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산정의 수박과 소나기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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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간(53)
2007.08.27 18:19
8월 넷째 주 일요일(26일).
오늘도 열정에 넘친 37명의 망월산악인들은 호남정맥 제8 구간(빈계재-백이산-석거리재-주릿재) 산행을 위해 작열하는 노염 아래 버스에 몸을 싣고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남도로 향했다.
한 줄기 바람도 없는 고요한 숲속은 오로지 찜통 더위로 우리를 맞아준다.
바로 사흘 전이 처서였는데 한반도는 식을 줄 모른다.
기상청에서는 최근 10년 동안 한반도 평균 기온이 세계 기온의 배 이상인 1.5도 상승했다고 보도한다.
빈계재에서 발대식도 없이 헉헉거리며 오르는 정맥 길은 온통 줄딸기 가시들로 가득차 여간 성가시게 하지 않는다.
세상만사가 쉬운 일이 없다 하지만 스스로 고통스런 길을 선택한 우리들로서는 후회할 수가 없었으며 한 판 가시밭길과 대결 한다는 심정으로 오르고 또 올랐다. 길을 오르다 보니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 떠오른다.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중략)
훗날 어디선가 나는 한숨을 쉬며 이야기 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우리 삶의 과정도 길과 같다. 비록 자기가 선택한 길이 가시투성이고 잡초가 많다 하여도 우리가 선택한 이호남정맥 길도 즐거운 맘으로 가야한다.비가내려도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도 눈보라가 불어도 뭔가를 이루기 위해 선택한 이 길을 가야한다. 이루는 뭔가가 건강일 수도 있고 친교일 수도 있고 자기 성찰일 수도 있다.
백이산으로 가는 길은 보라색 꽃으로 가득하다.
주위 분들께 자신있게 승마라고 말했지만 인터넷 검색결과 임여사님이 일러주신 무릇이 맞다. 촛대승마와 유사해서 말했는데 엉터리 식견을 가진 나 자신이 부끄럽다. 산행을 하다보면 야생화에 대해 헷갈릴 때가 있다. 그러나 오판으로 얻은 지식이 정정될 때 가장 확실한 지식이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백이산(伯夷山) 정상에 올라서니 조망이 확 트인다. 북 쪽으로는 우리의 발길이 스쳐온 조계산 장군봉에서 고동산이 이어지고 동으로는 벌교 너머의 여수와 섬들이 아스라히 보인다.
백이산의 유래는 백이숙제에서 비롯되었다 한다.
중국 은나라 시대의 백이 숙제 형제가 역성혁명에 반대하여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먹으며 살다 죽었다는 고사인데 그래서인지 고사리가 많아 보인다.
석거리재에서 뜨거운 한 낮의 식사를 마치고 또 헉헉거리며 산을 오른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딸기 가시 넝쿨들...
지칠대로 지친 일행은 선두와 후미간의 차가 크게 난다. 산신령 김성학 선배님이 점심 때 술을 많이 먹어 호된 고생을 하고 산도사(山道士) 진기 선배님이 다리 통증으로 되돌아서 석거리재로 내려가고 선배님 몇 분도 힘들어 하신다. 더 힘든 사람은 꼬마 산악인 명준,명헌 형제다.
하산 1킬로 못간 지점에서 선두는 후미를 기다렸다.
드디어 후미가 도착하니 61회 후배가 10킬로도 더 됨직한 시원하고 잘 익은 수박 한덩이를 내어 놓는게 아닌가? 모두들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 무더운 날씨에 무겁디 무거운 수박을 지고 오다니 일행은 아연 탄복할 수 밖에 없다.
역시 동고 후배다. 선배님들께서 칭찬이 자자하다.정말 맛있게 수박 잔치를 하니 때 맞춰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오고 뇌성이 일며 소나기가 시원하게 쏟아진다. 누군가 감로수라 한다.
더위에 지치고 갈증으로 목이 탄 우리들에겐 시원한 수박보다 갸륵한 후배의 정성이 고맙고 그 정성에 감복한 하늘이 시원한 빗줄기를 쏟아주니 이또한 즐거운 잔치가 아니겠는가?
고통스런 산행 후의 즐거운 잔치를 길이길이 간직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