 공연 요청이 끊이질 않았던 것. 늦게 시작했지만 음악에 대한 사랑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기에 일정을 모두 소화했고 최고의 명성을 쌓아갈 수 있었다.

'엄정행 전국 성악 콩쿠르' 전념
그는 그러나 최근에는 공연을 줄이고 있다. 이제는 후진 양성에 힘을 쏟고 싶기 때문. 지난 2003년 시작된 '엄정행 전국 성악 콩쿠르'에도 많은 정성을 들이고 있다. 성악 콩쿠르로는 드물게 생존인물을 기념하게 위해 만든 이 행사에는 전국 초·중·고 학생과 대학생, 그리고 일반인 등이 참가한다. 올해도 200여명이 참가하는 성황을 이뤘다. 그는 젊은 인재를 구하는 데 매우 적극적이지만 성악가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정확한 현실인식을 강조한다.
본격적으로 성악을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명망 있는 음악가를 찾아가 자신의 목소리를 검증 받아야 한다는 것.
"좋은 선생님이 포기할 것을 권하면 무리하지 말고 빨리 진로를 바꾸는 것이 현명하다"고 충고한다.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성악을 전공하는 것은 스스로 불행해 지는 길"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자신만의 음악세계 개척해야
아직 재능을 알 수 없는 어린 학생들에게 조기 교육을 시키는 것도 좋지 않다고 말했다. 성악은 어차피 변성기 이후에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어린 시절에는 피아노 등의 악기를 배우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는 것. "악보를 공부하거나 하면서 음악 전반에 대한 기초를 닦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최근 들어 외국 성악가의 CD를 쉽게 구할 수 있고 원하는 악보도 얼마든지 볼 수 있게 된 것도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한다.
공부할 수 있는 자료는 풍부해졌지만 그만큼 흉내내기에 익숙해졌기 때문. 그가 음악을 배울 때는 악보도 제대로 없었지만 다른 사람의 창법을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어 갔다며 안타까워했다.
"일정이 바쁠 때도 부산에서의 공연에는 빠지는 법이 없었다"는 엄정행. 그는 "'엄정행 성악콩쿠르'를 응원해 주시는 분들을 위해서라도 조만간 부산에서 다시 공연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 종 우 부산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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