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남정맥을 끝내고...

산행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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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남정맥을 끝내고...

2,807 문흥만(47) 2005.07.09 14:08
2004년 1월 11일 시작한 낙남정맥은 2005년 6월 26일 18개월 19회를 마지막 회 차로 등반을 끝냈지만 주요 구성 인원은 망월산악회의 낙동정맥에 이어 2차 낙남정맥 등반 시 참가하지 못한 사람을 주축으로 출발 하였다. “낙남정맥은 남부 해안 지방의 분계선으로 생활문화와 식생, 특이한 기후구를 형성시키는 중요한 산줄기이다. 지리산 영신봉에서 시작하여 남하하다 옥산(614m)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대곡산(543m), 여항산(744m), 무학산(763m), 구룡산(434m), 대암산(655m)을 거쳐 낙동강 하구를 지키는 분산(盆山)에서 끝난다.”는 정의를 의아해 하며 모든 정맥 꾼이 출발하는 출발점은 김해시 상동면 고암 삼거리 야산. 감천이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매리2호교가 있는 곳이다. 분산이 아닌 동신어산인 것이다. 이것은 마치 백두대간을 후세의 산꾼들이 천왕봉이 아닌 웅석봉에서 출발하였듯이 낙남정맥도 분산이 아닌 동신어산에서 출발하는 것은 우리 산꾼의 지혜라 생각된다. 첫 단추 어떤 일을 계획하고 실천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고 지루 할 수도 있지만, 이번 낙남정맥은 남다른 감회가 있고 주위의 도움이 얼마나 많은 힘이 되는지를 보여준 산행이라 감히 졸필로 참석해 주신 동문 및 특별 회원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 고 져 한다. 2004년1월10일 저녁. 출발 점검 차 모여 저녁 식사를 했다. 도상거리 약 221km에 실측 거리는 약 280km가 넘을 낙남정맥을 간단한 일정표, 거리와 회 차를 소개하고 저녁을 먹는다. 반주로 몇 순배 돌던 술은 결국 만취가 되고, 다음날 첫 산행에 동참하는 홍영곤(47회)동기와 최종진(61회)후배는 등산 자체가 처음이라 심히 걱정이다. 다른 동문 한현근(49회)씨 및 정두진(특별)씨는 망월산악회에서 같이 산행을 하여 충분한 실력을 알고 있고 오늘 계획한 도상 거리 12.9km는 무난하리라 생각하지만 홍영곤 동기와 최종진 후배는 매리의 야산을 지나 대동-대구간 고속도로 공사 지점을 지나면서 걸음이 늦어다. 우리와 같이 출발한 대구의 낙남정맥 팀들은 꼬리를 감춘 지 오래고, 우리는 힘들게 동신어산에 도착했다. 벌써 도착한 한현근. 정두진씨는 20여분이나 기다리고 있었다. “낙남정맥이 시작되는곳” 이라고 쓴 까만 표지석 앞에서 간단히 기념 촬영을 하고, 뒤 돌아 보면 건너편의 오봉산(533m)이며, 토곡산(855m)과 천태산(630m)이 두루 보이고, 그 뒤로 부산의 진산인 금정산(801m)도 튀어나온 고담봉의 생김새 때문에 금방 알 수가 있다. 앞을 보면 가야할 470m봉 과 460m봉, 522.2m봉, 장척산, 신어산동봉, 신어산, 신어산서봉이 보인다. 몇 분간 휴식을 취하니 홍영곤 동기와 최종진 후배가 처음 보다는 나아진 기분이다. 522.2m봉을 향해 발길을 힘차게 내닫는다. 동신어산에서 522.2m봉까지 도상거리는 4.5km.능선과 재를 두세 개는 더 넘어야 한다. 정면엔 522.2m봉과 그 우측에 장척산이 보인다. 