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북알프스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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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북알프스산행기

2,317 임환무(39) 2004.10.05 13:11

일본 북알프스 오꾸호다까다게산행을 마치고
39회 임환무

첫날 (8월 21일 목요일 맑음) 1. 출국과 입국 이 불경기에 가게 문을 닫고 만만치 않는 경비를 들여가며 일본의 북알프스를 타려고 마음먹은 것은 근래 가까운 친구들의 예고 없는 타계도 그렇고 H재벌의 최고 경영자도 인생살이 마음고생으로 21층 좁은 창문으로 뛰어내려는 비극을 보니 나는 지금껏 어떻게 살아왔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잘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찹찹함이 가슴을 누르고 있는 쯤 망월산악회가 처음 예정했던 중국 관광을 샤스로 취소하고 갑자기 일본의 북알프스 산행과 도쿄관광을 목적으로 여행지를 변경하게 되었다.


산행보다 2일간의 도쿄시내 관광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나는 1944년 일본의 도쿄인근 죠후시(調布市)에서 태어나 45년 해방과 동시 귀국하였고, 이제 나이 60이 되니 안태고향을 찾아보고 싶은 마음 간절했었다. 한갓 미물인 연어도 동해안 이름 모를 하천에서 알을 깨고 태평양을 건너 알라스카 까지 갔다가 성장하면 모천으로 회귀한다지 않는가.

이번에 산행을 마치고 짬을 내서 안태고향을 캠코더로 찍어 88세의 노모에게 보여드리는 효도?도 해보자는 속셈에서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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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공항의 필자 부부)

아내와 함께 간단히 짐을 꾸려 김해공항으로 나가니 망월산악회원들 40여명이 모이기 시작한다. 여행 스케줄과 운임을 고려하여 JAL기로 가기로 되었다. 이륙하기위해 주 활주로로 나가기 직전 1번 엔진에 이상이 있어 기내에서 잠시 기다리라며 시동을 끄고 점검에 들어간다,
만약 상공을 박차고 오르다 이상이 발생했다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슬데 없는 걱정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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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내에서 본 나고야 상공)

20여분 지났을까 비행기가 힘차게 이륙하고 기내식으로 점심을 먹고 나니 나고야 상공이다. 우리말로 나오는 기내 방송은 현지 공항 상태 좋다며 곧 착륙한다는 시그널이 들어왔다.
입국심사를 마치고 나고야 공항을 빠져나오니 우리를 6일간 태우고 다닐 대절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좌석은 자동적으로 선배님들을 앞자리로 모신다.
이번 산행은 위로는 30회 기수부터 신상우 동문의 아들이 초등학생이니 3세대가 혼합되어있지만 모두들 산에서 만나고 행사 때 만나 안면이 있는 동문들과 가족이라 정겹다. 2. 나고야(名古屋)에서 마쯔모도(松本)로 망월가족을 환영하는 듯 일본의 날씨는 무덥긴 하지만 화창하다.
버스는 마쯔모도까지 약 210km가 넘는 왕복 4차선인 중앙고속도로(중앙자동차도라 한다)를 타고 북상한다. 고속도로 상에는 우리나라의 휴게소인 SA(service area)가 있고 주로 화물차나 정비차량이 머무는 PA(parking area)가 있다. 휴게소는 우리나라와 다를 것이 없으나 일부 SA의 슈퍼마켓은 고속도로 주변의 주부들이 장바구니를 들고 들어와 찬거리를 구입하는 듯 하다.
가격은 무척비사다. 우리나라에서 500원하는 아이스바를 약 1,500원한다. 녹차는 공짜다. 고속도로변은 산이 많고 가끔 보이는 논에는 벼가 심어져있어 산허리를 돌때마다 깜짝 깜짝 놀라게 하는 자동차 좌측통행만 빼면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일본의 고속도로도 터널이 많다. 중앙자동차도의 중간지점에 惠邪山터널은 길이가 8,490m라니 우리 이수로 10리가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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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 휴게소의 필자)

