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48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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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화(48)
2005.02.12 00:40
백두대간 48차
2004년 7월 16일(금) 호우 경보
강원도 지역 호우 경보가 발령되어 있어서 참가자가 없을 것으로 예상하였으나 뜻밖에도 42명이 참가하여 버스가 가득 차 버렸다. 2박 3일에 취사 비박까지 예정되어 모두 대형배낭이거나 두 개 이상의 배낭을 가지고 오니 버스 밑 트렁크도 가득 차 버렸다. 백두대간도 오늘 코스를 끝내면 다음 진부령까지 마지막 구간만 남게 된다.
48 동기는 김지현, 한기원, 이상수, 나와 집사람 모두 5명이 참가하였다. 정말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산에 간다고 하시던 고 김동진 선배님의 말씀은 “호우 경보가 있거나 태풍경보가 있더라도 산에 간다.”는 말 그대로 맞는 망월 산꾼들이다.
지난 번 태풍 경보에도 불구하고 백두대간은 쉼 없이 진행되었다.
슬리핑백 1개와 비박용 대형 깔판, 비상 자일 20m, 식사 장비, 식료품 등을 3개의 배낭 보조 쌕 등에 분산하여 나누었지만 적지 않은 무게가 느껴진다. 출발 전날 갑자기 동행해도 되느냐고 전화가 걸려왔던 한기원(사직고 교감)동기의 비 준비 및 우의까지 준비해가게 되니 30㎏ 쯤 된다. 고맙게도 설인 장비점에서 무료로 나눠준 침낭 커버까지 무게를 더해준다.
2004년 7월 17일, 제헌절, 호우 경보,
새벽 6시
미시령은 호우 경보로 내리는 비도 엄청나게 많았지만 바람이 무척 세게 불고 있어서 오늘 산행의 어려움을 말해주는 듯하다. 더구나 미시령, 마등령 구간은 휴식년제라서 진입 불가 이며 철조망으로 등산구가 막혀있다. 철조망을 약간 우회한 곳에 시그날이 펄럭이며 선발대가 이미 산행에 들어갔다.
한기원 동기에게 우의를 주고 집사람과 배낭을 나누어지고 주능선에 올라보니 멀리 비바람 치는 미시령 휴게소 화장실 앞에서 한기원 동기가 우의를 입지 못해 애쓰는 모습이 보인다. 기다리다가 나중에 보니 맨 후미에 오는 후배들이다.
서둘러서 앞서간 한기원, 이상수 동기를 찾아 급한 걸음을 재촉하는데 시야는 비안개 속에 분간키 어렵다. 그저 앞사람만 따라가는데 울산바위로 이어지는 능선을 넘어서니 너덜지대가 이어지는데, 앞사람 뒷사람의 연결이 자주 끊긴다.
물젖은 바위는 위험하기 그지없고 길이 아예 보이질 않는다. 멀리 위쪽 나무에서 펄럭이는 작은 시그널만이 앞사람이 지나갔다고 흔들고 있으니 이게 바로 청마 유치환 선배의 '깃발'이 아니던가?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여러 차례 바윗길을 지나면서 황철봉에 이르렀으나 바람과 비는 더욱 세차게 쏟아지며 조금의 틈도 주지 않는다. 사정은 저항령에 이르러 더욱 어려워진다. 기능성 옷, 신발들이 아무 소용이 없다. 최상호, 전기주, 안병규 등 51회 동문들이 판초를 나무에 걸쳐 펼치고 그 밑에서 이상수, 한기원 동기와 함께 식사를 하였다. 김지현 동기는 맨 앞에 합류하여 가버리고 없다.
잠깐 식사를 하는 사이에도 땀에 젖은 옷이 차갑게 느껴지며 추워지기 시작한다. 서둘러 빗물과 함께 식사를 마치고 계속 마등령 쪽으로 향하였다.
지난해 오세암에서 올라왔을 때 있던 간이찻집은 모두 철수한 상태이고 앞서가던 진주 산행팀들이 움막 근처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
여기에서 16명은 설악동 쪽으로 하산을 하시고 26명만이 공룡능선을 계속 산행해 갔다. 공룡의 등갈기는 무척 높고 깊다. 한없이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했는데 여전히 끝이 없다. 지난해 보조자일이 필요했던 구간은 모두 고정자일이 쳐져있어서 준비해간 자일이 무겁기만 했다.
한기원 동기와 집사람도 많이 지친 듯 속도를 내지 못한다. 휙-지나가는 바람이 비닐로 된 모자커버를 하늘로 날려 보냈는데 나중에 김환(45) 선배님이 챙겨오셨다.
간간 비안개 틈새로 설악의 기막힌 경관들이 펼쳐지곤 한다. 희운각을 바라보는 마지막 재어서 몇 장의 사진을 찍고 희운각에 이르니 선발대 김동숙 선배와 같이 갔던 김지현 동기가 식사를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다.
늦게 이상수 동기가 엄청난 무게에 짓눌린 채 젖은 배낭을 메고 합류하였다. 대단한 48산꾼들이다. 꽁치통조림을 끓여 저녁식사를 끝냈다. 해는 기울었지만 비는 그쳤고 계곡에 들어가 손발을 씻은 후 대피소의 퀴퀴한 2층 마루침대에서 내일 산행을 생각하며 잠들었다.
2004년 7월 18일(일) 비온후 맑음.
식은 밥에 라면을 끓여 아침식사를 마치고 늦게 7시에 출발하였다. 본디 백두대간은 희운각 뒤쪽능선을 치고 올라가서 대청, 중청, 끝청으로 이어지지만 희운각 뒤쪽길은 입산이 안 된다.
철사다리를 오르는 힘겨운 산행이 계속된다. 문진신(74) 후배팀이 엊저녁 술이 땀으로 쏟아진다고 하며 후미를 오른다. 소청에서 앞서간 팀과 잠시 합류하였다가 중청에서 바로 끝청 쪽으로 향하였다.
앞서간 팀의 일부는 김지현 동기와 대청봉으로 떠났다. 오르막길에 잘 가던 한기원 동기가 내리막이 되면서 자꾸 늦어진다.
끝청을 지나 한참 바쁘게 움직이는 중에 마주 오던 서울팀 중에 대학시절 함께 공부하던 보건복지부 서기관 임종규(행정고시) 후배를 만났다. 중학교 2학년 아들과 함께 산행중이라고 하는데 옛날 우리집에 왔을 때는 아직 말도 제대로 배우지 않았던 어린애였다. 보통 반갑지가 않다. 내 결혼식 때 접수를 보며 궂은일을 도와주던 생각이 난다. 시간이 없어 다시 연락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2시간 가까이 내려와서 서북능 갈림길에서 휴식한 후 한계령 쪽으로 내려왔다. 한계령에 오니 마등에서 설악으로 내려갔던 16명이 합류하여 종주 파티로 양주를 준비해 놓고 기다린다.
내려오는 순서대로 불러서 술 한 잔과 안주를 나누어 준다. 끈끈한 정이 너무 고맙다. 이상수, 김지현 동기가 오고 한기원 동기가 무척 힘들어하며 내려온다. 계단을 올라가 배낭을 달라고 했더니 끝내 자기가 지고 내려가겠다고 한다.
한계령 휴게소 식당에서 산채돌솥비빔밥으로 48동기 중식을 끝내고 양양에서 목욕하고 부산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