한차례 가파르게 올라선 봉우리가 522.2m봉이다. 정맥은 오른쪽으로 꺾으면서 6분 정도 내려섰다 올라선 곳엔 지도상에 없는 장척산, 낡은 등산지도가 설치되어있고 현 위치가 장척산(560m)이라 표시되어있으며 주변의 버스시간이 함께 표시되어 있다. 장척산에서 7,8분 내려오면 안부가 나오고 다시 4분여 오르면 묘지가 있는 능선분기점이다. 생명고개인가? 1차선으로 콘크리트포장길이 나있는 높이 290m의 생명고개다.(세명 고개=똥 바람 고개 : 고개 마루에 올라서면 바람이 세차게 불어대기 때문) 절개지로 올라 급경사 잡목숲길로 들고 20분쯤만에 능선분기점인 능선마루에 올라선다. 약간 오른쪽으로 꺾어 가파른 오름길은 계속되고 제2봉 격인 능선분기점에 올라선다. 이제 큰 나무는 자취를 감추고 억새풀이 뒤덮인 유연한 초원지대가 펼쳐지고, 군데군데 키를 넘는 돌탑이 쌓여 있는 신기한 풍경이 펼쳐진다. 약 5분쯤 더 오르니 산불감시초소가 보이고 드디어 20평쯤의 공터로 된 신어산 정상이다. 전망이 좋아서 지나온 정맥이 동신어산 아래까지 잘 바라보인다. 남쪽 아래로 김해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데, 드넓은 김해평야가 확 트여서 시원스럽다. 철쭉 광장 조성지를 알리는 안내판을 확인하며 올라선 넓은 공터 정상에는 이정표(영운리고개:4.4km, 상동매리:11.4km, 선암다리:6.4km, 천불사:4.1km)와 표지석이 서있고 산불감시초소가 있다. 영운리 고개까지 남은 거리는 4.4km 1시간 30분 정도면 충분히 통과하리라 계산해본다. 출렁다리를 통과하며 좌측으로 우뚝 솟은 기암 괴봉과 소나무의 어울림은 한 폭의 그림 같다. 깊은 계곡과 아름다운 산세에 탄성이 나왔다. 1km쯤 걸어 계단 길을 올라서니 널따란 헬기장이 나타났다. 이어 경사가 급해지면서 암릉 길이 되더니 능선분기점인 돌탑 있는 서봉(630m)이다. 능선분기점에서 정맥은 능선 길을 버리고 왼쪽으로 뚝 떨어진다. 수직의 바윗길은 나무와 돌부리 할 것 없이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안전하게 내려서야 한다. 힘든 경사 길을 내려서니 가야컨트리클럽 그린에 내려선다. 이어 왼쪽으로 조금 떨어져있는 능선이 우리가 가야할 길이지만 그곳을 통과하기에는 문제가 많다. 캐디에게 능선 길을 통과 할 수 있는 방법을 물었으나 대답이 없다. 잠시 일행과 의논을 하고 낙남정맥 길을 버리고 안전하게 통로를 따라 입구로 나선다. 가야컨트리클럽 입구에서 200m정도 도로를 따라 가면 오늘의 종착점인 영운리 고개이다. 이렇게 낙남정맥 꾼의 첫 단추는 열아홉 번째 단추를 채우기 위해 나가고 오늘하루 처녀 산행으로 지친 홍영곤 동기와 최종진 후배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목욕 후 간단한 뒤풀이가 행해졌다. 중간 차의 일들 낙남정맥의 문제점을 들라고 하면 -야산이라 사유지가 많고 농장 주인이 표시기를 없애버린 곳이 많다. -고속도로가 통과함으로 마루 금이 이어지지 않고 우회하여야 한다. -개발 현장이 많아 마루 금이 공장의 중앙에 있고 개발 현장의 중심에 있기도 하다. 이 모두가 낙남 정맥의 장애물이지만 이것은 우리 정맥 꾼의 생각이고 농부 입장에서 보면 조상대대로 이어온 농토에 갑자기 불어온 정맥 꾼들의 행렬은 황당한 불청객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실정이니 우리 정맥 꾼들은 풀 한 포기 나무 한 가지 아끼지 않으면 혹시 다음에 있을 농민들의 정맥 반대 데모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채석장으로 멍들고 공원묘지로 갈라진 마루 금을 따라 냉정 근처의 단 고개 장 고개에 도착했다. 