우리나라는 무조건 터널만 뚫으면 자연을 훼손하는 냥 경부고속전철 터널통과를 반대하고 있는 단체들의 인식에 문제는 없는가? 저녁은 예약해둔 고속도로의 어느 SA식당에서 일식으로 먹었다. 오후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마쯔모도에 도착했다.
시내 중앙에 역사가 있고 조용한 전형적인 중소도시다. 공교롭게도 대절버스는 ABC관광이데, 숙소는 123호텔이다. 이 호텔은 로비에 상주 직원이 보이지 않는다. 일반 손님은 주로 인터넷으로 예약 하고 자동체크인 기계(은행의 현금지급기 같은 것)를 조작 하며 지시에 따라 현금을 넣으니 카드형 룸 키가 나온다, 키가 없으면 로비에서 롬으로 통하는 자동문을 열수 없어 복도에도 들어 갈수 없다.
방은 침대와 꼭 필요한 물건만 있는 아주 경제적으로 비치된 좁은 비즈니스형 호텔이다. 인터넷룸, 식당, 휴게실 겸용인 로비에서 집행부는 내일 산행계획을 간단히 검토하고 잠자리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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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지니스 호텔의 휴게실에서 산행일정 점검중인 집행부)

둘째 날 (8월 22일 금요일 맑음) 1. 유원지 가미고지(上高地) 마쯔모토의 아침이 상쾌하다. 일찍 일어난 대원들은 호텔 인근의 마쯔모토성을 둘러보고 왔다. 아침 식사는 빵과 쥬스, 커피를 곁들인 서양식이지만 모두들 식성이 좋은지 빵이 여러 판 나왔다. 7시10분 산행을 위한 베이스켐프격인 가미고지로 향한다. 시내를 빠져나가니 완전히 시골 냄새가 난다.
일본식 주택의 곧바른 지붕과 까만 기와와 처마의 어울림이 자연과 조화를 이룬다 주택은 주로 2층이고 1층에는 어김없이 주차장이다. 신시마지마를 지나면서 차는 계곡을 끼고 험악한 산악지대로 접어든다. 계곡을 곡선 콘크리트 벽을 막아 만던 땜들이 여러 개 있어 규모는 작지만 효율적으로 전력을 생산 하고 있다.
이인호 선배님이 산행중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이용하라며 예쁜 고리에 끼운 휘슬을 전 대원에게 나누어 주며 산행 안전에 대한 간단한 조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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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계곡의 간이 콘크리트 전력땜이 멀리 보인다)

조금 더 오르니 中ノ湯 온천지대다. 집집마다 노천탕도 있고 숙박시설과 음식이 있다는 깃발을 세워놓았다. 이 동내에 대형주차장이 있어 시즌에는 자가용 승용차는 이 동내에서 멈추어야한다.
여기서부터 노선버스와 대절버스, 택시만 들어 갈수 있다. 길은 좁아지고 도로는 터널이 많다. 터널도 겨우 차 한대가 다닐 수 있으며 자연 동굴을 징으로 쪼아 만든 터널도 보인다. 터널 안에 삼거리도 있고 신호등도 있는데 신호를 칼같이 지킨다.
관광지 개발의 귀재 일본인들이 진입로를 확장하지 않고 이렇게 놔두는지 의아 했는데 알고 보니 이 지역은 지진 위험지역이라 터널을 함부로 확장하지 못하고 있단다.
긴 터널을 빠져나오니 길 왼쪽에 大正池라는 큰 호수가 나타난다. 아침 안개가 자욱하게 낀 아름다운 호수는 한 폭의 동양화다. 한마디로 입이 벌어져 닫치지 않는다고 표현하면 이해될까?
가미고지 터미널에 도착하니 공기가 신선하다. 우리가 등정할 오꾸호다까다게(3,190m)가 위풍도 당당하게 우리들을 맞이한다. 병풍처럼 드리워진 산자락에는 8월의 혹서에도 흰눈이 녹지 않고 흘러내려 아름다운 산의 위용에 또 한번 놀란다. 카메라 셔터를 마구 눌러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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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미고지 유원지 주차장에서 본 오꾸호다까다케)

가미고지는 해발 1,500m가 넘는 고산지대이며 1800년대 등산 선교활동을 하던 어느 신부에 의해 개발되기 시작한 고산유원지이며 “빙벽”이라는 소설의 무대가 되었던 일본에서 손꼽히는 산악유원지다. 입장료가 없다.
그러나 화장실을 이용 할 때는 100엔 정도를 희사하도록 동전 통이 있다. 이곳에는 기념품 판매소도 있고 식당과 호텔도 자연과 어울리게 잘 지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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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오를 일본의 제3봉 호다까다케가 보인다)

