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비산은 쫓비하지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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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간(53)
2007.02.28 19:58
지난 1월 넷째 주 호남정맥 제1구간 망덕산-천왕산-국사봉-탄지재 산행을 무사히 마치고 금번 산행은 제2 구간인 탄지재-불암산-토끼재-쫓비산-갈미봉-천황재-내회마을 구간이다.
우수를 일주전에 지나 제법 봄기운이 돌고 날씨는 흐렸다.
예정보다 30 분 일찍 명륜역에 도착했지만 모두들 새벽 일찍 일어나 버스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보아 금번 테마 산행의 열기를 느낄 수 있다.
원래 계획은 갈미봉에서 외회마을로 하산할 계획이었지만 3 구간이 너무 길어 2 구간을 좀더 연장한다는 산행 대장의 설명을 들으며 버스는 순식간에 탄지재까지 도착했다.
어제 금정산을 10 킬로 이상 산행하고 밤 늦게까지 한 잔 해서 그런지 컨디션이 좋지 않고 아랫배가 살살 아파왔다.
빗방울이 간간이 뿌리는 가운데 발대식을 마치고 볼 일 좀 보려고 선두에 서서 헉헉거리며 불암산을 향해 올라간 지 10 여 분만에 아프던 아랫배에 체온이 올랐는지 어느새 정상 컨디션으로 돌아왔다.
이래서 산행이 몸에 좋다는 것을 느낀다.
불암산 까지는 수월케 올라 능선에서 오른 편을 굽어보니 섬진강의 모래사장이 여자의 허연 허벅지 살을 드러내 듯 구비구비 펼쳐져 있고 흐린 날씨 탓인지 평소의 쪽빛 강물 색은 진한 비취빛으로 물들어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시원케 한다.
토끼재로 내려가는 능선에서 독수리 3 마리가 머리 위로 빙빙 맴돈다. 최근 고성과 함양 부근에 독수리 철새들이 날아 든다는 TV프로를 본 적이 있어 지금 머리위로 유유히 날으는 독수리는 토종이 아닐 가능성이 많다.
지구 생태계 파괴로 인해 지구상에 남아 있는 야생 독수리는 약 5000 여 마리 밖에 안되는데 그 중 약 300마리가 우리나라에 월동하러 온다는 소식을 접하고 반가운 맘이 든다.
토끼재까지 계속 내려가는 길에 일행 중 한 분이 애써 올라왔는데 또 다 까먹는다는 우스개 말을 듣고 오르고 내리는 것이 정맥 산행의 묘미라고 다른 한 분이 거든다.
그렇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듯이 우리네 인생도 고진감래와 흥진비례의 연속이 아니겠는가?
올라 갈 땐 내려 갈 것을 예상하고 내려 갈 땐 올라 갈 것을 계획한다면 지혜로운 인생 설계를 할 수 있으리라.
토끼재에서 개발로 인해 산행로가 끊겨있다. 길을 못 찾아 잠시 주춤했지만 우리 망월산악회가 어떤 산악회인가? 노련한 선배 산꾼님들께서 금새 길을 찾아내고 만다. 콘테이너 막사 뒤로 산행로가 나있다.
토끼재에서 쫓비산을 향해 오르는 길은 경사가 심해 선두에서 잠시 쉬어 가자고 했지만 선배님 한 분이 계속해서 길을 재촉하는 바람에 쉬지도 못하고 오르고 또 올랐다.
오르고 내리기를 수 차례 드디어 쫓비산에 도착했지만 우리의 쫓비산은 싱거울 정도로 기대에 벗어났다. 우선 뾰족할 것이라 예상했는데 그렇지 않다.
우리 고향 서부 경남 사투리로 "뾰족하다"란 말을 "쫓삐하다"라고 표현해서 아주 날카롭고 뾰족한 정상을 가진 산이라 상상했는데 전혀 쫓삐하지 않아 실망이었다.
역시 정맥은 완만하고 여성적이다. 그런데 오른쪽 섬진강을 굽어보니 하늘빛이 투영되어 쪽빛으로 빛나는 것이 아닌가? 아하 이제야 쫓비산의 유래는 쪽빛에서 온 것이 아니가하고 내 나름의 상상을 한다.
쫓비산에서 갈미봉을 향해 가는 길에 동기들과 후배님들과 맛있는 식사를 하고 계속 능선을 오르락 내리락하며 나아갔다.
이제 우리나라 산지에는 활엽수가 소나무보다 더 많다는 신문 보도를 본적이 있다. 과거 백성들에게 땔감과 구황식물로 생활에 여러모로 보탬이 되는 진짜 나무인 참나무가 많이 보였다.
참나무는 그 종류가 참으로 많다. 과거 주린 배를 채워주는 밤나무, 도토리나무-그 이름으로 말하자면 떡을 싸서 먹는 떡갈나무,신발 밑창에 깔았다는 신갈나무,굴참나무,졸참나무 들이 모두 참나무과에 속한다.
남자 근육처럼 울퉁불퉁한 서어나무,노루뿔처럼 단단하다고 노각나무, 가지에서 생강 냄새가 난다고 생강나무, 회초리로 매서운 싸리나무, 때처럼 검은 때죽나무,수액이 만병통치인 고로쇠나무, 단풍나무,진달래,연달래,노간주,삼나무,편백 등등 이루다 셀 수 없이 많은 종류의 나무들이 우리 강산에 자생하고 있다.
봄,여름이 되면 이들이 각양 각색의 꽃을 피우리라. 땅에서는 이미 우리의 야생화 얼레지가 벌써 꽃눈을 준비하고 있다. 이름 모를 풀포기들이 새 봄을 맞느라 분주할 것이다.
저 나무들 또한 지난 겨울 동안 숙면을 취하고 이제 잠에서 깨어나고 있어 만상이 고요한 것 같아도 내면에는 정말 바쁜 생활을 하고 있으리라.
갈미봉에서 천황재를 거쳐 510 봉 511 봉을 지나 내회마을로 내려가는 길은 희미해서 거의 길을 만들다시피 내려갔다. 선두와 연락을 취하며 일행 몇 분이 선두의 발자국을 따라 내려갔는데, 아뿔사 선두보다 더 앞서 나가신 선배님 한 분께서 하산 길을 지나 매봉까지 가는 바람에 연락이 두절되었다.
약 20분간 찿느라고 소란이 있었으며 그 분은노련한 산꾼이어서 떠나도 찾아 올 사람이니 그냥 가자는 의견이 있었으며 우리 후배들은 마냥 쳐다만 봐야할 형편이었다. 그렇다. 그 선배님은 노련한 산악인답게 일행과 목욕탕에서 마주 칠 수 있었다.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었지만 그 선배님은 정말 섭섭한 심정을 갖고 있었으리라. 망월산악회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선배님의 격앙된 인사말을 듣고 우리 모두 금번 산행으로 반성의 계기가 되었다. 서로를 사랑하는 망월인이 되어야 겠다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