장 고개를 내려와 종주산행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남해고속도로다. 무단횡단으로 정면 돌파 시도를 계획하지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차량행렬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코스를 우회하기로 마음먹는다. 확실한 우회 길도 없고 고속도로를 횡단 할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한 안내문 하나 없이 통과 할 수 있는 방법은 도로를 횡단하는 수로의 통관이라든지 지하 굴다리가 있어야만 하는데 쉽게 보이지 않는다. 난감한 사항이다. 오늘따라 일차 종주시보다 이영은(본인 처), 정동숙(홍영곤 처), 정진욱(53회) 3명이 늘어 8명이 산행을 하고 있으니 횡단 길을 빨리 찾아야 하나 보이질 않아 수로의 통관으로 횡단을 결정했다. 유격 훈련도 이처럼 힘들지는 않겠지만 좁은 통관을 낮은 포복으로 겨우 통과하여 고개를 드니 고속도로의 빗물 수로라 철망이 막혀 나갈 수가 없다. 어찌하란 말인가? 다시 되돌아 나오니 정두진, 정진욱이는 포복을 하지 않은 모양이다. 그 둥치가 좁은 통관을 무슨 수로 통과 하겠는가?하는 생각에 미치니 미안하기 짝이 없다.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하는 중. 더 밑쪽의 농수로를 발견한 정두진이 오라고 한다. 그곳은 물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신발을 적시며 도하를 할 수 있는 곳이다. 도하 작전을 시작 했다. (이 구간이 본인이 리더한 구간 중 제일 잊고 싶은 구간입니다. -창피-) 쭉 늘어서 물에 젖은 양말을 짜내고 옆을 보니 표시기 몇 개가 걸려있는 벚꽃나무에 만개한 벚꽃이 나를 봄의 중심에 서있게 한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진례 쪽으로 500m쯤 가면 탱크도 지날 수 있는 농로가 있어 쉽게 진행 할 수가 있다. 이처럼 미숙한 낙남 정맥 길도 하나하나 경험을 쌓으며 전진한다. 2004년7월25일은 낙남정맥 출발 9회 차(오곡재-발산재)이고 낙남정맥 길이 반으로 줄어든 축하 산행이다. 임영순(40회)형수님. 45회 김환, 박석근. 48회 박선화, 이상수, 윤영태. 49회 노영훈. 특별회원 김정원, 김곡지, 박말순, 배명희님의 우정 산행이 있어 차량도 22인승 버스로 대체하고 낙남정맥 시작 후 최고 많은 19명이 참석했다. 여항산을 지나면 이름도 알 수 없는 무명 산의 연속이고 고도차가 적은 야산이라 시간당 2.5km-3km정도는 달릴 수 있다. 오늘은 도상 거리 8.85km의 비교적 짧은 구간을 특별한 사항 없이 산행이 끝나고, 평암리 회식 집으로 발길을 돌린다. 조그만 계곡 옆에 위치한 회식 집은 숲이 울창하여 한 여름에도 물이 차다. 대나무로 수로를 만들고 정원에는 잔디를 심고 계곡 물을 집 옆으로 유도하여 소주 및 맥주를 시원하게 담가 두고 있다. 이곳은 박말순 회원이 소개한 집으로 5월에 서북산-인성산 등반 시 일차 수질 검사가 끝난 집이라 도착 즉시 준비된 X고기와 닭고기로 허기를 채우며 소주 +맥주로 분위기는 익어갔다. 면연한 산들의 맥놀이를 직접 발로 뛰고 눈으로 확인하는 낙남정맥이 고도를 낮추기 시작하여 진주가 가까워질수록 시골 마을 앞산 정도의 고도로 맥을 유지한다. 그 맥이 진양호 옆을 지날 때는 수려한 강산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고 유수교를 지날 때 그 밑으로 흐르는 가화강은 1968년 남강 땜을 막고 생긴 진양호의 물길을 정간에서 발원한 세월천을 역류시켜 가화강을 통해 사천만으로 흐르게 한 인공으로 만든 수로다. 