젊은 산 꾼들은 입산신고를 스스로 적어 통에 넣고 간다. 산악전시관에는 산행 정보를 제공한다. 산행을 마치고 내일 저녁 이 지점으로 돌아오는 원점 회기 산행이다.
높은 산을 오를때는 눈썹도 빼놓고 가라지 않는가. 짐은 최대한 줄인다. 구형 비디오카메라는 무거워 차에 두고 새로 구입한 디지털카메라를 단단히 챙기고, 점심도시락을 지급받아 배낭에 넣었다. 빙 둘러서서 “차렸" 경례 “망월”간단한 발대식을 했다.
2. 요꼬산장에서 A, B조가 갈라지고 우리 일행은 약 4시간 반 정도 예정하고 1차 목적지인 요꼬산장까지 거의 평지같은 완만한 길을 트레킹 한다. 묘진다게(2,931m)산을 끼고 흐르는 모래와 자갈이 하얗게 깔린 강 가에는 폭우때 휩슬려 내려온 듯 고목 나뭇가지들이 중간 중간 걸려있다.
유유히 흐르는 옥빛 강물을 1급수를 넘어 특급수다. 맑은 물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자연의 보고(寶庫)를 잘 보존하고 있는 일본인들이 부럽다. 3시간가량 숲길을 걸어 묘진관을 지나 한시간 정도 올라가니 도꾸사와 산장이 있다. 목조건물로 만든 산장에는 맑은 물에 음료수와 사과를 띄어놓고 판다. 사과 한 개에 1,000원꼴이다. 수통에 물을 채우려고 수도 깐에 가니 손으로 펌프를 저어야 물이 나온다. 맑은 물이 무진장 많지만 물을 아끼자는 의미가 담긴 것 같다.
여기서부터는 아름들이 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한 시간여 더 올라가니 제법 긴 현수교인 요꼬대교가 보이고 창문이 총총 달린 목조 산장건물이 있는 1차 목적지 요꼬산장이다. 여기서 10여년전 1차 해외산행때

우리 팀이 올라갔던 야리다게로 갈수도 있고 호다까다게로도 갈수 있는 갈림길이다. 일본인과 외국인들이 산행준비를 하는 곳이기도 하다. 준비해간 도시락을 먹는다. 옆자리 일본인들에게 우리 김을 몇 장 주니 고맙다는 인사를 꾸벅하며 껌같이 생긴 조림 김을 답례로 준다. 한국 김이 맛있다며 여러번 인사를 하니 간지럽다. 요꼬대교앞에서 전 대원 기념 촬영을 했다.
A팀 19명은 계곡 반대쪽 코스를 타고 다시 가미고지로 내려가고 B팀 21명은 호다까다게 산장을 향해 본격적인 산행하게 된다. 이제 B팀의 산행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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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원이 호다까다케산을 배경으로 촬영하고 반으로 나뉜다.)

3. 호다까다게 산장으로 어둡기 전에 가야한다. 요꼬산장이 1,600m고지이니 3,000m고지에 있는 산장까지 고도1,400여m를 올라가야한다. 요꼬계곡의 양옆에는 깍아지른 절벽이 웅장하고 험악해진다. 계곡을 흐르는 물살도 급해진다.
개울을 이리저리 지날 때는 징검다리나 쇠줄다리가 놓여 산을 오르기는 쉽다. 일본인들과 마주치면 “곤니찌와”하며 인사한다. 그러나 같이 동행을 하면서도 말을 걸어오지 않는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배려에서 일까? 주로 내가 짧은 일본어를 시험해보기 위해 이런 저런 말을 걸어보면 친절히 대답해준다.
일본인은 중년 부부가 많고 서툰 일본어로 나이를 물으니 나와 동갑네기 일본아주머니를 두명이나 만났다. 한 아주머니는 수년전 대전에 가보았단다. 일본도 여태껏 찔끔 찔끔 비가 왔는데, 이렇게 좋은 날씨는 행운이란다. 병풍머리계곡을 돌아 더니 멀리 호다까다게 산에서 솟아져 내려온 너덜지대가 접부채처럼 드리워져있고 녹지 않은 눈이 덮여 있으니 고산의 진풍경이다.
눈은 9월까지 하루에 10~20cm씩 녹아내리다가 10월이 되면 다시 그 위에 새눈이 내려 또 쌓인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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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인데도 산행길옆에 잔설이 남아있다)

