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산행준비
망월산악회의 2014년은 숨가쁘게 달려온 한해였다. 강성진(53회)회장의 취임기념산행을 古都 경주의 토함산을 시작으로 8월에는 백두산에 올라 백두대간의 꼭지점에서 통일을 기원했고, 설악과 지리산에 올라 망월산악회의 기개를 높였다, 또한 2년6개월간의 낙남정맥 종주도 26차 신불, 영축산을 거쳐 몰운대에서 대장정의 막을 내리는 종산제를 무사히 치렸다. 화룡점정 한라산만 오르면 2014년의 망월산악회는 백두에서 한라까지 한반도의 산들을 두루 밟으며 한해를 마무리 하게 된다.
나는 2014년 12월 6~7일 1박2일의 한라산 산행에 동참했다. 내가 한라산과 인연을 맺은 것은 망월산악회를 따라 1995년 무려 280여명에 가까운 망월산악회원이 전세기를 동원하여 영실코스의 윗세오름까지 올라 한라산 철쭉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감상하며 한라산과 첫 만남을 갖었고,
두번째는 초여름 부부동반 성판악코스로 비를 쫄딱맞는 우중산행중 정상부근에서는 우박까지 솓아지는 악천후에도 운좋게 잠시 잠깐 안개가 걷히며 백록담의 분화구를 볼수있는 행운을 얻었고, 관음사코스로 뛰다 싶이 하산했던 종주산행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힌다.
그래도 한라산은 바람만 잠잠하면 역시 눈덮인 겨울 산행이 으뜸이라 한다. 이번 눈꽃 만발한 한라산을 볼 기회를 놓치지 안았다. 운좋게 산행 며칠전 제주도에 폭설이 덮첬다는 뉴스를 듣고 한라산의 기상을 검색했다. 우리가 산행을 하는 전날까지도 한라산 국립공원 관리사무소 홈페이지에는 폭설로 인한 한라산 전 산행코스가 통제되고 있었다.
2. 산행첫날 제주도 도착
12월 6일 오후 5시 김해공항에서 에어부산 항공편으로 제주도에 들어간다. 다행이 오늘부터는 맑고포근하여 산행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김해공항에는 이웅(61회)총무의 10대 아이들과 70대 37회 선배까지 3세대 걸친 산꾼 70명이 모여 탑승을 기다린다. 왠일인지 오늘 따라 국내선 탑승도 보안강화로 등산화를 벗어 들고 검색대를 통과했다.
출발전의 김해공항
에어부산의 항공기가 이륙하고 제주공항까지는 50여분 만에 도착하여 대기하는 버스 2대에 편승. 명심해장국에서 저녁 식사를 하며 통제되고 있는 내일 산행에 대한 걱정으로 고참 산꾼들의 충고가 분분하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산행은 김경택(60회)산행대장의 판단에 따르기로 하고 마무리 돠었다.
하늘에 별이 총총 보이기 시작할 즈음 성산읍에 있는 그린나래 팬션에 도착하니 주인인 53회 김춘성동문이 반갑게 맞이 한다. 총무단에서 미리 짜놓은 방배정에서 별관에 9명이 입실한다. 내가 최고 고참이라 방장이되어 침대 하나를 내가 사용한다. 막내 김정민(55회)후배가 방정리와 심부름으로 바빳다. 맥주를 힌잔 마시고 두런 두런 내일 산행이야기로 스르르 잠이 들었다.
제주 그린나래 팬션
3. 산행 이틀째
12월 7일 성판악코스의 A조는 6시 30분 출발이고, B조는 영실코스라 여유가 있다. 배달된 도시락으로 아침을 먹고 점심 도시락도 배낭에 챙기고 성판악으로 향한다. 버스기사는 우리에게 한라산의 맑은 날은 연중 3~40일 정도인데 오늘은 바람도 없고 포근해 산행하기 딱 좋은 날씨란다. 맑은 날 한라산에 오르수 있는 사람은 3대가 공덕을 쌓아야 얻을수 있는 행운이란다.
고도750m 성판악 휴게소에 도착하니 7시 30분 휴게소 마당은 온통 눈과 얼음으로 덮여있어 아이젠과 스팻쯔를 착용한 산꾼들이 산행전 기념촬영을 하느라 북적인다.
