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공룡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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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일(40)
2004.10.05 13:12
백두대간 미시령에서 한계령까지
김유일(40)
7월 17/8일이 연휴라 2박3일로 백두대간의 종착점에 가까운 설악산의 한계령에서 미시령 구간을 역으로 탄다. 16일 저녁 10시에 명륜동 전철 동편다리 앞에 모인 대원은 모두 42명. 설악산의 이름이 매력이 있었던지 많은 대원이 참가했다. 내 동기일행으로는 이수환, 박동식, 최형진, 임여사(최 부인) 그리고 최의 친구 최등 모두 6명이다. 버스에서 1박, 희운각에서 1박, 그리고 이틀 동안 산행거리가 도상으로 약 30km, 소요시간 약 15시간으로 장거리에 훈련된 등산인이 아니면 엄두를 내기가 어려운 코스이다. 연휴라 희운각 산장에서 잘 수 있다는 보장이 없으니 비박할 준비를 하라니 짐이 많다. 침낭, 매트, 여벌의 옷 등 부피나 무게가 만만찮다. 최형진 동기가 약간 걱정이다.
출발한 버스가 미시령에 도착한 시각이 다음날 06시, 궂은 날씨는 망월산악회라고 봐줄 것 같지 않고 비바람이 세차게 퍼부어댄다. 미시령은 입산금지이어서 입구를 봉쇄되어 있었고, 남쪽으로 약 500m 내려온 곳의 차도에서 간신히 들어가는 입구를 찾았을 때가 7시이다. 등산로를 따라 가파르게 두어시간 가니 황철봉에 올라가는 너덜바위 구간이 나온다. 거리가 500m는 넘을 것 같다. 걱정했던 최는 생각보다 잘 버티며 넘어온다. 너덜이 되어 넘어지면 최소한 경상이다. 비가 와서 너덜을 건너기가 불편하다. 간신히 지나면 또 너덜이 나온다. 박, 최 그리고 내가 황철봉에 도착한 시각이 11시 가까이 되었다. 이제 마등령으로 내려갈 구간이다. 한 두차례의 너덜, 가도가도 마등령은 나타나지 않는다. 드디어 마지막 너덜, 이곳만 지나면 마등령이란다.
한 3년 전에 이 구간을 한 적이 있었는데 산행코스가 마등령에서 공룡으로 가지 않고 설악동으로 내려온 적이 있다. 그때 공룡을 언젠가는 해야지 하고 박과 같이 마음먹은 적이 있다. 최와 박이 마등령에서 탈출하겠단다. 어떻든 최로서는 기대이상의 산행을 한 것이다. 약간의 갈등이 생긴다. 최, 박과 같이 탈출할 것이냐 또는 공룡을 넘을 것이냐이다. 마침 마등령 앞에서 만난 55회 후배 일행 8명이 탈출할 것이라 한다. 그러면 탈출 팀이 덜 외로우니 가도 되겠다고 생각하는데, 선두에서 무전이 온다. 오후 2시 이후에는 공룡으로 진입하지 말라고. 먼저 가겠다고 하고 마등령에 내려오니 임여사를 포함하여 탈출희망자 몇 명이 더 있다. 같이 갈 사람을 찾아보니 박석근(45)대원이 같이 가겠단다.
마등령 출발이 오후 2시, 아슬아슬하게 시간내 통과다. 조금 가다가 길을 잘못 들어 되돌아오는 이상수(48)을 만나고 길을 찾아 같이 간다. 말로만 듣던 공룡이다. 능선 이름이 허언이 아님을 확실히 보여준다. 오르락내리락 장난이 아니다. 한 고개를 지날 무렵 후미를 보는 최상호(51)와 신항복(51)이 홍주환(43)과 같이 온다. 최근에 자주 못나온 홍이길래 염려가 되는데, 눈치를 알았는지 요즘 연습 좀 했으니 갈수 있단다.
비가 와서 바위로 된 내리막길에 물이 흐르니 위험하기 짝이 없다. 미끄러지면 최소한 5m는 바위 위를 미끌어질 판국이다. 누가 ‘넘어야 하는 고개가 여섯 개다 아니 일곱 개다’라고 했는데 넘는 회수를 세면 뭐하리. 고개를 두 번인가를 더 넘었을 때 한현근(49)과 그의 초등 동기 김정원 여사를 만난다. 김여사의 도전의지에 박수를 보낼 만 하지만 은근히 걱정이다. 어둡기 전에 가면 좋겠는데. 내색하지 않고 파이팅을 보낸다.
한 고개를 더 넘으니 김효일(35)형이 쉬고 있다. 이 형님이 왜 이럴까? 노장이지만 백전 용장인데. 바위나 위험한 장소가 있으면 대원이 통과할 수 있도록 일일이 도와주는 형이 아닌가? 같이 쉬다가 오르막을 오를 때 뒤로 처진다. 먼저 가란다. 한참 가니 강만수(35)형과 김환(45)이 앞에 있다. 만수 형은 효일이 형을 기다린단다. 한 20분 정도 차이니까 걱정말라고 소식을 전해 주고 산마루에 올라서니 건너편에 희운각이 보인다. 이제 한 시간 정도면 갈 수 있으니 후미가 오는 것을 기다린다. 김 여사가 올라온다. 대단하다. 걱정 하나는 해결되었다. 한 10분 있으니 효일이 형이 올라오니 만수형이 ‘니 인자 오노’ 하고 반긴다.
