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하루

산행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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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후기

행복한 하루

2,192 김종간(53) 2007.03.26 21:01
어제는 하루 종일 비가 오다가 그쳤다 해서 산행 당일도 일기가 좋지 못하면 어쩌지 하고 노심초사하여 전날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산악회 고정 멤버 찬식이 효제 한테서 술 한잔 하고 내일 산행 취소하자고 한다. 얼마나 기다렸던 산행인데 그럴 수 없으니 일찍 귀가하라고 충고하면서 적당히 마시고 같이 산행하자고 권유하니 알았다 한다. 아침은 비가 개어 상쾌하다. 새벽 봄바람은 싸아한 느낌으로 다가와 장도를 축하해 주는 듯하다. 모두들 새벽부터 일찍 나와 호남정맥 테마 산행에 애정을 갖고 있는 것을 느꼈다. 어젯밤 음식을 잘못 먹었는지 아랫배가 슬슬 아파오면서 영 컨디션이 좋지 않다. 아니나 다를까 진영 휴게소 지날 즈음 견딜 수 없는 생리통(?)이 일어난다. 참자, 참자... 참는 것도 인생 수업 중 하나다. 참을 忍을 생각하며 그 고통스런 나만이 아는 비밀을 간직한 채 남강 휴게소까지 버텼다. 고진감래라 고통 뒤에는 행복한 평온이 따랐다. 39명을 태운 버스는 진월 톨게이트에서 진상면까지 잘 달려갔다.진상면 수어댐이 보이고 수어 저수지를 굽이 돌아 달리는 차창 밖의 풍경은 이미 봄 기운이 여인네 허리를 절반은 감고 있는 듯, 양지 바른 곳 매화는 지고 있고 휘휘 널어진 수양벚꽃은 반이나 개화하여 맘을 들뜨게 한다. 매화가 지고 간 그 자리엔 개나리 진달래 벚꽃이 자리를 이어가니 금수강산이 온통 꽃 천지로 뒤덮여진다. 일조량이 길어 질수록 온갖 날짐승과 들짐승들은 짝짓기를 할 것이며, 꽃들도 제각기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수정을 할 것이니 이 어찌 대자연의 숭고한 법칙에 축복을 보내지 아니하랴! 내회 마을 도착 시간은 9시 30분. 발대식을 마치고 9시 40분 부터 산행 시작하다. 선두가 임도로 가다가 질러 가려고 그랬는지 길을 잘못 들었다. 그러나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하니 내친 김에 길 아닌 급경사 면을 계속 오른다. 너무 수직으로 올라가 안 쓰던 근육마저 쓰니 하체가 당긴다. 오른쪽 계곡 물이 시원하게 콸콸 쏟아져 내려 숨이 차오른 몸에 위안이 된다. 10여분 길이 아닌 곳으로 오르니 또 임도가 나타난다. 임도로 좀 올라가다 또 질러 가는 길을 택했는지 길 아닌 곳으로 간다. 여기서는 임도로 가는 편과 산행대장 따라가는 편으로 두 편이 나뉜다. 에라 모르겠다. 죽어도 산행대장 따라가는 편이 나을까 싶어 그 쪽을 택했다. 전형적인 육산에 발이 푹푹 빠지고 썩은 참나무 가지를 잡다가 넘어지고 약 10분 가량 또 헤맨다. 헤매길 참 잘 했다. 사진에서나 봤던 연리지(連理枝)를 발견했다. 때죽나무 연리지! 후배 익표에게 연리지를 소개한다. 참 신기하다고 한다. 