멀리 가라자와 산장이 있다는 깃대가 숲속에서 나부낀다. 힘이 솟는다. 눈밭을 끼고 산행을 한다. 눈은 흙면지가 덮혀 꺼뭇꺼뭇하다. 한 여름에 자연의 눈을 한줌 집어 등어리에 넣으니 정신이 번쩍 난다. 가라사와는 약 500m거리를 두고 휫데(독일어 Hutte로 산막)와 고야(일본어로 小屋이라하여 대피소라는 뜻)가 나란히 있고 산장 사이에는 유료 캠핑장으로 이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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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사와 횟데 뒤로 정상이 보인다. 수통에 물을 체운다)

우리는 왼쪽의 휫데로 올라갔다. 화장실에 들어가니 자동 센서가 유료화장실이라 는 멘트가 계속 나온다. 동전을 없어 그냥 실례를 했다. 이 산장에도 음료수와 어묵과 같은 먹을거리를 팔고 있고 노천전망대 같은 홀에서 맥주를 마시며 경관을 즐기는 산꾼들도 많다. 수통에 물을 채우고 건너편 가라자와고야(小屋)뒷 쪽으로 나있는 산행길은 본격적인 너덜지대 급경사로 정상까지 갈지자로 올라가야 한다.
크고 작은 바위와 자갈이 썩인 돌밭길이라 길을 찾기 힘들다. 관리소에서 페인트 스프레이로 ⊙↗↙표시를 해두어 그대로 따라가야지 잘못 길을 들면 다시 돌아와야 한다. 숨이 차고 약간 어지럽다. 내 시계고도계로 2,500m을 넘고 있다.
고산증세인 것 같다. 이럴 때는 천천히 올라가야 한다는 가이드의 말이 생각난다. 해는 지려고 하는데 갈 길은 아직 멀다. 은근히 마음이 급해진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산장이 성냥갑만 하다. “망월~~”이라 고함을 질렀다.
이인호 고문님이 손으로 “쉿”하신다. 그러고 보니 일본사람들은 산에서 일체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야호”가 일본말이니 뭐니 하는 것은 근거가 없다. 일본에는 “야호”가 없다. 드디어 저녁 6시 30분 일몰직전 호다까다게산장에 도착했다. 해발 3,000m산장은 만원이다.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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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다까다케 산장에서본 운무)

오버트라우져를 꺼내 입었다. 일찍 온 우리대원들은 일몰을 보려고 산장 옆에 있는 가라자와다게 중턱에 올라가있다. 이 산장에서 오늘 1박한다. 산장은 동서로 창이 있어 일몰과 일출 홀 안에서 보도록 지어져있다.
산장 뒤에 빗물을 저장하는 물탱크가 여러 개 있고 발전기가 있어 전기불이 들어온다. 풍력발전기도 열심히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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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다까다케에서 본 일몰장면)

태양이 구름 밑으로 거창하게 빨려 들어가는 일몰을 보고 산장에 들어오니 깨끗한 시설이 마음에 든다. 먼 저온 산꾼들이 홀에 설치된 영상장치로 산악 비디오를 감상하고 있다.
책장에는 여러 종류의 책들이 가득하다. 실내로 연결된 화장실에는 세면시설도 되어있고 화장실은 유료다. 식당앞 프론트에는 먹을거리도 팔고있다. 천명수라 명패를 붙인 수도꼭지의 식수는 1리터에 150엔을 받는다.
숙박하는 손님은 공짜다. 방을 2개 배정받아 배낭을 챙긴 후 세면을 하고 오후 7시가 넘어 저녁을 먹는다. 밥과 일본된장국(미소시루)이 나오고 반찬은 산장식 치고는 일류다. 양도 많이 준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산장은 1박 3식에 우리 돈으로 10만원 정도다.
모든 식자재를 헬기로 운반한다고 하니 이해가 간다. 10시에 소등을 하니 내일 정상공격을 위해 일찍 자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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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3식에 10만원이 넘는 산장의 저녁식사 시간)