두 형은 동기지만 나이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안다. 장난기가 돌아 효일이 형한테 농을 건다. 두 형의 차이가 뭔지 아냐고? 뭔데? 담배지요. 담배만 끊어보시라고, 그러면 훨훨 날라 갈 테니까. 마지막 후미 팀만 오면 된다. 상호랑 항복이랑 있으니까 믿고 출발한다. 희운각에 도착하니 7시다. 공룡능선만 꼭 5시간 소요되었다. 선두 김동숙(42)팀이 3시 반경, 이어서 김영해(41) 회장 팀이 5시경, 그리고 후미는 8시경 도착했단다. 첫날 대장정은 이렇게 무사히 종료됐다.
선두는 희운각 산장에 숙박계약을 다른 산악회보다 먼저 하기 위해 달려왔다. 마침 폭풍중이라 입산이 금지되어 망월 회원 26명과 진주에서 온 산악회원 10여명뿐이라 비박은 안 해도 되었다. 입산금지가 풀린 것이 오후 2시, 그때까지 기다리다 희운각에 온 서울팀이 있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통성명을 해보니 그중 한 사람이 동문이란다. 나중에 동고야닷넷에서 보니 그 동문이 망월산악회를 만난 이야기를 올렸다. 동문을 설악산 산중에서 만난다는 것은 기쁨 두 배이었다.
喜雲閣의 뜻이 뭐냐는 한자풀이가 있었는데 기쁠희와 구름운이니 기쁜 구름인가? 그것보다 구름도 즐겁게 머무는 곳이 좋겠다고 의견이 모아졌는데, 그러면 즐겁게 머무는 구름을 벗하는 이는 신선이 아닐까? 갑자기 우리 모두가 신선이 되었다며 기뻐했다. 하기야 속세를 벗어나 산속에 오면 이미 신선인데 설악산의 희운각에서야 더 말하면 무엇하리. 아쉬운 것은 구름속의 신선놀음으로 속세인간이 보고 싶은 설악산 절경굽이굽이를 다 못 보는 것이 아닐까? 아서라, 욕심을 거두자. 구름이 살짝살짝 보여준 그것만도 어딘데. 많이 보면 그게 좋아 하산할 생각이 없어지면, 그 더욱 좋겠지만 속인이 그러면 안 되지 안돼. 각설하고.
18일 아침, 6시 기상하여 조식후 7시 출발 예정이었는데, 어제의 피로를 깨끗이 풀었는지 선두조는 6시 반에 출발한다. 희운각에서 백두대간을 정확하게 타는 코스는 입산금지여서 일인당 벌금 50만원은 각오해야 한단다. 개방되어 있는 산행로를 따라 한참 올라가니 건너편에 어제 왔던 공룡능선이 부끄러운 듯 구름속에서 살짝 살짝 내비춰 보여준다. 김동숙이 건너편 저 봉우리가 무슨 봉, 저건 무슨 봉이라고 설명해 주었는데 기억을 못하겠다.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도 힘차게 솟은 수려한 모습은 눈에 아련거리고, 정말 내가 저 경사진 곳을 타고 내렸는지 믿을 수가 없을 지경이다. 구름속에 보이는 자태를 기다렸다가 또 보고 싶지만 가야할 길이 있는지라 미련을 버리고 떠난다.
중청에 도착하니 8시 30분경, 대청봉에는 보고 가야 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에 대청으로 갔더니 내가 확실히 신선이 되었음을 재차 확인하고 10m앞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중청으로 되돌아 왔다. 중청 산장지기의 이야기로는 한계령까지는 5시간 소요된단다. 예상한 것보다 1시간 이상 더 걸린단다. 어제 후미쪽의 강만수, 김효일, 홍주환 그리고 이수환(40), 손봉상(43) 6명이 조를 이루어 9시에 중청에서 내려온다. 어제에 비하면 약과니까 천천히 내려온다. 희운각에서 늦게 출발한 대원들은 대청에 들르지 않고 바로 간 모양이다. 또 후미조가 된 것이다. 한참 내려오니 후배(5?) 한명이 무릎이 좋지 않아 힘들어한다. 마침 문진신(74)군이 바르는 약을 가지고 있어 같이 온 대학재학생(77)에게 보조를 맞추어 같이 오라고 하고 우리 일행은 하산 길을 재촉한다.
설악산은 어느 곳이든 만만찮은가 보다. 한계령으로 내려가는 코스도 몇 개의 봉우리를 넘었는지 모르겠다. 이젠 다 왔겠지 하고 보면 또 넘어야 하고 끝이 없다. 철 계단이 보인다. 마지막이 108계단이란다는 말을 듣고 세어보면, 아니고. 이런 철 계단을 지나 초소가 보이더니 정말 시멘트로 된 108계단이 나온다. 내려오니 주차장이라 온 전국의 관광객이 다 모인 것 같다. 어제 탈출한 대원과 먼저 도착한 대원들이 따뜻하게 맞아 주는데, 이제 드디어 끝냈구나 하는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오후 2시다. 꼭 5시간 걸렸다. 선두 김동숙은 11시 반에, 김회장 팀은 12시 반에 내려 왔단다.
주차장 한쪽에 우리 망월팀이 순대랑 소주랑, 그리고 매점에 사온 각종 안주를 한판 벌려 놓았다. 이때 객을 맞이하는 주인장으로는 최형진이 제격이다. 따뜻한 인간미로 너털웃음과 함께 권하는 소주 한잔, 동기애까지 덧붙여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김회장, 김동숙, 등등 모두 한잔씩 권한다. 박도 최의 친구 최형도 수고했다며 술 한잔을 권한다. 지금까지의 피로가 쫙 풀리면서 주기가 슬슬 오른다. 한 시간 쯤 지나 3시경 무릎이 안 좋은 대원을 동행한 마지막 후미조가 다 내려 왔단다. 백두대간 제48차가 끝난 것이다. 우리 망월산악회, 정말 대단한 산악회다. 앞으로 남은 마지막 한 구간을 즐겁게 기다리며.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