한 나무의 서로 다른 가지가 합쳐 한 가지를 이루는 것을 연리지라 하고 같은 종자의 서로 다른 나무가 합쳐져 한 나무를 이루는 것을 연리목이라 한다. 진실되게 서로 사랑하는 남녀의 사랑을 일컬어 연리지, 연리목이라 한다. 길 없는 곳을 인도하신 김환 선배님께 감사드린다. 고통후의 행복! 연리지를 발견한 행복감에 젖어 힘든 것도 모르겠다. 또 10여분 올라가니 비로소 산행로가 나타난다. 그럼 그렇지 우리의 인도자가 길 없는 곳으로 인도할리 없지! 산행로를 따라 터벅터벅 걸어 올라가니 또 한 중턱이 나타나고 다 올랐다 싶으니 또 중턱이다. 힘겹게 매봉까지 올랐으나 조망은 별반이다. 일행은 매봉에서 약간의 휴식을 취하고 백운산 정상을 향해 내려갔다 올라가길 수차례 백운산 3킬로라는 팻말에 이르니 팻말 가운데 매봉이라 적혀있다. 그럼 아까 휴식 취한 곳이 매봉이 아니란 말인가? 41회 김성학 선배님이 사진을 찍어 주면서 여기가 매봉이라 한다. 추한 후배가 고도를 재어보니 1000미터가 넘는다. 매봉은 지도상 865미터로 되어 있으니 분명 여긴 매봉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 그럼 팻말이 잘못된 걸까? 참 헷갈리고 아리송하다. 백운산 정상을 앞두고 헬기장에 도착하니 12시가 다 되었다. 모두들 시장기를 느꼈는지 도시락을 펼친다. 54회 후배님들과 자리를 마련하고 애써 싸온 술안주를 내어 놓으니 술 가져온 분들이 아무도 없다. 돼지고기 수육과 닭통다리 바베큐가 소주가 없으니 영 인기가 없다. 아무리 맛있는 안주인들 "약 중의 명약"이 없으니 무용지물이다. 항상 소주를 가지고 오는 찬식이 효제가 안와서 원망스럽다. 식사 후 오르막은 여간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다. 소화시키느라고 혈액이 위장에 집중해 있는 까닭이다. 이럴 때 일수록 거북이 산행 하듯이 느릿느릿 올라가야 한다. 터벅터벅 오른 지 얼마되지 않아 백운산 정상에 도달이다. 정상에 올라 오른 편을 굽어보니 지리산의 장쾌한 능선이 연이어 달린다. "형님, 저 봉이 무슨 봉입니까? 저 봉이 바로 천왕봉 아이가. 그 왼 편 아래에 장터목이고 더 왼 쪽을 봐. 저기가 세석 평전이야." 선후배의 정다운 대화를 들으니 행복한 유대감을 느낀다.정상에는 사람들이 많아 사진도 찍지 못해 아쉽다. 백운산을 뒤로 하고 신선대로 향했다. 산행로는 신선대를 지나지 않고 그 아랫길로 나 있다. 일행 대부분이 신선대에 오르지 않고 계속 나아갔다. 그냥 지나치려하니 다른 일행 중 누군가 백운산에 와서 신선대를 안보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여 54회 신영진 후배와 함께 올라 가기로 했다. 신선대에 자일을 타고 오르니 사방이 탁 트이고 백운산 정상이 바로 코 앞에 있는 듯하고 밑에서 일진 광풍이 불어 몸이 하늘을 향해 신선처럼 솟아 오르는 듯하다. 신선대엔 고산에서만 자라는 주목과의 구상나무 몇 그루가 호기롭고 의연하게 모진 바람에 견디며 서 있다. 구상나무! 우리나라 우리 토종의 나무.... 우리의 기상과 얼이 그대로 녹아 흐르는 도도한 기품이 넘치나니... 아! 자랑스럽다. 내 너를 여기 백운산에서 만나다니! 신선이 된 듯한 행복을 느끼며 이제 따리봉을 향한다. 한재 까지 이어지는 길은 내리막이다. 선배님들의 달콤한 재담을 들으며 한재까지 내려 오는 길은 아늑하고 푸근하다. 