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박 지리종주 중산리에서 성삼재까지

산행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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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박 지리종주 중산리에서 성삼재까지

3,046 임환무39 2008.06.17 12:36

동래고등학교 망월산악회의 지리산 종주프로그램을 보고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금년 60대 중반의 내가 100리 가까운 산길을 당일로 내달리는, 무리에 따라야하나 말아야 하나를 놓고 한 고민이다. 그래서 보름 전부터 5시간 코스로 금정산을 서너 번 타면서 내 체력을 시험해보니, 조금 무리지만 이번에는 체력보다 정신력으로 한번 도전해보기로 결심했다.

내가 지리산을 종주한 것은 처음 망월산악회를 따라 1997년 12월31일 신년 산행으로 성삼재에서 중산리까지 세석산장에서 1박하는 2년?에 걸친 겨울산행과, 두 번째는 망월산악회 백두대간 때인 2001년 9월 8일~9일 중산리에서 출발하여 벽소령에서 1박하고 성삼재까지 가는 가을 산행을 했다. 이번이 삼세번이다. 지리산은 삼오십오(3x5=15)라 하지 않는가. 3도(경남, 전남북), 5군, 15개면이라니 나도 이번 종주가 세 번째요, 천왕봉을 5번째 오르니 수식이 성립된다.

 

산행하는 6월14일은 내가 태어 난지 예순다섯 해다. 저녁 배낭을 꾸려 무게를 달아보니 8kg이다. 당일 장거리 산행이라 배낭무게를 최소한으로 줄였다. 밤 10시 명륜동 집결지에 모이니 영원한 산행 동반자 양철모(37회)선배님도 보인다. 안심이다. 대원 36명이 대형관광버스롤 타고 10시 10분에 중산리로 향한다. 

무박산행은 버스에서 잠을 최대한 자 두어야 한다. 비몽사몽 눈을 부치려니 버스 TV에서 올림픽 남아공축구 예선전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 : 트르크메니스탄 전이다. 3:1로 승리를 한 시간 버스는 중산리에 도착했다. 잠을 자지 못해 피곤하다. 해드렌턴을 머리에 쓰고 등산화 끈을 단단히 묽었다. 디카를 호주머니에 넣었다. 중간 중간 시간 체크는 디카 사진의 시간기록을 활용하기 위해서다.

 

2시 40분 중산리 산행통제소에서 인원파악을 거친 후 출발한다. 나는 선두그룹에 서기로 했지만, 김동숙(42회), 홍주환(43회), 한현근(49회)후배가 내리 달린다. 중산리 노고단코스의 기록이 12시간이라는데, 오늘 그 기록을 깨보려고 한단다.
야간산행은 침묵이 흐른다. 간간히 스틱이 바위를 찍는 딱딱 소리와, 밤 새소리가 휙~ 휙~ 난다. 낮에는 휘파람소리로 들렸는데 밤에는 귀신 소리같이 으스스 하다. 이번 팀에는 최고령 29회 허장 선배님이 동참했다. 대단하시다. 우리와 보조를 같이하신다. 10년 선배이시니 금년 75세다. 이동암(44회)후배와 한조가 되어 오른다.

 

4시 10분 로터리대피소에 도착했다. 법계사 일주문 앞에 경남은행에서 만들어 놓은 급수대가 있다. 수통에 물을 채웠다. 지리산은 중간 중간에 물이 있으니 그때그때 채워 넣기로 하고 수통은 1리터짜리 하나만 준비했다.
5시 13분 천왕봉 직전에서 일출을 맞이하지만 날이 흐려 붉은 구름 띠가 동쪽 하늘에 벋쳐있다. 이렇게 보는 일출도 장엄하다. 정상이 가까워 오면서 바람이 새 차다. 천왕봉 바로 밑에 있는 천왕 샘에서 물 한 모금 먹고 막바지 경사길을 끙끙거리며 오른다. 수년전 오를때 보다는 등산길 주변이 조경? 으로 정비가 잘 되어있는 것 같다. 

 


천왕봉 정상

 5시 40분 남한에서 두 번째 고봉인 천왕봉(1,915.4m)이다. 내가 태어나 5번째 올라온 산이다, 등정기념 사진촬영이 어려울 정도로 바람이 불고 날이 춥다. 목적지 노고단이 가마득히 보인다.
구름이 높게 깔린 약간 흐린 날씨다. 오히려 기온이 싸늘하고, 구름이 있는 날이라 산행하기는 안성맞춤인 것 같다. 몇일 전에는 주말에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지만 망월의 큰 산행은 하늘이 도운단다.  

