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이어달리기 2차 원정-충청을 지나 경상 가는 길을 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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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호(53)
2007.10.27 11:44
고참들의 무궁한 경험과 신참들의 패기, 30명이 넘는 달리미로 구성되어
한성과 경기를 점령하는데 기여한 망월 부산달리미들의 1차 원정에 비해
2차 원정은 김유일 달림장 아래 박태일 고참과 9명의 신참만으로 꾸려진다.
10월 19일(금요일) 저녁 이재욱 총무의 헤아림이 담긴 한 통의 메일로부터 2차 원정이 시작된다.
내일 아침 기온이 급강하 예정이니 두터운 여벌의 옷과 달림복장을 갖추라는…
" 여보! 마누라! 낼 저 우에 춥다 카네"
" 난재 가방 챙길 때 우와기 좀 뚜꺼번거 두어개 여 나라."
" 그라고 새벽 5시에 깨배라 알았재?"
바로 독기(?) 담긴 " 요번에 안 가몬 안되는교? "
" 월요날이 옴마 생신인데 땡기리가 일요일 모두 모쳐서 밥 묵는다 카는데 우야낀교?"
저 사람이 뻔히 알면서 약점하나 잡았다고 또 심술 부린다.
이 때는 방법이 딱 하나다. 비상금을 쪼매 많이 풀면 해결된다.
현찰은 아깝지만 넘어 가 주는 마누라는 넘 좋다.
여명을 질주하는 경부고속도로의 차량 두 대.
처음과는 달리 대구서부터 차가 많아 속도가 나질 않은 덕분에
결국 지각을 하고 출발지에서 약 6km 뛰고 있는 본진에 합류한다.
파란 유니폼에 동래고란 문귀가 시리도록 선명하다.
동래고! 이는 정녕 듣기만 해도 가슴 벅차고 피가 끓는다.
하물며 내가 지금 동래고란 글귀를 내 몸에 달고
선배님들의 항일운동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서울~부산간을 달리는 것이다.
그냥 폼 잡지 않아도 절로 폼이 나고 지천명의 세월도 허물어 진다.
제법 싸늘한 날씨가 온 몸을 휘감는다.
몸을 대충 철저히 풀고 뛰고잽이 동기들과 뛰고 있는 대열 끝자락에서 달린다.
새벽 5시에 일으나 먼 길을 직접 운전해서 그런지 몸이 무거운 느낌이다.
오늘도 제발...몇 번이고 중얼거린다. 마라톤에 입문하면서 생긴 버릇이다.
저 만큼 몽단이 고개가 보인다. 가볍게 넘어 간다. 망마들에게 쌓인 내공으로
이젠 웬만한 고개는 모두들 깊은 숨질도 없다.
가끔씩 들리는 휘슬소리, 차박차박 아스발트 도로에 부딛치는 달리미들의 신발소리,
바로 앞 달리미(개성고)에게서 몇 번이고 울려대는 가스방출 소리.
그 정겨운(?) 소리에 길들여져 갈때 쯤 청주 시내를 통과한다.
기억이 새롭다. 작년 이 맘때 그 때도 이 길을 달리고 있었다.
처음 참가한 경이달였기에 마음만 1단이었을 뿐 내공은 10급이라 이 곳 청주 시냇길이
무척이나 힘이 들었다. 차량 매연에 두 서너 고개를 넘고 마지막이려니 하면
또 고개가 있고 넘어면 또 있고, 소진된 체력은 가쁜 호흡만 연신 만들어 내고
달린 거리도 약 25km를 지나고 있어 초보의 첫 머리올림치고는 너무 고약했었다.
올 해는 다르다. 숨길도 부드럽고 지난 해 그리도 멀던 청주 시냇길이 너무나 짧게 느껴 진다.
새삼 한 해 동안 게으르지 않은 자신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3년 전 91kg의 몸무게(허리 44인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시작한 마라톤.
시속 7km로 약 1km 달림을 시작으로 5개월에 23kg의 몸무게 감량에 성공하기까지
자신과 가정의 행복을 마지노선으로 삼고 모든 유혹들과의 전쟁을 치러 이긴 승전물이
68kg의 몸무게와 1년에 4~5개의 마라톤 시합에 나갈 수 있는 체력이고
부산물로는 만년 지방간이 사라졌고 약 복용없이 고혈압을 정상으로 만든 것이다.
약 30km 정도 달린 것 같다.
달린 시간이 길수록 제주 해녀의 숨비소리 같은 호흡의 빈도가 잦아 진다.
좀 쉬면서 잔여 구간 및 내일 달림에도 대비를 해야지 하고 생각하니 몸이 먼저 알아 차린다.
오늘 아침부터 갑자기 떨어진 기온이 막 달림을 마친뒤라 무지 춥게 느껴진다.
가볍게 스트레칭으로 마무리 하고 마누라의 정성(돈 심?)이 담긴 겨울 추리닝으로 갈아 입는다.
일시적이지만 벌써 겨울의 냄새가 난다.
셀 수 없이 많은 문명의 편리함 중에 승용차를 빼 놓을 수 없다.
승용차를 타고 가장 편안한 자세로 경이달 대열 뒤에서 대청호를 지나고 있다.