신영진 후배가 단숨에 달린다. 한재에서 한숨 쉬는데 휘한하게 생긴 소나무가 있어 박선화 선배님께 사진 한 컷하시라고 부탁한다.소나무 모양은 거꾸로 서 있는 여자인데 여자 하반신이 늘씬하게 있고 가운데에 남근이 우뚝 솟아 있으니 어찌 우리 모두의 호기심을 자극하지 않겠는가? 한재에서 출발하려는데 신영진 후배가 다리에 쥐내린다고 고통을 호소한다. 아까 내리막에서 뛰어 내려온 것이 원인인 듯하다. 다행히도 걸을 수 있어 일행은 따리봉을 향해 열심히 오른다. 따리봉은 또아리봉의 준말이며 또아리란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이전에 물동이나 짐을 머리에 일때 쿠션 역할을 하게끔 짚이나 헝겁으로 만든 원형의 다불을 뜻한다.백운산의 전형적인 육산위에 또아리 모양의 바위가 얹혀졌으니 또아리봉 또는 따리봉이라 한다. 따리봉까지 힘겹게 올라 앞을 굽어보니 도솔봉이 고요히 솟아있다. 뒤를 보니 신선대, 백운산 정상이 아스라히 위용을 드러내 보여 우리의 산행길이 얼마나 멀었는지 감을 잡게 해준다. 따리봉에서 도솔봉까지 가려면 또 200미터 이상 하산해야한다. 그래! 여기까지 힘겹게 왔는데 마지막 관문인 도솔봉까지는 가야지 하고 용기를 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산행로엔 참나무과에 속하는 신갈나무 일색이다.백운산엔 거의가 활엽 교목이다. 서어나무, 노각나무도 보인다.선배님들께 이게 바로 노각나무 아입니까 하고 아는 체 한다. 노루뿔처럼 단단하다고 노각나무- 그 모습이 참 아름답다. 헬기장 두 곳을 지나 도솔봉을 오르며 일행은 무슨 사념에 잠겼는지 침묵의 연속이다. 도솔천으로 가는 사람처럼 자뭇 숙연한 분위기다. 아마 모두들 힘이 들어서 그런가 보다. 드디어 도솔천에 올라 휴식을 취한다. 이인호 고문님께서 이제 더 이상 오르막 길이 있으면 못가신다고 한다. 대선배님께서도 어지간히 지쳤나 보다. 하지만 우리 보다 훨씬 연세도 많으신데 우리와 어깨를 나란히 견주며 여기까지 왔으니 새삼 존경스러움을 느낀다. 도솔봉에서는 형제봉이 쌍둥이처럼 나란히 서 있는 것이 보인다. 김환 선배님이 지도를 보면서 하산 지점을 눈으로 재어 본다. 하산하는 길도 온통 신갈나무 밭이다. 김환 선배님은 연신 지도를 보면서 주위를 살피신다. 여기 쯤 되면 하산 지점인데 아무리 가도 하산 지점이 나타나지 않아 신경이 곤두서 있는 것 같다. 아하! 지도의 하산 지점이 잘못 표기되어 있다. 지도상 하산 지점을 지나 890봉 아래로 하산하게 되어 있다. 친절하게도 조금 더 가니 표지판이 우리를 반긴다. 하산 지점이 나타나지 않아 맘이 졸였는데 모두들 안심하는 표정이다. 성불사까지는 1.5킬로. 이제 굴러가도 갈 수 있으리라. 하산하는 길은 계곡이 맑은 물을 담고 흐른다. 그 맑은 물을 마시니 몸도 맘도 맑아지는 것 같다. 물에 발도 담궈 보니 정말 피로가 말끔히 씻긴다. 이런 느낌이 바로 행복이구나.... 도상 14키로 이상의 산행. 선두가 4시 40분에 도착했으니 딱 7시간 걸린 산행이다. 후미가 6시 좀 넘어 도착했다. 성불사에서 성불한 것 이상의 뿌듯하고 행복한 산행의 대미를 장식했다. 망월산악회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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