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8차 백두대간 (미시령~한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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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순(40)
2005.03.01 21:51
제 48차 백두대간 (미시령~한계령)
공룡능선 & 웬수(?)
부산에서 출발부터 궂은 날씨라 불안하다. 아니라 다를까 새벽에 도착하니 비는 세차게 퍼부어 댄다. 올해 백두대간 산행은 비와 인연이 깊다.
비옷을 입고 버스 문을 나서니 1분도 안 되어 옷이 흠뻑 젖어, 새앙쥐 꼴이 되고 만다. 출발부터 만만치 않다.
한계령에서 미시령으로 산행해야하나, 입산금지 구역이라 부득이 미시령에서 한계령으로 타게 되었다. 가파른 급경사를 1시간쯤 가니 최 형진씨가 지치기 시작하여 내 먼저 가라고 한다. 얼마쯤 가니 너덜바위가 나타났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 비가 와서 미끄러지면 중상, 아니면 사망(?)이다. 이일을 어찌할꼬?
그러나 아니 갈 수도 없고,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올라가자! 만만치 않다.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내 낭군님 최 형진씨, 어찌할꼬?’
이번 산행에 자기도 참여한다고 하여, 집에서부터 말렸다.
“당신한테 너무 힘든 코스요. 무리하지 말고, 또 남에게 민폐 끼치지 말도록 나서지 마소.”
“박 동식, 김 유일, 김영환씨가 책임진다고 했으니 니 걱정이나 해라.” 하면서 끝끝내 따라 왔던 것이다.
첫째 너덜을 힘겹게 중간쯤 통과하니 김 유일씨가 잠시 쉬고 있었다.
“서방님은 어찌하고 혼자 올라 오는교?”
“몰라요. 하여튼 같이 가자고 한 친구들이 책임지고 오겠지요. 그렇게 오지 말라고 했는데....” 하면서 투덜거렸다. 그러니 김 교수 양심(?)이 찔렸는지
“임 여사, 올라가소. 내 친구들 올라오는가 보고 같이 갈 터이니.”
또 한사람의 후원자(?)가 있으니 나는 내 갈 길을 갔다.
정말 힘든 코스다. 올라가도 끝은 보이지 않고, 무슨 이름 모를 너덜은 그렇게도 많은지? 한고비 넘으면 또 너덜, 정말 떨어진 걸레조각처럼 너덜! 너덜!
비와 땀으로 몸뿐만 아니라 신발안도 젖어 걷기가 불편하다. 그러나 체온 때문에 비옷을 벗을 수도 없고.... 귀찮다.
가다가 또 뒤돌아보고, 또 오는 사람에게 최 형진씨 소식을 물어보니 아무도 못 봤다고 한다. 어찌 되었을꼬? 기다릴 수도 없다. 조금만 서 있어도 춥다. 걱정도 되고 한편 짜증스럽다. 괜히 와 가지고 마음 쓰이게 만든다. ‘그놈의 정(?) 때문에...’
황철령 가까이에서 김 영환씨(최형진씨 친구)를 만났다. 친구 소식을 물어보니 자기도 모른다고 했다. 지친 모습니다. 반바지 차림으로 다리는 상처투성이다. 저 사람이 이 정도이면 우리 서방님은 죽기 직전일 것이다. 여편네 말은 절대로 듣지 않는 사람. 긴 바지 입으라고 그렇게 권했는데.... 틀림없이 그 사람 다리도 엉망일 것이다. 이래저래 속이 탄다.
함께 동행했던 곡지씨도 지쳐 처지기 시작한다. 아침밥을 미숫가루와 빵 한 조각으로 때웠더니 배가 고프다. 저항령 가까이에서 김 영환씨와 같이 밥을 먹었다. 빗속에서 먹으니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정신이 없어 허기만 채우고 말았다.
12시 반쯤 드디어 마등령에 도착하였다. 여기에서 A. B 코스로 나누어지는 지점이다. 나한봉-공룡능선-회운각으로 가느냐? 그렇지 않으면 설악동으로 내려가느냐?
‘어떻게 할까? 서방님 소식은 깜깜하고....!’
먼저 도착한 일행들은 공룡능선으로 떠났다. 곡지씨가 드디어 왔다. 다리가 많이 아픈가 보다. 나는 어떻게 할지 묻는다. 마음속으로는 공룡능선을 꼭 타보고 싶다. 산악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타고 싶은 코스가 아닌가?
김 영환씨는 자기가 설악동으로 내려 갈 터이니 가고싶으면 가라고 한다. 그런데 최 형진씨가 어떤 상태인지를 모르니 마음을 결정지을 수 없다.
