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01성인봉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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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화(48)
2005.02.01 12:00
성인봉 눈 산행
2005년 1월 15일 토, 비
여러 해 전에 다녀온 곳이지만 겨울 성인봉은 처음이다. 명륜동을 7시10분에 떠나 포항 연
안여객부두에 8시 50분에 도착하였다. 바닷바람이 무척 차다. 부두 주변을 집사람과 두 바퀴
정도 가볍게 달린 후 썬 플라워(Sun Flower)호를 탔다. 배를 타는 일은 그것만으로도 가슴
을 무척 설레게 한다. 하지만 창가로 내다보는 바다는 바람이 세고, 파도가 높다. 많은 사람
들이 뱃멀미로 힘들어하며 화장실을 드나든다. 집사람도 토할 것 같다고 하면서 여러 섬을
다녔지만 배멀미는 처음이라고 한다. 나도 배가 많이 흔들리니 속이 좋지 않다.
풍랑으로 정상항로를 바꾸어 운항하므로 1시간쯤 늦어질 거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그러
나 10시 출발하여 13시 도착예정인 배가 14시 45분에 도동에 닿았다. 배에서 내리니 비가
내리고 있다. 절벽 위의 향나무는 예와 같이 푸른데 부두와 마을은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대동장 여관에 배낭을 두고 늦은 중식을 마친 후 소형버스로 섬 일주 관광에 들어갔다. 오
래 전에 왔을 때 유람선으로 관광을 할 때만 해도 도로공사 중이었는데 놀라울 정도로 도로
가 잘 만들어졌다. 하지만 아직도 섬목에서 저동사이의 약 4㎞ 구간이 미완성이라고 한다.
고개 넘어 첫 동네 사동은 새로운 조선공사가 한창인데 앞으로 울릉도 제 1의 여객부두가
될 것이라는 기사님의 설명이다. 길가 오징어 건조대엔 비막이 지붕이 덮인 채로 생 오징어
가 걸려있고 비탈진 밭에는 각종 나물이 뿌리만 남긴 채 겨울을 나고 있다. 밭 옆에는 나물
을 베어 삶아 말리는 큰솥도 보인다. 봄부터 베기 시작하면 1년에 네 번 정도 나물을 벤다
(?)고 하는데 도로 옆에 널어서 말린다고 하며 울릉도의 큰 수입원이라고 한다.
거북바위 앞에서 사진을 찍고 몇 개의 터널을 지나 태하 삼거리에서 울릉도 유일의 로타리
라고 하며 한바퀴 돈다. 기사님이 3무(공해, 뱀, 도둑) 5다(미인, 바람, 돌, 물, 향나무)를 설
명하는데, 옛날 국어 교과서에서 읽은 3무 중에는 '바퀴 달린 것'이 없다고 되어 있었는데
이것이 공해로 바뀐 것 같다. 서쪽 바다가 약간 붉은 빛을 띠며 석양을 나타낸다. 바닷가 절
벽 아래로 일주도로를 만들었는데 재작년 매미 태풍으로 무너졌던 도로가 아직껏 보수공사
가 이어지고 있다. 큰 모래주머니들이 도로가에 늘어섰는데, 모두 육지에서 실어온 것이라고
한다. 방파제에 놓인 삼각돌(테트라포트)이 모두 '돈 덩어리'라는 생각이 든다.
터널 앞 신호등에서 대기하는데 1차선 터널을 반대편에서 80초 사이에 완전히 빠져 나와야
초록 신호등이 되어 갈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울릉도에서 신호위반을 하면 1차선 터널 속에
서 마주치게 되니 오도 가도 못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현포 고개를 넘다보니 조그만 연못
이 있는 아담한 집이 나온다. 울릉도 최대 유일의 저수지라고 한다. 약간 높은 평지에 수 십
개의 무선 안테나가 보이는데 배에서 쓰는 통신수단이 무선이므로 꼭 필요한 시설이라고 한
다.
현포리는 바다가 검은빛이라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신라시대의 고분이 있으며 울릉
도에서 제일 먼저 사람의 발길이 닿은 곳으로 항구 형성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현포
마을에는 바다 속의 심층수를 개발하여 미네랄 워터로 생산할 계획이라고 한다.
