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6차 상주 노악산 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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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화(48)
2007.05.15 13:21
망월 496차 상주 노악산 산행기
2007년 5월 6일 흐림.
모두 44명, 최욱(29), 양철모(38), 김유일(40), 김영해(41), 김동숙(42), 손봉상(43) 고문님을 비롯한 연세 많으신 많은 선배님, 후배들과 함께 7시 10분 명륜 지하철역을 떠났다.
만덕 터널을 지나 밀양으로 가는 낙동강변 고속도로를 달린다. 8시쯤 대구 부근을 지나 10시쯤에 상주 능암리 고향산천 휴게소 앞에 내려 작은 공장 마당을 지나 산행 들머리에서 발대식을 마치고 힘찬 ‘망월’ 구호와 함께 고도 100m 쯤에서 산행을 시작하였다.
계곡이 모두 말랐고 가랑잎마저 바싹 말라서 비가 흠씬 뿌렸으면 더욱 활기가 넘칠텐데하는 아쉬움이 든다. 10시 50분 고도 571m 국사봉과 작은 봉우리를 두 개를 넘고, 11시 24분 옥녀봉(610m)을 지나 11시 50분에 정상 바로 밑 안부에서 푹신한 낙엽을 방석으로 하여 식사를 하였다.
등산은 왜 올까? 식사하려고 오는 것이 아닐까? 밥시간은 언제나 즐겁다. 얇은 깔판위에 갖가지 반찬이 차려진 뷔페상은 잔칫집과 같다.
문흥만(47) 대장님이 소주를 내놓고 이를 뽑아서 상태가 안 좋다는 김환(45) 부회장님부터 돼지 족발을 안주로 술을 돌리신다. 좀 늦게 도착한 윤영태 48 산우회장은 오징어무침을 커다란 그릇 가득 준비하여 초장을 버무려서 푸짐하게 나누어 준다. 식사가 끝날 무렵 김유일(40) 고문님께서 오셨다.
어제 5월 5일 동백섬에서 기장 군청까지 왕복 45km를 완주하신 선배님께 송구스럽기 짝이 없다. 오늘 산행을 핑계로 나는 집사람과 22.5km만 뛰고 그만 두었는데.....
57회 이욱희 후배의 아들 명준이는 산도 잘 타지만 음식도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 온 가족이 계획에 따라 망월 산악회의 산행 일정을 잘 활용하는 이욱희 후배의 자녀 교육방법이 참으로 훌륭하다는 생각이 든다.
정상에는 안내문이 새겨진 사방 1m 가 좀 넘을 만한 커다랗고 두꺼운 돌이 놓여 있고 옆에 삼각점 표시가 있다.
참고로 전국에 16,000 여점의 삼각점 중에 상주 11로 표시된 노음산 정상은 동경 128-58-48, 북위 36-26-20, 높이(고도)725m 이다. 바로 아래 계곡으로는 남장사와 저수지, 우리가 타고 온 버스가 보인다. 몇 장의 정상 사진을 찍고 500m 쯤 내려와서 갈림길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잡아 가파른 길을 내려오니 중궁암에 이른다.
스님 한 분이 마당 들마루에 앉아 맞이해 준다. 법당 참배를 마친 임환무(39) 홈페이지 담당 선배님, 이동철(44) 회장님 사진을 찍어드렸다. 수도꼭지에서 시원한 물이 나오며 양 옆에 작은 요사채가 있고 조용하여 공부하기 좋은 절간인데 마당에 풀이 웃자라서 한 나절 울력을 하면 산뜻할 것 같다.
한 참 계곡길을 내려오니 다시 작은 암자가 나오는데 대문에는 ‘閑人勿入’ ‘猛犬注意’라는 글이 있다. 들어가 보니 흰색의 진도견 모양을 한 덩치 큰 개 한 마리가 목줄에 묶인 채 달그락 거리며 먹이를 먹고 있는데 낯선 사람을 보고도 짓지를 않는다. 좀 속화된 느낌이 많아 보이는 절이다.
법당 옆에 새로 지은 커다란 건물에는 아직 색을 칠하지 않은 잘 만들어진 장식용 난간이 좁은 마루를 따라 사방에 둘러져 있다. 조금 내려오니 남장사가 나온다. 시간은 13시 39분이고 만보계는 12,300걸음(약 7km)이다.
절에는 보물 922호 보광전 목각탱화, 923호 관음선원 목각탱화, 990호 철불 좌상, 모두 세 개의 보물이 있다. 보물이 있는 법당 안과 건물 옆에는 CCTV, 방화 장치 등이 눈에 띈다.
- 안내문에 보니 ‘이 목각탱은 조선 후기에 새겨진 것으로 규격은 225 ☓ 236cm 이다. 주존인 철조 비로자나불 뒷벽의 후불탱으로 모셔져 있는 이 목각탱은 아미타 극락 화상의 도상을 나무로 조각해 금분을 입힌 것이다.
불상의 뒷벽을 종이나 비단에 그린 탱화가 아닌 목각탱으로 장식한 방식은 조선 후기에 나타난 특이한 한 형식으로 생각되며, 전국적으로 6점이 조사되어 있을 정도로 드문 예에 속한다.