성판악 휴게소 앞에선 필자
성판악휴게소에서 A팀 발대식
힌라산 공원관리소 측은 등산로 확보를 위해 어제부터 폭 50cm 깊이 50cm정도의 좁은 눈길을 럿셀하여 만들어 새벽부터 진달래 대피소까지 산행을 허락했다. 먼저 올라간 산꾼들이 밟아 놓은 눈길은 U자 형태로 흡사 동계올림픽의 봅슬레이 트렉같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눈의 양이 많아지면서 5~60cm정도다. 나무가지에 엉켜 붙은 눈으로 대형크리스마스 트리로 보인다.
눈을 덮어쓴 한라산 크리스마스 트리
4. 한라산 산행의 편견으 깨고
그동안 나는 한라산 산행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었다. 십수년전 여름산행의 성판악코스는 돌과 바위가 정상까지 깔려있어 산행중에는 바닥만 처다보며 걸어야 하므로 주위 산의 정경을 감상 할 여유가 없는 지루한 코스였다. 그래서 한라산 산행을 한번도 못한 사람은 바보요, 두번 오르는 사람도 바보라는 우스개 말이 있을 정도로 성판악코스는 바다 조망을 빼면 무미건조해 나도 산행에 관심이 없는 산으로 꼽고 대체로 산행을 말리는 편이였다.
그러나 겨울산행은 그것과 다르다. 다져진 순백의 눈길은 어느 화려한 행사장의 푹신한 화이트 카펫 같아 뽀드득 뽀드득 밟고 걷는 기분은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산길이다. 표고가 높아질수록 수목의 키가 작아지고 덮어쓴 함박 눈으로 축 늘어진 나무들과 어울리는 순백의 산은 한폭의 수묵화를 보는듯 아름답다. 속밭대피소 근처는 눈의 양이 더 많아 등산로를 한 발짝만 이탈하면 허리까지 푹 빠진다. 바람없는 포근한 날씨 때문에 온통 땀 범벅이다. 오버트라우즈를 벗고, 장갑을 벗어도 춥지 않다. 오히려 시원하고 상쾌하다. 말그대로 봄날이다.
멀리 등성이 넘어로 한라산 영봉이 눈을 하얗게 덮어 쓰고 있다
진달래 대피소가 가까워오니 눈길은 좁아져 하산하는 산꾼들과 교행하기가 힘들고 그기다 눈 사진을 찍는다며 지체하는 통에 산행속도가 더디다. 등성이 넘어 멀리 하얀 눈을 덮어쓴 한라산 정상이 보인다.
내가 고도1,518m 진달래 대피소에 도착한 시간이 10시다. 대피소가 출입구만 남기고 눈으로 반은 덮여있다. 산행시작 2시간 30분 걸렸다. 후미도 도착을 한다. 안도의 휴식을 취하며 이제 더 진전하느냐 마느냐를 결정해야한다. 관리소는 럿셀하러 갔던 대원의 정보로 정상부근은 가슴까지 눈이 쌓여 통상 1시간 30분 걸리던 산행이 5~6시간 걸린다며 안내방송을 하고 있다.
5. 진달래 대피소에서 화이트아웃 체험까지
진달래대피소 휴게실 안에는 커피 라면을 끓여 팔고 있지만 산꾼들이 꽉차있어 둘어가기 힘들다. 김경택 산행대장이 여기 저기 정보를 종합하더니 우리 일정상 정상에 오르기는 어렵다고 판단, 하산 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시간 여유가 있으므로 하산길에 사라오름을 담방하기로 했다.
하산을 막 시작하려는 순간 대피소에 보급품을 날으는 산림청 소속의 헬리콥터가 북쪽하늘에 나타난다. 모두들 사진을 찍느라 야단이다. 달고 온 두 덩어리의 화물을 20 여m 높이에서 대피소 마당 눈밭에 떨어트린후 대피소에 모아둔 스레기등의 화물을 달고 가기 위해 헬기장에 착륙을 시도한다. 헬기의 프로펠라에서 발생하는 강한 역풍으로 진달래대피소 일대는 순식간에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눈보라가 휘몰아 친다,
이런 상황을 화이트아웃이라 하는 것인가. 수 톤의 헬기를 들어올리는 바람의 풍속은 초속 몇 m나 될까. 눈보라가 몰아치는 상황이 몇분되지 않았지만 온몸이 눈을 뒤집어 쓰니 한기가 들고 손이 시려 정신이 없다. 바람에 모자가 날리고 가까이 있던 산꾼들은 눈밭에 넘어지기도 한다. 아마도 고산 등반중에 조난을 당하는 것이 이런 상황이구나 싶다.