물이 산을 넘은 유일한 곳이다. 낙남정맥의 회 차가 거듭 될수록 느끼는 한 가지는 표시기에도 등급이 있다. 그냥 달아둔다고 전부가 아니다. 그 뒤에 오는 정맥 꾼이 달아둔 표시기를 보고 진행 했을 때 아무 차질이 없으면 1급(3점)이라 볼 수 있고, 같이 헤맬 땐 2급(2점), 그 표시기를 보고 진행하여 낭패를 볼 때는 3급(1점)이라 정의하면 우리의 낙남정맥 꾼은 1.5급(2.5점) 정도면 후한 점수 일까? 낙남정맥 동안 공포의 표시기기 있다. 나타났다간 사라지고, 나타났다간 사라지고한 붉은 형광색 천 표시기는 따라가면 계곡이고, 진행하면 절개지로 유도한다. 그 표시기는 줄곧 낙남정맥으로 가고 있다. 만약 낙남정맥을 등반 했다면 -3급이고 그냥 야산을 등반 했다면 1급이다. 이제는 산 꾼들도 up grade되어야 할 시점에 도달 했다. 18회 차 산행은 돌고지재-고운동치 구간이다. 갈수록 인원이 늘어 13명이다. 오늘은 A조 B조로 나누어 한 팀은 순 주행 한 팀은 역 주행이다. A조는 김환(45회), 한현근(49회), 정두진(특) 3명이 순 주행 팀이고 B조는 임영순(40회), 김동숙(망월산악회장님), 홍영곤(47회), 김영섭(47회), 이상수(48회), 정진욱(53회), 배명희(특), 박말순(특), 김곡지(특), 그리고 본인 10명이 역 주행 팀이다. 고운동치에서 역 주행 팀은 하차하고 순 주행 팀은 돌고지재로 행했다. 중간에서 만나 중식을 하고 차량 열쇠를 주고받으면 시간도 절약 되고 택시를 부르는 경비도 절약된다. 고운동치 근처가 지천에 산나물이며 고사리다. 그리고 조금 더 가면 산죽이다. 산죽이 십리는 충분이 되겠다. 불과 20여 년 전 이곳 사람들의 눈물 젖은 소득원 이었다. 푼돈을 벌기 위해 산을 오르내리다가 낫에 베이고 뾰족한 대 뿌리에 찔린 가슴 아픈 기억들을 간직하지만 이제는 그냥 주워도 가지지 않는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이어 닿은 곳은 길마재. 옛날 빨치산들이 넘나들던 고갯길이다. 그 고개 어귀에는 빨치산 소탕 때 국방군이 불을 질러 폐허가 된 빈이터가 이끼 낀 돌담울타리로 남아 있다. 이어 6.25때 양씨와 이씨 가족이 피난 와서 살다간 양이터재. 산불로 타버린 소나무 가지가 을씨년스럽게 늘어서 있고 잡목도 타버려 죽은 가지만 보이는 지리산 대화재지역. 예전에 횡천면 전대리 쪽에서 회신리로 넘어가자면 연두머리고개를 돌고 돌아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붙어진 돌고지재. 돌고지재에서 차량으로 다시 고운동치로 향한다. 고운동치에 도착하니 국립공원 관리공단의 차량이 보이고 직원이 나와 있다. 이유 인즉 관리사무실에서 보니 출입금지구역에 사람이 다니는 것을 보았다며 벌금(50만원) 징수 차 왔다는 이야기다. 옆에는 빈 승용차 2대가 있다. 아찔 하는 순간이다. 다음 산행이 마지막 구간으로 출입금지구간(휴식년제)을 타야하는데... 이제는 지킬 껄 지키는 up grade된 산 꾼이 되어야겠다. 피날레! ( Finale! ) 2005년 6월25일 일 년 반 이상을 달려와 끝이 어딜까 생각했던 마지막 구간이다. 부산일보 낙남종주 팀이 쓴 한편의 시가 내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 무턱대고 시작한 낙남정맥 종주답사 두 발자국 떼고 거친 숨 몰고 열 발자국 옮기고 아홉 번 뒤돌아본 행복한 고행 헤쳐가다 기어가다 이어온 지 삼백 마흔 날 제대로 배웠을까 뜻대로 보았을까 우리의 살 우리의 삶터 내일이면 낙남종주 아쉬움 속 마감이라 바람찬 청학의 밤 깊은 회한만 켜켜이 쌓인다 대미를 장식하기위해 한 달 전부터 고민이다. 시간 ,인원, 경비 모두가 무시 할 수 없는 요소이고 안전한 산행이 되어야 하니 걱정이 태산이다. 