공교롭게도 방 한개는 10년 전 1차 해외 산행 때 묵었던 그 방이다. 그때 형석이가 등산화를 잃어버리고 슬리퍼를 신고 하산했던 그 산장이란다. 등산화를 단단히 챙겼다. 방 배정이다. 39회인 필자는 선배님 방으로 가면 막내가 되고 후배들 방으로 오면 최고참이니 후배들 방에서 명당을 골랐다.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남여 방이 구별되지 못해 선배님과 동행인 여 대원 2명이 다락방이 있는 우리 방으로 오셨다. 부득이 나는 선배 방으로 밀려가 매트리스 닭털이불과 모포를 깔아드리고 나는 문간에 자리를 잡았다.
다다미 2장에 3명이 자야하니 비좁다. 이왕 끼여 자려면 후배들 방으로 꾸역꾸역 파고들었다. 모두들 산장에서의 잠을 푹 자지 못한 것 같다. 셋째 날 1. 일본 제3의 고봉 오꾸호다까다게(3,190m)를 오르다. 아침이 되니 떠들썩하다. 일출을 보라는 소리가 들리면서 창문가에 장사진을 치고 있다. 나가보니 동쪽 산에 구름이 깔려있고 그사이에서 태양이 솟는다. 감격적이다.
사진들을 찍느라 분주하다. 나는 출국 전에 디지털 카메라를 구입해서 기본 메모리 16메가바이트와 32Mb 하나 더 구해 많은 사진을 찍겠다고 벼르고 갔다가 요꼬산장에서 벌써 메모리 부족이라는 메시지가 떠니 계산착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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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90m 오꾸호다까다케의 정상에 신사가 있다.)

이제 남아있는 16메가에 도쿄관관 사진까지를 담아야 하니 골라가며 사진을 조심스럽게 담느라 그 좋은 정경들을 모두 놓쳤다. 아끼하바라에 가변 512Mb 초대형 메모리를 구입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침도 메뉴가 좋다. 점심 도시락을 배낭에 넣었다.

6시45분 출발이다. 산장 옆의 급경사를 올라야 한다. 밑을 내려다보니 산장 지붕이 빨갛게 보인다. 바람이 거세다. 가스가 끼였다 풀렸다. 하더니 서쪽 산마루의 가스에 둥근 무지개가 보인다. 카메라를 꺼낼 시간도 없이 사라진다. 정상까지는 철사다리도 있고 수직에 가까운 암벽도 오른다. 암벽을 몇 개나 넘었을까. 바위 덩어리로 된 정상이 보인다.

7시30분 일본의 제3봉인 오꾸호다까다게 3,190m를 정복한 것이다. 10여명이 둘러 설수 밖에 없는 정상에는 작은 봉우리 두개가 있고 낮은 봉우리에는 둥근 동판에 방위표시를 하고 음각으로 주위산 위치 도를 세긴 둥근 동판이 시멘트로 고정되어있다. 바로옆 돌무더기에 강아지집만 한 일본식 사당을 지어놓고 사람은 올라갈 수 없어 가까스로 올라서서 기도를 하고 손뼉을 탁탁 치는 일본인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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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 내려다보는 북알프스 산맥들)

내 평생 이렇게 높은 곳에 내 발로 올라선 것이 처음이다. 한참을 머뭇거렸다. 뒤따라온 대원들이 많아져 바로 아래 경사지로 옮겼다. 여기서 정상정복 기념사진을 찍는데 이인호선배님의 특수렌즈가 아니면 사진을 찍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정상근처에까지 에델바이스 같기도 한 작은 야생화가 활짝 피어있고, 할미꽃 봉우리 같은 털이 보송보송한 야생화도 있다.

3,000고지인데도 식물이 많은 것이 특이하다. 2. 가미고지로 하산 길을 재촉한다. 가미고지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A팀과 빨리 합류해야 오후 스케줄을 짤 수가 있기 때문이다. 마에호다까다게는 우회하기로 했다. 여기서 부터는 급경사 하산길이다.

햇살은 사정없이 머리위에서 이글 데는 청명한 날씨 때문에 하산할 길이 훤히 보이고 가미고지의 건물들이 산허리에 살짝 보인다. 어제 가미고지에서 출발할 때 하산하는 사람들이 육안으로도 볼 수 있다고 한 가이드의 말이 생각난다.