한 행근씨와 김 정원씨가 도착하였다. 늦으면 안되니 공룡능선을 탈 사람은 빨리 가야 한다면 김 정원씨를 독촉하였다. 김 정원씨는 출발부터 가기는 B코스라고 우리를 은근히 동조하도록 권했는데, 동창생 덕분에(?) 서둘러 떠났다. 부럽다...
가만히 있으니 춥다. 제자리에서 이리 저리 몸을 흔들며 기다렸다. 최 형진씨가 나타나기를... 다른 대원들 한 두명씩 나타나 서둘러 떠난다. 박 여사가 왔다. 다리가 무척 아픈가 우리를 보더니 매우 반가워한다. B코스로 가자고 한다. 곡지씨도 B코스로 결정했는가 보다. 또 55회 신 상호씨 일행도 B코스로 한다고 한다.
2시쯤 김유일씨가 왔다. 소식을 물으니 한 10분 후에는 도착할 것이라며 2시 이후 공룡능선 진입하면 위험함으로 빨리 떠나야 한다며 서둘러 떠났다.
드디어 우리 서방님(웬수?)이 나타났다.
얼굴은 헬 같고, 눈은 횅하고, 다리는 회(줄)를 쳐 놓고, 걷는 모습은 비실비실... 그러나 살아 있었다 여기까지 왔다니 반갑고 고맙다. 대단한 일이다. 역사(자서전)에 한 페이지를 장식 할 일이다.
B팀은 지친 몸을 이끌고 내려왔다. 비가 서서히 그치고, 간혹 구름사이로 햇빛도 살짝 나타난다. 뒤돌아보니 구름에 걸려있는 공룡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쉽다. 속이 상한다. 서방님 때문에 이 좋은 기회를 놓치다니. 우리 여자 3명은 여기저기 들려 구경하면서 내려오다가 금강굴 앞에서 KTF 직원을 만났다. 인사도 나누고 간식도 나누어 먹고 헤어져 내려와, 비선대에서 세수도 하고, 발도 씻고, 신도 씻고, 양말도 빨고...... 그러나 남자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상하다 길이 어긋났을까? 이렇게 늦게 내려오지 않을 것이다. 일단 신흥사까지 가보자 하면서 내려오니 서서히 다리가 아파 온다. 조금 전에 만난 KTF 직원이 오면 차 좀 태워 달래야지 아까 뇌물(?)도 받쳤는데......., 은근히 기대하면서 내려오는데......
“빵빵......빵빵”
“여보! 우리 환자가 있어 차 타고 먼저 가니 버스 주차장에서 만나자.”
고함 소리와 함께 차가 획 지나간다. 아뿔싸, 그 차는 바로 우리가 타고 갈려고 한 그 KTF차가 아닌가! 웬수가 따로 없다니.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됀놈이 챙긴다더니...’ 윽! 억울하다.
또 하염없이 걸었다. 속이 부글부글 탄다.
30분 후 버스 주차장에 도착하니, 자기네들은 남은 음식들을 먹고, 푹 쉬고 있었다. 우리도 배가 고파 그 자리에서 점심 겸 저녁을 먹었다. 55회 일행도 도착하여 자기네들도 배가 고프다며 남은 음식을 먹었다.
버스를 타고 속초 찜질 방으로 갔다. 깨끗이 씻고 뜨끈뜨끈한 방에서 피로를 풀었다. 박 여사, 곡지씨 잘 잔다.
이튿날 아침 속초에서 두부국 한 그릇씩 먹고 9시경 한계령에 도착하였다. 남자 대원들은 지쳐 차에서 기다린다고 했다. 그러나 용감한 우리 여전사 3명은 회운각에서 넘어오는 자랑스러운 망월 대원들을 마중 가기로 하고 떠났다. 11시경 끝 청봉 못 미쳐 김 동숙씨외 2명을 만났다. 서로 너무 반가워 악수를 하고 덕담도 나누었다. 우리도 설악산을 뒤에 둔채 빠이빠이 하면서 내려왔다.
주차장 한쪽에서는 무사 귀환 환영파티가 열렸다. 박 여사가 내 놓은 양주 한 병, 소주 순대, 오징어... 맞이하는 사람과 무사히 완주한 대원들과 어울려 왁자지껄하다. 그 중에서 최 형진씨 소리가 제일 크게 들린다.
설악산은 섣불리 도전할 수 없는 산이다. 설악! 신성하고 숭고한 산이라는 뜻 그대로 함부로 접할 수 없는 명산 설악이다. 한사람도 다치지 않고 무사히 산행한 망월 산악회여 파이팅!
그러나 나의 공룡능선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서방님이 무엇인지?
웬수(?)가 따로 없다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