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한 아이 명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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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간(53)
2007.05.31 11:50
호남정맥 제5차 5-6구간 산행일인 5월 27일 아침은 구름이 꽉 낀 쟂빛 하늘로 기온도 선선하여 마치 비라도 뿌릴 것 같은 날씨다. 금번 코스는 승주 청소년 수련원에서 출발 죽정치-송치-바랑산-문유산-노고치 까지의 도상 15.5킬로의 다소 긴 거리다. 예상 산행 시간은 7시간반으로 만만치 않은 산행이다.
버스를 타고가는 바깥 풍경은 무채색의 수묵화 풍경을 연상케 한다. 24일,26일 연이은 대운산 산행으로 다소 지쳐 있었지만 도회지 회색 인간에서 탈피해 산이 좋아 산에서 살고 싶은 맘은 어쩔 수 없다. 대운산 자락의 조그만 암자 앞에 서 있는 표석의 글귀가 떠 오른다. " 放下着 " (집착에서 벗어 나라) 이글이 묘하게 엊그제 본 이창동 감독의 "밀양"이라는 영화의 내용과 대비되어 갖가지 상념을 불러 일으킨다.
영화 밀양에서 전도연은 깐느 영화제에서 여우 주연상을 받을정도로 연기력이 탁월하다.교통사고로 죽은 남편의 고향 밀양에서 아들과 새 삶을 시작한 주인공은 유괴범인 웅변학원 원장에 의해 아들을 잃고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을 겪으며 교회에서 새로운 길을 찿으려 한다. 주인공은 하느님의 은혜를 받고 교도소에 수감된 범인을 찾아가 용서하려고 하지만, 범인은 주인공과 같은 정신적 시련을 겪었노라면서 자신도 하느님을 받아들여 이제 용서를 받고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하며 오히려 주인공을 위로 하려 든다. 여기서 주인공은 하느님을 부정하며 과연 용서란 무엇인가? 라는 정신적 고통에 부닥친다.
영화의 참 내용은 신과 인간 관계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 관계에서 용서와 화해의 본질적인 의미를 찾으려 한다. 주인공이 " 방하착 "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면.... 그러나 그 고귀한 진리를 우리 갑남을녀들이 실천할 수 있는지에 대한 화두는?글쎄다.
명헌이는 57회 이욱희 후배의 막내 아들로 초교 3년생이다. 9시 35분에 명헌이를 포함한 37명의 산악인들이 바랑산을 향해 힘찬 걸음을 내 디뎠다. 초입에는 계절의 여왕 다운 짙은 신록 아래로 가파른 길을 숨을 헉헉 거리며 오른다.명헌이도 아빠와 약속이라도 했는지 대장 뒤를 바싹 붙어 잘 올라간다. 약 25분 오르니 죽정치에 이른다. 여기서 한 숨 쉬며 갈증을 적시는 물 한 모금을 들이킨다. 다들 어려운 산행을 예상이라도 했는지 태양은 이미 타고 있었고 한 자락 바람이라도 시원한 느낌을 준다. 길가엔 하얀 찔레꽃이 짙은 향기를 내며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유행가 "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 는 찔레꽃이 아니라 해당화가 아닌가 하는 추측이든다. 찔레꽃은 봉오리가 맺힐 때 연분홍이었다가 피어나면 하얀색으로 되는 것과 꽃잎의 가장자리가 연한 분홍색을 띄는 종류가 있다. 아까시아나무가 아까시나무인 것처럼 식물이나 꽃 이름도 잘못 쓰여진 경우가 간혹 있다.
농암산을 넘고 550봉,570봉,500봉,370봉을 지나 송치에서 급수를 하고 바랑산 아래의 510봉에서 11시 40분 경에 식사를 하고 헉헉거리며 오르니 드디어 바랑산(618.9m) 정상이다. 정상에서 기념 사진 찍고 한 숨 돌릴 여유도 없이 선두가 출발을 재촉한다.
명헌이도 좀 지쳤는지 선두와 거리를 두어서 명헌이를 앞질러 나아갔다. 그런데 이 녀석이 앞지르는 것을 용서치 않는다. 뛰어와서 내 앞을 턱 가로 막으며 부지런히 대장 뒤를 따라가는 것이 아닌가? 욱희 후배가 아들을 따라가자니 평소 페이스를 오버한다고 실토한다.바랑산 아래의 530봉에서 51회 종복이 형이 B코스로 하산하고 일행은 선두와 후미간의 차가 거의 없을 정도로 열심히 나아간다.
정맥의 길이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곳곳에 임도가 나 있고 맥이 끊어진 곳이 많다. 개발이 자연 환경을 파괴하는 측면과 개발로 인해 편리해진 측면을 고려하면 어떤 것이 옳은지 분간하기 어렵다.
일행은 문유산을 바이패스하여 점터봉을 향한다. 모두들 지쳐 힘들어 하지만 어린 명헌이가 더 힘들어 한다. "명헌아 , 아빠와 좀 쉬었다 오너라! " 그렇게 얘기 해도 찔찔 울먹이며 계속 나아간다. 정말 대단한 녀석이다. 길을 좀 비켜라 해도 막무가내로 일 등을 할 결심으로 비켜서질 않는다. 이제는 용기를 북돋우는 수 밖에 없다. 콤파스가 짧아 평길은 자꾸 쳐지고 오르막 내리막는 잘 간다. 정말 잘 한다고 격려하니 울음을 멈추고 힘든 길을 억지로 내닫는다.
점터봉을 넘으니 산행대장께서 명헌이를 앞세우며 이제 네가 산행대장이니 일등 해라 하신다. 노고치까지 하산길은 앞이 탁 트여 조망이 좋으며 산행로 옆은 약초 재배지라는 팻말이 있고 산딸기 넝쿨이 우거져 팔을 긁는다.
드디어 명헌이가 일등을 하였다. 버스에서는 시원하게 냉각된 맥스 맥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들 시원하게 한 잔하며 흐믓한 분위기다.그런데 우리의 꼬마 산행대장이 캔맥주 하나를 집어들고 뒤늦게 하산하는 제 아빠를 향해 뛰어 가는 것이 아닌가? 거참 효자라도 보통 효자가 아니다. 욱희 후배는 효자 아들 두어 행복하겠다.
고집스런 꼬마 산행대장은 망월산악회의 자랑이다.
명헌이 화이팅!!!!!
망월산악회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