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타까운 마음에 모 일간지에 기고했다가 기사화되지 않은 글 올립니다.
지하철4호선 ‘동래고 앞 역’
조심스런 제언. 조선의 모든 땅에 일본제국주의가 만든 각종 학교가 식민지 교육으로 일관하던 시절, 1800년대 말 부산의 선각자들은 나라를 이끌 인재 양성, 민족 교육을 위해 동래고와 부산상고(현 개성고)를 세웠다. 양교는 일제 강점기 조선인 학교로서 수많은 비밀 독립운동을 하였고 3.1만세 운동을 치밀하게 주도하여 거의 모든 학생들이 경찰과 검찰의 조사를 받고 수감되어 실형을 받아 당해에는 졸업생이 거의 없었고 여러 학생들이 모진 고문으로 옥사하였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양교의 역사는 부산의 독립 운동사를 말하는 것이며 나라를 빼앗겨 암울하던 시절 조선인들의 아픔을 대변해주고 독립의 횃불을 지폈다. 양교의 역사를 지키는 일은 부산의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요 부산 사람들의 굳센 독립의 의지를 다음 세대로 이어줄 큰 업적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경제 제일주의에 밀려 부산 상고는 호텔과 백화점으로 바뀌어 한 모퉁이에 옛 부산상고 구지였음을 알리는 작은 표지석 만이 쓸쓸히 남아 있다. 도심에 공원이 조성되어 역사 유적으로 ‘박물관 학교’가 되었어야 마땅하지 않았을까? 유서 깊은 학교들이 팔리고 헐리는 일은 다시는 없어야 할 것이다. 태평양전쟁으로 전선이 확대된 일제가 총알받이로 써먹을 경남 부산 지역의 학생(5년제 중학 8개교, 동래여고 등 여학교 4개교, 3년제 6개교)들을 모아 ‘제2회 전력증강 국방경기대회’(체육대회, 구덕운동장)를 개최하면서 민족차별과 편파판정으로 제1회 우승교인 동래고보다 점수가 적은 일본인 학교 우승을 발표하였다. 이에 격분한 조선인 학생들은 민족차별 철폐, 조선독립을 외치며 시가행진을 하고 대회장인 일본인 ‘노다이’ 사령관의 집을 습격하였다.(부산학생항일의거.1940.11.21). 현재 양교의 후배들과 뜻있는 분들이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을 기리고 그 정신을 이어가자는 뜻으로 매년 서울에서 부산까지 이어달리기(약칭, 서부달) 행사를 8년째 행해오고 있다. 부산 지하철 4호선 개통을 앞두고 칠산동 동래고등학교 앞 큰 도로에 4호선 지하철역 이름을 '낙민역'이라고 붙일 예정이라고 한다. 역 이름에 대학 이름이 많이 들어가는데 112년째 그 자리를 지켜온 '동래고'는 역 이름에서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단 말인가? 사람들은 낙민동이나 칠산동은 잘 모르지만 동래고등학교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 동래고의 역사는 곧 동래의 역사요 부산의 역사이며 나아가 전 조선인들의 역사가 아니던가? 이번 기회에 '동래고 앞 역‘을 만들어서 동래읍성, 향교, 동헌, 동장대, 충렬사와 함께 부산의 역사 벨트의 한 축이 만들어 지기를 기대하며 부산의 민족학교를 시민의 이름으로 지켜가야 할 것이다. 박선화(구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