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술을 권하는고
3,031
박선화(48)
2005.02.22 06:32
국제신문050201
[최화수의 세상읽기] "왜 술을 권하는고!"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빙허 현진건의 단편소설 '술 권하는 사회'의 한 대목이
다. 1921년 '개벽'지에 발표한 이 작품은 일제 강점기의 지성인이 갈등과 울화로 방황하며
주정꾼이 되어가는 실상을 그렸다. 식민지 현실의 벽에 부닥친 남편은 오직 술이나 벗삼으
며 "아아 답답해!"를 연발하고 아내는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하고 되뇐다.
현진건의 이 작품이 발표된 지 84년, 해방이 된 지 60년째가 되는 오늘의 우리 사회는 어떠
한가? 아마 지금의 많은 아내들은 "그 몹쓸 사회가 왜 술과 담배를 권하는고!"하고 되뇌지
않을까 한다. 경기침체로 속을 태운 국민이 늘면서 술과 담배 소비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지
난해에는 극심한 내수 부진에도 담배와 술 소비량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홧김에 줄담배에다 술병을 달고 다니는 것일까? 지난해 국내 담배 소비량은 1054억개비로
2003년의 861억개비보다 무려 22.4%가 늘어났다. 흡연인구 1080만명이 한명당 평균 488갑을
태웠다. 또한 술 소비량도 286만㎘로 역대 최고였는데, 특히 소주의 소비가 한해 앞보다
3.8% 늘어났다. 20세 이상 성인 3500만명이 한 사람당 86병을 마신 셈이라니 놀랄 만하다.
술과 담배는 '경제불황의 친구'란다. 경기침체에 따른 스트레스가 쌓이다보니 서민들의 술·
담배 소비가 늘어났다는 해석도 나온다. 정부 관계자도 "경기침체기에는 술과 담배의 소비
가 늘어난다"고 설명했고, 한 주류업계 관계자도 "경기가 좋지 않거나 사회 분위기가 어둡
다는 증거이다"고 해석했다. 그러니까 "그 몹쓸 사회가 왜 술과 담배를 권하는고!"이런 탄식
이 또 나올 법하지 않겠는가.
근래 우리 사회에 웰빙 열풍이 몰아쳤다. 몸과 마음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아름다운 삶을 누
리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다. 도심의 공해와 현대산업사회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연과 더
불어 건강한 심신을 가꾼다. 유기농산물과 새싹야채가 각광받고 반신욕이나 등산 등으로 건
강을 관리하는 기풍도 크게 확산됐다. 그런데 그와 정반대로 건강에 나쁜 술과 담배 소비는
왜 늘어난 것일까.
지난 한해 국내에는 여러가지 새로운 기록들이 작성됐다. 그 가운데 가장 우울한 것이 젊은
이들의 취업률 급락이다. 고교 졸업자의 취업률은 11년 만에, 대졸자의 취업률은 4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추락했다. 또한 학력간 빈부 격차도 갈수록 심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경제상황이 악화되면서 이혼이 크게 늘어나는 등 가정붕괴 현상도 뚜렷해지고 있다.
하루 평균 458쌍이 이혼을 한다. 그 가운데 16.4%가 생활고로 이혼을 한다는데 이는 외환위
기 이전과 비교하면 무려 5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남녀 독신자와 이혼의 급증으로 1인 가
구가 크게 늘어나 전체 가구의 15.5%에 이른다. 또한 형법 범죄자 가운데 여성의 비율이
19.9%로 계속 늘고 있다. 생활고, 이혼, 범죄, 술, 담배가 어두운 사회현실을 비춰주는 것이
다.
천문학적인 수출을 달성한 어떤 특별한 회사는 1년치 급료를 성과급으로 지급했다고 한다.
그런가하면 시급 2840원에도 못 미치는,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근로자가 무려 125만명에
이른다. 고임금의 '귀족' 근로자와 저임금의 '가난뱅이' 근로자간의 그 격차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가난한 근로자들은 소주와 담배로 위안을 삼으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주머니 사정이 어렵게 되면 기호품인 담배를 줄이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런데 담배
소비량이 오히려 늘고 있고, 독주인 소주 소비량도 증가했다. 왜 그럴까? 이것은 많은 사람
들이 아주 지쳤거나 자포자기에 빠져 있는 때문으로 보인다는 것이 한 심리학과 교수의 말
이다. 찌든 삶에 얼마나 지쳤으면 '이주일 쇼크'마저 어느새 잊어먹고 줄담배를 피우겠는가.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인 설날이 1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설날에는 새로운 한해를 맞아 서
로 잘 되기를 축하하는 덕담(德談)을 나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진 것은 건강이다. 부디
민생경제를 살려 건강에 나쁜 담배와 술을 좀 멀리 할 수 있는 해가 되도록 해주었으면 한
다. 그래서 "그 몹쓸 사회가 왜 술과 담배를 권하는고!"란 말이 나오지 않게 해야 하겠다.
논설주간 hsch@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