한 회 차도 빠지지 않은 한현근(49회) 총무와 의논하니 둘째 요일에 했던 산행을 넷째 요일로 변경하고 경비를 줄이기 위해 봉고 이동을 결정 했다. 차량을 아낌없이 지원 했던 홍영곤 동기와 차량을 의논하고 6월 25일 피날레로 결정 지웠다. 드디어 25일 아침부터 유난을 떤다. 몇 주 전부터 확인한 지리산에 사는 동기 김윤배(47회)에게 회원이 묵을 장소와 회식관계를 확인하고 100% 진행이 순조로움을 재차 확인한다. 오늘 오후 5시에 모이기로 한 동래지하철역 4번 출구 오후 4시30분. 홍영곤 동기는 이미 도착하였고 나머지 동문은 한두 명 모이기 시작한다. 참석자는 김동숙(망월산악회회장), 손봉상(망월산악회부회장), 김환(망월산악회산행대장), 임영순(40회), 47회 김영섭, 문흥만, 홍영곤(2), 48회 이상수(2), 49회 노영훈, 한현근, 정두진(49특), 50회 김종포, 한철주, 이기욱, 이채환, 한영태, 배운제, 박순갑, 박근배, 51회 최상호(2), 윤흥준, 53회 정진욱, 54회 추환, 57회 신상호, 특별회원으로 배명희, 박말순, 김곡지 30명으로 우정 산행 참가자가 많아 15인승 1대, 12인승 1대, 7인승 1대 모두3대의 차량이 오후5시15분에 출발하여 숙박지인 산청 금서 향양리로 행한다. 산청 I/C에서 김윤배 동기와 만나 숙박지에 도착하니 8시다. 준비된 돼지 생고기를 굽고 삶고 분주히 움직인다. 50회를 제외한 회원들은 큰 평상에 자리하고 서울서 일부 내려와 합친 50회는 별도로 마련된 평상에서 식사를 했다. 김영섭 동기가 양주 한 병을 내어 놓고 건배. 김동숙 회장님은 이웃집에 마실가고 없다. 무슨 이웃 집? 김윤배 동기와 같이 지은 정원 주택 2동이 하나는 동기가 살고 한쪽은 김동숙 회장님과 잘 아는 사람이 산다. 그래서 세상은 넓어도 죄 짓고는 못 산다. 밤은 깊어가고 47회는 새벽 2시까지 해롱해롱. 다음날이 걱정이다. 2005년 6월 26일 새벽부터 부산하게 움직인다. 아침 식사를 끝내고 도시락을 채우고 출발지인 청학동으로 간다. 고운동치에서 외삼신봉은 휴식년제 구간이라 건너 뛰고 다음 숙제로 남기기로 했다. 7시17분 인원 점검이 끝나고 삼신봉을 향해 출발한다. 후미를 보며 느긋하게 움직인다. 삼신봉에 도착하여 지리산 조망을 보려하니 장마 시작이라 천왕봉이 보이질 않는다. 남부능선의 장점이 지리 주능선 조망인데 포기해야 할 것 같다. 삼신봉을 내려서니 낙남정맥 망월산악회 표시기가 보인다. 6년 전 표시기가 너무 선명하여 기념 촬영을 하였으나 알고 보니 손봉상 부회장이 옛날 남은 표시기를 달면서 지나갔다. 11시 40분 음양수 앞 넓은 바위에서 중식을 한다. 그곳에 보면 “등산로 아님”이 영신봉으로 가는 낙남정맥 길이다. (등산로 아님과 휴식년제 구간을 통과 시 50만원 벌금이다.) 음양수 샘에 들려 목을 축이고 세석으로 향한다. 이곳에 보면 옛날 사람이 살고 있었던 흔적이 여기 저기 나타난다. 세석에 도착하니 앞서가던 조는 영신봉으로 행했고 몇 남은 사람과 함께 영신봉으로 행한다. 장마 비로 앞은 보이지 않고 바람은 세차고 축하 공연치곤 좀 심하다. 낙남의 신(영신)께 바칠 제수도 준비하지 않은 채 낙남정맥 등반을 하였으니 영신이 노하신 것은 아닌지? 다음에 영신봉에 가며는 꼭 인사드리리라 마음먹고 서둘러 하산을 했다. 세석에서 12시40분 출발하면 거림까지는 2시간30분후면 내대리에 도착한다. 다시 한번 우정 산행을 하면서 용기 주웠던 회원분들게 감사드리고 여기 언급되지 않은 상공회의소 문상화(48회), 무학산 구간에서 3차 동행했던 류억형(두산중공업)씨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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