잠시후 헬기는 화물을 달고 이륙하니 언제 그랬느냐며 진달래 대피소는 평온을 찾았다. 제미있다. 순간적이나마 눈보라로 인한 화이트아웃 체험을 했다.
헬기가 일으킨 폭풍우로 화이트아웃을 체험하는 이대영(45회) 동문
5. 사라오름의 통일 기원 퍼포먼스
한라산 정상에 오르지 못한 것은 다시 오라는 산신의 뜻일까, 그대신 망월산악회는 하산시 좀처럼 들리기 힘든 사라오름에 올라 백록담에 못간 한을 풀기로 했다. 사실 사라오름은 한라산 정상에서 제일 가까운 곳에 있는 고도가 1,324m로 국립공원내의 40여개 오름중에 제일 높은 오름이다. 그동안 휴식년제로 출입이 통제되고 있었는데 4년전인 2010년 가을에 개방되어 수많은 산꾼들이 설레며 찾아오는 곳이 사라오름이란다. 한라산을 찾는 등산인들이 사라오름을 보지 못해 안타까워 했는데 오늘 우리는 예정에 없는 아름다운 사라오름에 오른 것은 보너스다.
사라오름 중간에 아름다운 호수가 있지만 오늘은 꽁꽁 얼어 붙어 눈이 수북히 쌓여 있다. 이 호수 가운데서 박철수(49회)동문이 통일 기원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지난 8월 망월의 백두산 산행때 천지에서 길러온 천지물을 패트병에 넣어 고히 간직하였다가 백록담에 부어 넣어 망월산악회의 백두에서 한라까지를 이어주는 행사였으니 얼마나 뜻있는 행사였나. 오늘 정상에 오르지 못해 백록담에 버금가는 사라오름의 분화구 호수에서 통일을 기원하는 제를 올린것이다. 순간 가슴이 뭉클헤 진다. 나는 소리 높여 애국가라도 부르고 싶었다.
내 평생 통일이 될까 그때는 한라산 백록담물을 담아, 북한땅을 통해 백두산에 올라 천지에 백록담 물을 부어 넣는 행사를 하는 날이 하루 빨리 와야 한다. 이번 한라산 퍼포먼스를 위해 준비힌 박철수(49회) 대원께 늘 행운이 깃들기를 기원한다.
천지수를 한라산 사라오름 호수에 부어넣는 박철수(49회) 동문
사라오름의 둥근 호수주위로 목재 테크가 있고, 반대편쪽으로 오르면 전망대가 있다. 여기서는 한라산 정상이 풘히 보이고 한라산의 산세를 감상할 수 있다. 12시 20분 우리 일행은 전망대에서 점심을 먹었다. 한라산의 변화무상한 날씨가 갑자기 흐려지면서 빤히 보이던 한라산 정상이 사라진다.
사라오름 전망대에서 본 한라산 정상의 흰눈 백홍기, 신현국(37회)선배
6. 영실코스의 B조와 합류
사라오름에서 하산한다. 영실로 간다던 B조가 도로사정이 좋지 않아 성판악코스로 변경하고 진달래대피소로 올아오다 A조와 함류를 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설산을 혼자보기 아까웠는데 B조까지 보게해준 것이다. 오늘 산행은 예정보다 하산 시간이 훨신 빨라져 오후 2시 20분 원점인 성판악휴게소에 도착했다.
귀향하는 시간 조정이 쉽게 되었다. 비록 정상 등정은 못했지만 겨울 산의 정취를 듬뿍 느낄수 있었고 예정에 없던 사라오름도 탐방 할 수 있었던 한라산 겨울산행은 2014년의 마무리 산행으로 내게 너무나 큰 기쁨을 준 좋은 산행이였다.
대기하던 버스에 올라 제주시내로 내려와 목욕하고 흑돼지 삼겹살로 저녁 식사를 마친후 7시 40분 에어부산 항공편으로 김해공항에 도착하니 새삼 이번 한라산 산행에 원로 선배들을 초청해 효도산행을 기획한 망월산악회 집행부에 거듭 거듭 감사한다.
39회 임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