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80을 넘어 주위의 잡동사니 소지품을 정리는데 우연히 1962년 내가 동래고등학교를 졸업할
당시 동고 주보를 발견하고 그 기사 중에 아직 건강하게 한번씩 만나는 친구인 신상석 동기생이
게제한 글을 읽는다. 친구는 당시 총학생회장이는데 군사 정부때인지라 총학생회를 재건학생회라 불렀는가 보다.
모교를 떠나면서
3학년 신 상 석
더 높게 갠 창공의 푸른 색깔 속에 한껏 가슴 해쳐놓고,
이젠 저 망월대와도 이별을 서러워할 즈음!
지긋이 눈을 감아 보았다.
"우람히 굽이 처 온 아세아의 거창한 얼이 여기 장산 기름진 벌 끝 그 염원을 이루었나니. ,"
귓전에 울려 퍼지는 교가의 메아리 속에 몸과 마음을 실어 온 지 3년! 벌써 졸업이란다.
운동장 한 모퉁이 휘늘어진 수양버들 가지에 파릇파릇 새싹이 움트고 스탠드 위의 고목에도 벚꽃이 만발했단
그때 남이야 뭐라든 새 모자 새 교복에 마냥 마음이 들뜨던 때가 엊그제 같기만 하다.
이 나라의 가장 중요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만들었던 교정의 3년 생활. 4.18 동고 학생 의거에 뒤 이어 4.19
그리고 제2 공화국 또다시 군사 혁명을 체험한 기간들 설사 내일에는 어떠한 비운이 우릴 울릴지라도, 아니
종말에는 쓰디쓴 웃음을 짓고 그야말로 소금기 없는 눈물을 감출지라도 우린 그래도 언제까지나 꽃피우지
못할 것 같은 역사를 일깨워 주기도 했고, 이 땅에서 영원히 말살되려는 정의를 위하여 목숨을 걸어 놓고
자유와 평화를 부러 짓기도 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신조요 동고의 기백이요 또한 선배님으로부터 물러 받은
값진 전통의 진리 인지도 모르겠다.
900 아우 여러분! 이 학교에 다니는 동안 불요불굴의 정신으로 정의를 위해서는 항상 과감할 것을 배워서 장차
이 민족의 초석이 되어 주길 간절히 바라는 바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불의에 굽히지 않고 용감히 분발해야 한다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강조해 둡니다. "불의에 굴하지 마라!
그리고 용감하라"는 곽상훈 선배님의 목멘 절규가 다시 한번 생각납니다.
아우 여러분! 우리는 그동안 상급생으로서 그리고 형으로서 여러 가지 면에서 미숙한 점이 없잖아 있었겠지만
모교를 떠나는 형들로서 마지막 한 가지 부탁하고자 합니다.
주보를 통해서 몇 번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만 여러분! 지금 우리들의 가장 무서운 적이 무엇인지
생각하신 적이 있습니가? 바로 태만입니다. 이것은 가장 무서운 우리의 병이요 영원히 우리의 장래를 망치게
하는 적입니다. 중국 속담에 있는 마철저는 쇠공이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고사가 있다는 이야기를 언젠가
했습니다만 지금 졸업을 하는 마당에서 우리는 이 단점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그 찬란하던 꿈을 단순히 태만이라는 이유로 산산이 부셔 저 나갈 때 그때는 단장의 비애를 맛보게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우리 다 같이 노력합시다. 이 말 외에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마지막으로 부탁드리는 것은 선배님 들로부터 받아 전해온 불멸의 전통을 이제 여러분께 물려주노니 각자 각자는
굳센 행동의 요람이란 이름을 헛되지 않게 보다 나은 동생들이 되어줄길 아울러 당부드립니다.
우리가 겪고 생가해 온 가지가지의 형극의 여로를 회상하면서 하나하나 마음 한구석에 잠재시켜놓은 추억의 실마리를
풀어 보니 어쩔 수 없이 흘려버린 날들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과 쓸쓸히 젖어 드는 감회가 다시 한번 새람스럽게 느껴집니다.
지금까지 동고의 선후배가 한 지붕 밑에서 배워왔으니 어쩜 영원히 못 만날 이별이 될지도 무르니 정다운 얼굴이나 익혀 두기로 합시다.
태산보다 높고 말로서 다 표현 못 할 스승 님과 부모 님의 은혜와 은공을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내일을 향한 역군이
되기를 우리 모두 명세합시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