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남정맥 1차구간을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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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남정맥 1차구간을 마치고

2,406 김유일(40) 2004.08.02 16:20
5년전에 낙남정맥 에 대한 글이 있길래 올립니다. 재미로 보아주세요. 낙남정맥 1차 구간을 마치고 1998. 1. 25 동래 명륜동. 흐리고 가끔 비. 1998.1.17(토) 15:00까지 집합. 15:20분 26명 출발. 김해 톨게이트를 자나자 이인호(34)회장의 인사가 있었다. “97년 5월 낙동정맥을 완주 후 그동안 낙남정맥의 준비기간을 보내고 드디어 오늘 대망의 낙남정맥을 시작하게 되었다. 낙남정맥은 21개 구간으로 나누고 매월 4주째에 실시한다. 유명산은 정기산행 시 실시하여 1년 6개월에 완주할 계획이다. 오늘 1차 산행에 26명이 참가하여 감사하다. 1차 산행은 지리산 영신봉에서 출정식과 산신에게 제사를 올린 후 삼신봉을 거쳐 묵계리까지 진행할 예정이다. 소요시산은 하산까지 8시간정도 잡고 있으나 적설량과 기후에 따라 상당히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대원 모두 안전한 산행이 되기를 기원한다.” 이어서 김영배(30)고문의 산행시 유의사항에 관한 당부가 있었다. “산신제를 지낸 후 영신봉, 삼신봉, 묵계리까지 진행하는데 눈이 많기 때문에 선두와 후미가 일체가 되어 움직이고,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는 무리하지 말고 삼신봉에서 청학동으로 하산할 경우를 고려해야 한다.” 겨울의 지리산 산행에 대한 대원의 안전을 제일로 해야 한다는 회장과 고문의 말씀이었다. 17:00경 남강 휴게소에서 휴식. 계속 궂은비가 내림. 19:30 거림 휴게소에서 사전에 오버트라우저 하의와 스페츠를 착용하고 렌턴을 준비. 출발할 때 비가 오고 있음. 한겨울의 지리산 자락인 거림 휴게소에 눈 대신 비, 산행시작 30분을 지나니 비가 눈으로 바뀐다. 약 4시간의 산행 끝에 세석산장에 도착한 시각은 23:30. 산장에서 방 배정을 받고 취침준비. 일부 침낭을 휴대하지 않은 대원은 충분한 침구를 빌리지 못해 숙면을 못함. 18일 아침 06:00 기상. 조식을 준비하고 식사를 완료한 후 08:00에 영신봉으로 출발. 08:30경 영신봉에서 산신제와 낙남정맥 출정식 거행. 이인호회장이 산신께 망월산악회의 낙남정맥 출정을 고하고 무사히 완주할 수 있도록 기원. 김동진(33)고문이 산신께 망월산악회의 의지와 기상을 고하고, 가장 후배인 추한(54)의 제례와 모든 대원의 삼배를 올려 출정식을 종료. 기념촬영 후 만세삼창하고 09:00 출발. 날씨 맑음. 어제까지 흐리던 날씨가 깨끗이 개이면서 저 멀리 동쪽 편에 천황봉이 운무사이로 웅장한 자태를 보이고, 남쪽으로는 운해와 고산준령이 겹쳐 보는 이가 신선이 된 기분. 속세에서 IMF니 정리해고니 하는 모든 것이 부질없는 것 같다. 적설량은 평균 30cm이상이고 곳곳이 50-60cm 되었으며 발자국이 하나 없는 낙남정맥의 첫걸음을 힘차게 출발. 겨울산행의 베테랑인 김영해(41), 김성학(41), 김환(45)등의 대원이 김영배(30)고문의 지휘아래 선두에서 럿셀하며 길을 열어 나간다. 인적이 끊긴 낙남정맥구간의 산길은 적설에 뒤덮여 잘 보이지 않고 크고 작은 봉우리가 암석이어서 우회할 길을 개척하여 가자니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맑은 하늘이지만 중간 중간 검은 설운이 강풍을 타고 이산 저 골짜기 사이로 변화무쌍하게 지나다니는데 그 사이사이에 보이는 천황봉, 촛대봉, 그리고 반대쪽의 노고단, 반야봉, 백소령 등이 구름 속에서 술래잡기하는 양 천진난만하게 놀이하는 것처럼 숨었다 나왔다 한다. 깊은 눈속에 전 대원이 힘들여 2시간이상 전진하여 주변을 살펴보니, 우리가 어제 몸을 누였던 세석산장을 두고 약 반 바퀴 쯤 정맥 능선을 따라 돌아온 것에 불과하였고, 가야할 삼신봉은 그 앞에 크고 작은 봉우리를 몇 개나 안은 채 저 멀리 기다리고 있다. 눈이 없고 길이 잘 보이면 한 두 시간에 족히 갈 거리건만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에서는 진행속도가 마음과는 전혀 같지 않다. 잠간 쉬면서 천황봉 쪽을 보니 장관 중에 장관이네. 