이 곳엔 여름과 이별한 가을이 머물고 있다. 풀벌레 소리가 가을의 우체부였다면
벌써 겨울의 초병인 빨간 유혹의 단풍이 만산홍엽을 만들려 하고 있다.
황금빛 들녁의 도화지 위에 그려진 산 자락마다 단풍은 물들고 이젠 내 눈에서도 물들고 있다.
파란색 잉크를 업질러 놓은 듯한 호수와
첫사랑 소녀의 맑은 얼굴 처럼 잡티 하나없이 깨끗한 파아란 하늘.
어떤 화가도 그릴 수 없는 그 수채화 속을 파란색 운동복의 달리미들이 달리고 있다.
둘째 날 이른 아침.
날씨가 어제보다 더 추워진 것 같다. 하얀 입김이 새어 나온다.
에스코트를 위해 오신 경찰관에게 감사의 성의로 물과 밀감을 드리니 좋아 하신다.
특유의 구호로 스트레칭을 시키는 개성고 그 분의 인솔하에 모두들 열심히 몸을 푼다.
오늘은 마지막 날이니 첫 구간부터 뛰어 40km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
왼쪽 다리의 허벅지 근육이 예사롭지 않다. 동기들도 무릎 및 근육통증을 호소해
첫 달림을 햇살이 핀 뒤에 시작하라고 해놓고선 달림대열에 몸을 세운다.
출발 카운터를 한다. 오! 사! 삼! 이! 일! 출발~~
대열의 맨 뒤에서 4~500M 달리면 몸이 풀릴거란 기대감으로 다리를 절면서 달려 본다.
힘이 실리질 않고 무리하여 달리려 하면 심한 통증이 온다. 일단 대오에서 이탈하여 통증부위를
집중적으로 문지른 후 또 달려 본다. 도저이 힘들다. 일단 달림을 접고 계속 몸을 풀어 본다.
이런 일이 없었는데 아마 장시간 운전에 따른 경직된 자세가 문제였나 보다.
1 구간, 2 구간, 3 구간도 지나 간다. 결국 오늘은 차량 운전 도우미로 마감해야 하는가?
동기들은 피어 오른 햇살과 함께 기온이 조금씩 상승하자 무릎에 파스나 보호대를 하고
달림을 시작한다. 다소 위안이 된다. 동기 영식이는 처음 5km를 뛰려다 옆의 개성고 여성분
뛰는 것에 자극을 받아 5km를 추가한 후 마치려 하는데 개성고 한분이 덩치도 비슷한데
우리 좀 더 뛰자고 끄집어 당기니 또 5km를 더 달린다. 15km를 달린 후 기진맥진하는 모습이
너무 안스럽다. 고마운 동기들! 니들이 아니면 뉘라 이리 해 줄까?
대전 동기들이 보내준 찬조금으로 김유일 선배님과 서울 김상현 선배님, 동기들과
점심을 하고 또 다시 몸을 풀어 본다. 집행부에서 마지막 세 구간 약 18km는 마라톤선수급으로
구성하여 늦어진 시간을 만회하려 한다. 더구나 궤방령까지의 그 구간들은 오르막이라
더더욱 우리 동기들에겐 무리다. 그래도 좀 나은 내가 해야한다는 생각에 4~500m를
빠른 속도로 달려 본다. 아침보단 덜하지만 여전히 통증은 가시질 않는다.
전 구간 흔적을 남기려한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오기로 마지막 세 구간에 도전 한다.
약 2km를 달리니 다리 근육이 풀렸는지 통증이 사라진다. 마음이 편한해지고 몸은 가벼워 진다.
제법 속도감이 있지만 이 정도는 자신 있다. 바로 뒷주자의 무척이나 거칠어진 숨소리와 함께
오르막 두 곳을 차고 나니 앞과 옆의 사람들이 보인다. 김유일, 유맹석, 김상현 선배님이 보인다.
후미와 20M 이상 거리가 생겼으니 선두 속도를 줄이라는 멋쟁이 재욱 후배의 외침이 들린다.
포도를 따라 도열해 하늘거리는 코스모스의 자태에서 몸과 마음의 휴식을 찾는다.
얼마나 달렸을까? 바로 옆 김유일 선배님께서 앞 산 왼쪽 능선 끝자락이 괘(궤)방령이라 하신다.
괘(궤)방령! 드디어 달림원정대 앞에 네가 모습을 보이고 우리를 맞이하고야 마는구나!
백두대간의 한 자락이면서 충청의 끝이요 경상의 관문! 금강과 낙동강의 분수령!
추풍령이 공적 업무수행의 관로였다면 괘방령은 과거보러 가는 선비들의 민로였던 고개!
바람이 쉬어 가는 추풍령이라면 구름이 자고 가는 괘방령!
멀리 돌탑이 보이고 기이한 모습의 몇몇 장승이 보인다. 누군가의 외침이 들린다.
" 경상가는 길을 열어라! 진군의 나팔을 불어라!"
동~고! 개~고! 동~고! 개~고!.......
양교 달림원정대의 힘찬 진군 나팔소리와 함께 이틀간 망마의 가을전설 2차 원정은 마감된다.
몸 속 어느 깊은 곳에서부터 나의 모든 것을 불태운 용암이 분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