통천문을 통해 촛대봉에 오르니 세석산장과 장터목산장에서 밤을 센 후 올라오는 산꾼들과 마주친다. 세석산장이 내려다보인다. 동행하던 이동암 후배는 다리장단지가 몰린다면서 하는 수 없이 세석에서 대성리로 내려가는 B코스를 택한다며 무사히 다녀오라는 인사를 한다. 우리대원들은 세석에서 대성리로 내려가는 B팀과, 벽소령에서 대성리로 내려가는 C팀, 그리고 완주 팀으로 삼분 될 것 같다.

 

정각 8시 세석산장이다. B팀에 합류하겠지 했던 허장(29회)선배님이 배낭무게를 줄인다며 초콜릿을 꺼내 나눠주시며 예상과는 달리 완주의 기대를 버리지 않으신다. 나는 지금 컨디션으로 벽소령까지는 끄떡없을 것 같아, 산행을 계속하기로 하고 영신봉을 넘으며 아침 먹었다. 아내가 어제 내 생일이라 찰밥 도시락 두개를 싸주며, 아침용과 점심용을 표시해주었다. 영신봉을 지나면서 길옆 숲속에 들어가 아침을 먹는다. 허기를 때우고 다시 목적지로 향한다. 칠선봉에 도착하니 9시다. 덕평봉(1,531.9km)이 힘들다. 그래도 희망의 벽소령이 있기에 힘을 낸다.

 지리산 줄기

10시 30분 종주 구간의 반쯤에 해당하는 벽소령에 도착하니, 문흥만(45) 부회장이 목재 야전식탁에 앉아 우리를 기다리며 페트병 소주를 내놓고 한잔 하잔다. 힘이 없을 때 약간의 알코올이 힘을 내게 한다고 한다. 나도 어제 캔 맥주를 냉동실에 넣어놓고 그냥 와버려 산행전 긴장이 얼마나 컷는가를 말해준다. 산에 오르고 보면 잊고 온 것이 많다.

벽소령에서 대성리로 하산하느냐 완주하느냐를 결정해야하는 분기점이다. 여기를 지나면 포기란 없다. 죽어도 완주해야한다. 망설이던 김창준(38) 선배도 내려가도 3시간을 가야하고, 계속해도 그 시간에 삼도봉을 지날 수 있는데 삼도봉을 지나면 갈 만하다고 하며 계속하기를 권한다.

 


벽소령대피소

그렇다 시작이 반이라 하지 않았던가. 목표를 달성하자, 앞으로 또 이런 기회가 내게 주어질 것 같지 않다. 해보는 것이다. 출발이다. 형제봉을 지날 때쯤 날이 맑아지며 햇살이 예사롭지 못하다. 아내가 꼭 챙겨가라던 썬 크림도 놓고 왔구나.

12시 30분 연하천 대피소에 도착했다. 연하천대피소는 확장공사로 산장인지 공사장인지 착각할 정도로 건축자재들과 인부들로 어수선하다. 그러나 산장앞에 놓인 통나무 의자와 식탁이 산장이름과 어울린다. 점심이다. 김선배는 센트위치를 싸오셨다. 산꾼들의 점심은 산상뷔페다. 꿀맛이다.

연하천 대피소에서 명선봉 쪽으로 백두산이란 이정표가 붙어있다. 여기가 백두대간 길이라는 우회표현인데, 약간 제미 있는 표지판이다. 통일이 되면 이길로 곧장 백두산으로 향할 수 있을 것인데 언제나 그길이 열릴까?. 여기서 부터 산행 길은 완전한 목재 계단길이라 힘은 들지만 산행 진도는 빠르다. 그러나 백두대간에 이런 인위적 건조물이 많이 생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계단 끝에 오르니 명선봉(1,586.3m)이다. 토끼봉(1,534m)을 거쳐 화개재 내리막 길 까지는 등고 차이가 별로 없는 말 그대로 백두대간의 산행고속도로다.