천왕봉의 웅장한 모습이 더할 나위 없이 굿굿이 버티고 있고, 그 왼쪽에 촛대봉이 그 이름과 같이 뾰쪽하게 솟아있다. 두 봉우리의 정상은 흰눈으로 뒤덮여 있으며 중간 중간에 검게 보이는 바위가 보이는 모양이 꼭 히말리아 산맥이나 알프스 산맥중의 유명한 어느 봉우리보다 훨씬 웅장해 보인다. 더구나 춧대봉에 쌓인 눈이 휘몰아치는 북풍에 못견뎌 봉우리 끝에서 하늘로 날리는 모양은 직접 보지 못하고는 상상하기 어려우리라. 아! 내가 왜 카메라를 가져오지 않았던고. 애재라! 갈 길은 멀고 적설로 길은 험하다. 암봉을 비켜 옆으로 돌아가니 그곳도 험하기는 마찬가지. 선두에서 럿셀하여 만들어진 발자국을 20여명의 대원들이 잘도 지킨다. 늦잠자고 일어난 산신령이 이 발자국을 보고 몇 명이 지나갔는지 알아 맞출 수 있을까. 한 3명이라고 한다면 산신령님의 IQ가 130, 한 5명이라고 한다면 IQ가 150정도는 인정할 수 있겠지. 12시가 조금 넘어서 삼신봉은 아직 더 가야 하는 지점에서 간식을 먹으면서 천왕봉 쪽을 보니 지금까지 보았던 지리산 전경과는 전혀 다르다. 지리산의 대표사진은 노고단에서 천황봉까지의 연봉을 파노라마식으로 보여주던지, 아니면 몇 개의 봉우리가 겹쳐 정말 뫼산자를 그리는 것을 보여주었는데, 이 지점에서 보니 천황봉이 가운데 우뚝 서고 좌우에 여러 봉이 묻히면서 천황봉이 고고하게 나타나는 구나. 천황봉 정상의 바위사이에 눈이 덮여 폭포를 이루는 모양을 보이면서 좌우에 낮은 봉우리를 거느리고 있으니 지리산의 대장은 바로 나다하고 뽐내는 것 같다. 어렵게 삼신봉에 오르니 오후 3시정도 되었다. 원래 계획대로 묵계리로 향하는 것은 많은 적설을 럿셀하여야 하고 대원들의 구성을 생각할 때 무리라는 결론을 내고 청학동으로 내려오니 오후 4시가 되었다. 청학동 마을에 오니 청학동은 청학동이로되 이제 청학이 구름속에 머무는 동네는 아니고 청학을 탐하는 인간의 무리를 위한 식당과 숙박시설이 즐비한 동네가 되었구나. 소설속이나 옛날 영화속의 청학동이 그립지만, 그러나 이제는 청학동 마을 주민도 경제생활을 해야겠지. 마침 한복을 입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가시길래 반가워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드렸더니 “등산갔다 오는 길이냐, 그 눈길에 고생 많았겠다”고 격려해 주신다. 한복 할아버지 할머니 덕분에 청학동의 냄새를 코끝으로나마 맡은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전 대원이 도착한 오후 5시경 전세버스를 타고 청학동을 빠져나왔다. 하동으로 나와 공중목욕탕에 들어가니 이 목욕탕 개장 이래 최대의 고객입장이라는 기록(?)을 세우면서 7시까지라는 제한된 시간내에 오밀조밀한 욕탕을 효과적(?)으로 이용하여 전 대원이 피로를 풀었다. 이 정도의 생산성을 올릴 수 있으면 우리나라가 IMF시대를 빨리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서기도 한다. 7:20경 하동을 출발하여 부산으로 오는데 3시간이상 걸릴 것이라는 예상을 완전히 뒤엎고 마산 톨게이트를 8:25에 통과, 부산 동래온천장에 도착시각이 9:10이다. 정말 IMF가 무서운지 귀가시간이 빠르다는 안도감보다 국가경제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공식일정에 따라 온천장 게르만호프에서 전 대원이 생맥주를 하면서 이번 산행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와 여러 가지 소감이 교차된다. 특기할 것은 망월산악회 고문인 酒神 김동진 선배가 뚜껑이 달린 맥주잔을 사용한다. 맥주 김이 빠진다고. 산행때마다 수질검사의 검사장이신 형님이 맥주 김새는 것을 걱정하다니. 고참대원의 럿셀 재미(?)와 체력의 자랑, 중참대원의 세석산장에서 처음 1박해 본 감상과 산장지기의 불친절에 대한 성토, 신참대원의 처음 본 눈꽃과 설경에 대한 멋진 추억. 이렇게 낙남정맥 첫 구간이 완성되었다. (김유일(40)) (후기) 지금도 생각하면 아리해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기억이다. 김동진 선배는 1월 중순 금정산 시산제 참석을 끝으로 그 이후로는 망월산악회의 산행에 참석을 못했으며, 암과 씨름하다가 늦은 여름 먼저 가장 높은 산으로 가셨으니. 형님은 가도 우리 대원들의 낙남정맥은 계속해야지. 이것이 형님의 소망이고 우리 망월산악회의 전통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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