이 시간 올라오는 젊은이들은 기진맥진이다. 그늘에서 쉬면서 일본인에게 일본의 3대 고봉을 물으니 최고봉이 후지산(富士山)3,775m이고 둘째가 남알프스의 키다다게(北岳)로 3,292m 셋째 봉이 오늘 우리가 올랐던 오꾸호다까다게 3,190m이란다. 내가 초콜릿을 하나 건네니 일본 초콜릿을 하나 답례로 준다.

어제도 그랬지만 우리가 주면 꼭 답례를 하는 것이 생활화 되어있는 것 같다. 급경사를 내려오다 33회 형수님 한분이 실족해서 팔뚝에 찰과상을 입었다. 그래도 천만 다행이다. 넘어진 경사 바로 옆은 10여m 낭떠러지였기에 전부 놀랐다. 버스에서 등산때 보다 하산 때가 훨씬 위험하다고 한 산행안전에 대한 당부가 생각난다.

정오가 살짝 지난 시간 천신만고 3부 능선에 위치한 다게사와휫데까지에 도착했다. 이 산장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나무 그늘을 찾아 둥글게 앉아 도시락을 꺼내니 넓적한 떡갈나무? 잎에 싼 주먹밥 두개가 들어있다. 간이 맞아 맛이 있다.

이것이 刊當이란 일본 전통음식으로 보관도 간편하고 음식이 변하지 않게 하는 비법이 들어있는 듯 하다. 휫데에는 맥주도 있고 얼음과자도 있다. 날씨가 더워 한잔 할까싶었지만 술을 먹으면 땅바닥이 벌떡 일어나 이마를 갈기는 불상사가 생길까봐서 산장에서 가져온 천명수로 대신 목을 축인다.

이제 완만한 경사를 내려간다. 여기서 부터는 나무숲이라 그늘이다. 산모퉁이를 도니 나무 팻말에 자연 쿠라(cooler의 일본식 발음) 글이 있고 신기하게도 축구공만한 구멍 속에서 얼음 바람이 생생 나온다. 앉아 쉬니 정말 시원하다. 일본산은 정말 깨끗하다. 긴 거리를 걸으며 숲가에 휴지, 음료수 깡통, 유리병, 비닐봉투 등이 하나 보이지 않는다.

일행 중 산행중에 쓰레기를 찾으려고 아무리 살펴도 껌 종이 하나 발견하지 못하겠더라고 중얼거리던 것이 생각난다. 청소를 따로 할 필요가 없으니 입장료를 받지 않는 것 아닌가 싶다. 오후 3시경 가미고지 유원지 경내에 도착하니 휴일이라 어제는 보이지 않던 관광객이 무지무지하게 많다. 원숭이들도 사람구경을 나왔는지 몇 마리 보인다. 물고기가 제법 큰놈이 노닌다.

더운 여름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구며 막걸리 마시는 내원사 계곡을 생각하면 당장에라도 뛰어 들어가고 싶어도 어느 누구도 강에 발조차 담그지 않는다. 10m정도 되는 현수교인 하동교(河童橋)에서 맑은 강물을 내려다보며 사진을 찍고 있는 일본인들이 많다. 시원한 강물에 발을 담그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터미널에 도착하니 가미고지를 내려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는 관광객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다.

외길 통행의 버스가 막혀 3시간가량 질서정열하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단다. 우리를 기다릴 A팀은 가미고지로 올라오지 못해 버스는 뒤에 오기로 하고 2시간 여 걸어서 주차장에 올라와 B팀과 합류했다. 그 후 3시간 이상 기다려서야 버스가 가까스로 도착했고 내려갈 때 일방통행 기다렸다 가다가 하니 시간상 스케줄에 차질이 생겼다.

산행 후에 그 유명한 中ノ湯 온천에서 정상정복의 피로를 풀기로 한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북알프스를 타는 대부분의 산행 팀들이 비를 맞게 되는데 우리들은 맑은 날 산행을 하게 된 것은 정말 행운이라면 행운이다. 망월산악회 만세 동래고등학교 만세가 마음속에서 나온다.

-동경여행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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