 

삼도봉에서 후배들과 함께

2시가 넘어 화개재에 도착했다 화개재에는 목재로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젊은 친구들이 두건을 쓰고 화보를 찍는지 촬영을 하느라 분주히 왔다 갔다 한다. 화개재는 뱀사골로 내려가려는 등산 팀들이 대원들을 부르는 소리로 떠들썩하다. 옛날 화개재는 전라도 남원과 경상도의 하동 장꾼들이 물물 교환을 하던 장터란다. 하동의 화개장터 생각이 난다. 내가 우물 주물 하는 사이에 동행하던  동료를 놓치고, 혼자 걷는데 최상호(51회)후배 팀이 따라와 동행 한다. 나는 선두를 양보하려고 하니 굳이 앞장을 서란다. 산행을 하며 앞장을 서면 들 피곤하다곤 하다지만, 뒤에서 앞사람을 재촉하는 것 같은 부담감은 있다. 화개재에서 삼도봉을 오르는 길은 또 목재계단길이다. 1999년 가설한 이 계단 길은 폭 1.5m, 길이가 240m이고 550계단의 방수 목재다. 30도 정도의 경사 계단 길은 산꾼들에게는 인내하기 힘든 등산길이지만 진도는 빠르다.

 

3시 15분 경남, 전남, 전북을 삼등분하는 분기표시가 있는 삼도봉 정상에 도착하니 날이 개여 햇살이 따갑다. 1,732m의 반야봉이 압도한다. 오늘 우리 팀은 반야봉을 우회한다. 2001년도 산행 때는 백두대간을 완성하기 위해 김동숙(42) 홍주환(43) 후배가 그냥 지나지 못해 배낭을 노루목에 두고 산에 올랐다 내려왔던 기억이 난다. 대단한 산꾼이라고 감탄했던 일이 생각난다. 나도 언젠가는 반야봉을 한번 타야지 하는 꿈을 꿔본다.

 

오후 4시 임걸령이다. 햇살이 내려쬐는 임걸령은 한적하다, 임걸령의 약수터는 지리산의 샘터 중에 제일 물맛이 좋다는 곳이라, 7년 전 종주 때 여기서 담아간 물을 어머니께 드렸더니 좋아하시기에 이번에도 수통을 꽉 채웠다. 이정표는 노고단까지 2km가 조금 넘는다. 심신이 한계에 도달한 상태다. 기진맥진이란 표현을 이럴때 쓰는 것일까?. 포기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수십 km를 걸었으니, 발가락과 발뒤꿈치가 등산화에 실켜, 약간의 통증이 있다. 노고단으로 향하는 길은 능선길이라 서쪽으로 지며 마주치는 햇살이 따갑다. 멀리 노고단의 돌탑이 보인다. 종점이 빤히 보인다. 이제 종주 시간을 단축해보려는 욕심이 생긴다. 흙길은 속보로 하고, 돌길은 완보로 걷고 또 걷는다. 이정표는 노고단에서 노고단언덕으로 바뀌면서 1km로 표시되고 있는데, 이놈의 1km가 왜이리 길까. 가도 가도 끝이 나오지 않는다. 막바지 노고단 길은 수평 길이지만 돌길이라 더 지친다. 뒤에 따라오던 후배는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서 혼신의 힘으로 내달린다.

 


노고단 도착

5시 10분 더디어 노고단 언덕에 도착했다. 중산리에서 여기까지 지리종주 약 30km, 14시간 30분의 대장정이다. 아~ 대한민국 만만세~
지리산 종주 3번째 도전을 마감하는 감동의 일성이다.
나 자신이 놀랄 정도다. 65회 생일 잔치로 지리산 종주를 택하고, 완주했던 이 시점에서 제일먼저 가족들이 생각난다. 아직 건강을 유지하시는 90노모와, 노모를 봉양하느라 수고하는 아내, 서울의 아들, 딸 손주 손녀가 눈에 아른거린다.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서쪽 하늘의 일몰도 이렇게 감격스러운 때가 또 있을까. . . . . .

노고단에서 기념 촬영을 마치고, 버스가 기다리는 성삼재로 내려간다.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축축하다.

 

노고단에서 성삼재까지는 넓다란 길을 내놓았지만, 지친 등산꾼들에게는 기를 채우듯 울퉁불퉁한 자연석을 깔아 보행하기가 힘들다. 여기서 한 시간을 더 내려간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버스가 기다린다. 무심코 버스에 오르니 박수소리가 난다. B코스 C코스 대원들과. 먼저 도착한 선발대가 환영하여 맞이하는 박수다. 이때가 6시 30분이다,
오늘 산행 대원이 36명중에 완주한 대원이 29회 허장선배님을 포함하여 20명이다. 부산으로 오며 저녁을 먹고 명륜동 전철역에 도착하니 밤 11시, 무박 2일의 지리종주 산행을 마쳤다. 
 
망월산악회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며 오늘 행사를 주관해준 임원진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동래고등학교 망월산악회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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