조성 연대는 알 수 없으나 1928년 개금한 기록이 있으며 전체 구성이나 조각 수법 등이 대승사(大乘寺)의 목각탱과 유사하다.’ -
남장사 앞에 새로 만들어진 아치형의 돌다리 옆에는 수령 400년의 노거수 느티나무가 있다. 53회 찬식, 종간 두 후배의 나무에 대한 현장 학습이 시작된다. 카메라 배터리가 다 되어서 시진을 찍을 수 없으니 아쉽기 짝이 없다. 엄청난 굵기의 나무에는 반구의 공을 붙인 것처럼 400년 고난의 흔적들이 보인다.
일주문을 지나면서 보니 가운데 주 기둥에 벌레 먹어 많은 구멍이 있는데 단기 4285년이라는 흰 글씨가 보인다. 올해가 단기 4340년이니 꼭 55년 된 기둥이다. 역사적인 기록에 나타난 연호인데 요즈음 서기만 쓰고 단기는 왜 안 쓰는지 모르겠다.
시내를 건너는 다리목에서 김종간(53) 후배가 노란 풀꽃을 꺾어서 보여 주면서 ‘애기똥 풀 꽃’이라고 한다. 연두색의 꺾인 줄기에 맺힌 샛노란 구슬 물방울은 참으로 신비스런 느낌을 주는 빛이다.
주차장에 오니 마을 아주머니 몇 분이 곶감과 콩, 감식초를 내놓고 팔 고 있다. 홍주환(43) 선배님은 줄낚시를 내 오셔서 계곡물에 물고기를 낚으려고 하는데 잘 안된다고 하시며 되감으신다.
김창준(38), 김동숙(42)고문님 부부는 오늘 산나물을 많이 뜯어 오셨다고 하시는데 좋은 때에 청정 지역의 나물이라서 맛이 좋을 것이라고 하신다. 다음 산행 때 산나물 반찬을 한 번 맛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김창준(38) 선배님은 산나물을 뜯다가 지팡이를 두고 와서 고생 끝에 되찾았다고 하시는데 김성진(54) 총무는 선그라스를 잃어버렸는데 뒤에 오시던 어느 선배님이 주워보니 테가 부서져 있어서 그냥 버린 것으로 생각하고 산에 버렸다고 하신다.
문진호(40) 선배님 부부가 차에 오르자 모두 박수로 환영하고 14시 20분에 떠났다. 버스 냉장고에 김종간(53) 후배가 기증한 하이트 캔맥주 두 상자가 시원하게 저장되어 있다는 회장님의 말씀에 모두 박수로 고마움을 표하였다.
남장사 들머리에 도로 옆에 있는 자전거 박물관과 목공예 전시장을 그냥 지나가게 되어 조금 섭섭하였다.
본시 이곳 상주 지방은 옛날에는 사벌국이라고 했고 경상도의 명칭이 경주와 상주에서 유래될 정도로 큰 도시였다.
삼백(三白)의 고장이라 하여 ‘곶감’ ‘누에고치’ ‘쌀’이 유명한데 길 양옆 밭에는 뽕나무가 자주 눈에 띄고, 상주 곶감을 생산하는 감나무는 모든 마을과 들판, 가로수까지도 감나무이다. 요즈음에는 뽕나무가 동충하초를 생산하는데 한몫을 한다고 하는데 노음산 북동쪽 은척면 두곡리의 뽕나무는 너무나 유명하다.
- 1972년 12월 29일 경상북도기념물 제1호로 지정되었다. 수령 300년 정도 된 높이 12m, 가슴높이 높이 2.7m의 노거수(老巨樹)이다.
수세(樹勢)가 왕성하여 가지는 동쪽으로 2.3m, 서쪽으로 4m, 북쪽으로 4.3m나 뻗어 있으며, 누에고치 30kg을 생산할 수 있는 잠종(蠶種) 1장분의 누에를 사육할 정도로 뽕잎이 무성하게 자란다. 조선시대 인조(재위 1623~1649) 때 뽕나무의 재배를 권장한 기록이 있어 이 무렵에 심은 것으로 추정된다.
뽕나무 앞에는 일제강점기 때 상주군수로 있던 최병철(崔秉轍)이 1935년에 세운 명상기념비(名桑記念碑)가 있다. 은척면 두곡리에는 이처럼 큰 뽕나무가 4그루 있었으나 모두 없어지고 이 나무만이 유일하게 남아, 상주의 오랜 양잠 역사와 전통을 말해주며 상주군농회에서 소유, 관리하고 있다.
상주 시내에 있는 사우나에서 목욕을 하고 윤희철(40)선배님이 사 오신 은척 양조장의 막걸리와 김종간(53) 후배가 낸 시원한 캔 맥주가 갈증을 식혀준다. 일찍 출발하여 ‘새마을 운동의 발상지’라는 큰 글귀가 적힌 청도 휴게소에서 문진호(40) 선배님께서 사주시는 구슬 알갱이 아이스크림을 처음으로 맛보았다.
일찍 도착하여 좀 섭섭하다는 58회 안길명, 윤진섭, 이갑선, 박춘기 네 후배들과 함께 명륜동 삼육장 돼지 갈비집에서 간단한 뒤풀이가 있었다. 함께 자리한 사람은 손봉상, 김환, 문흥만, 윤영태, 한현근, 윤종복, 김규학, 김성진, 이재권, 모두 14명이다.
오늘은 가벼운 산행 길과 특이한 별미를 맛본 부담없는 산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