울릉도는 묘지가 적고 화장을 많이 하는데, 간간이 보이는 묘지는 봉분이 원추형으로 흙이
적다. 장작을 패 쌓아둔 모양의 코끼리 바위(공암)를 지나 송곳산(430m, 추산)쪽으로 들어가
니 언덕 위의 하얀집(가수 김완선 부모님이 사는 곳)이 전망 좋은 곳에 있다.
뒤쪽에 큰 부처님 조각상이 있는 절이 있고, 네 개의 구멍이 뚫린 뾰족한 추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비가 오고 바람이 차서 잠깐 내린 후 차에 다시 올랐다.
수력발전소로 가는 굵은 원통형 PVC 수로가 있는데 1분에 8t(하루12000t)의 물을 흘려보
내서 1400㎾의 전력을 생산하는데 현재는 한국전력에서 내수전, 남양 주 곳에 내연 화력발
전소를 세워서 부족한 전력을 공급한다고 한다.
해군부대가 있는 고개에 커다란 풍차가 있으나 고장나서 돌지 않는다. 부자마을이라는 천
부리를 지나 섬목까지 갔다가 어둠이 짙어질 무렵 갔던 길을 되돌아 도동으로 와서 저녁식
사를 마쳤다. 한현근, 정두진, 김환 선배와 4명이 같은 방을 쓰게 되었고 집사람은 맞은 편
강남 여행사 여직원과 함께 자게 되었다.
밤 9시 부산에서는 100㎞ 울트라 마라톤이 을숙도에서 출발할 시간이다. 여기에 참가하신
김유일(40회)선배님께 좋은 기록으로 완주해 주기를 빌면서 TV의 기상에 귀를 기울였다.
내일은 강풍, 대설 주의보로 인하여 포항에서 배가 오지 않아 육지로 나갈 수 없다고 한다.
독도 박물관을 보려고 갔으나 문이 닫혀 있다.
선착장으로 되돌아와서 해안가 등대길로 가려고 하였으나 역시 문이 잠겨 가지 못했다. 몇
사람이 선착장에서 한치를 낚고 있는데 제법 큰 것을 서 너 마리 잡은 노부부가 집으로 가
져간다. 반대편 선창가 노점상에 한치를 사려고 가보니 다 팔리고 없다. 횟집에 들어가서 한
치 한 접시(3만원)를 시켜 술을 마시면서 김환 선배, 정두진, 한현근 후배들과 집사람 모두
5명이 담소한 후 숙소로 돌아왔다.
2005년 1월 16일(일), 폭설, 강풍, 비
아침식사는 마쳤으나 기상 악화로 산행이 어렵다. 새벽부터 함박눈이 쏟아지니 산행은커
녕 밖에 나가는 일조차 겁이 난다. 10시 넘어서 조금 눈이 줄어든다. TV만 보면서 기다리
고 있기에는 아까운 시간이다. 산행 준비를 하여 11시쯤 11명이 나섰다.
대원사를 지나 도로를 따라가다가 산길로 들어서니 눈이 무척 많이 쌓였다. 러셀이 되지
않은 눈길을 한현근 후배와 교대로 길을 만들며 올라갔다. 시그널이 없으면 길을 찾을 수
없으니 시그널이 없는 곳은 무릎까지 빠지는 눈 속을 어림짐작으로 찾아나갔다. 위에서 추
위에 떨며 내려오는 부부가 있어 물으니 도중에 바람 때문에 되돌아온다고 한다. 팔각정에
도착하여 잠시 휴식한 후에 주능선 바람등대에 올라서니 강풍이 몰아쳐서 눈을 뿌리니 얼굴
이 따끔거리고 눈을 뜰 수가 없다. 앞에 가던 한현근 후배의 얼굴과 손의 색이 체감온도로
변색되어 내려가자고 한다. 주능선에 올라서서 내려가는 일이 정말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
방풍용 고글을 쓰고 집사람과 함께 계속 가자고 하였더니 자신이 없다고 한다. 뒤에 오신
김영해(41)회장님께서 더 이상 가면 안 된다고 하시면서 하산을 재촉하신다. 체감온도가 엄
청나다. 몇 걸음 주능선을 나가보니 땀에 젖은 모자와 상의가 뻣뻣하게 얼어버렸다. 대책이
없다. 신상호 가족(부인, 아들 주역)과 나중에 오신 최욱(29회) 고문님, 최상호(51회) 총무를
비롯하여 모두 다시 내려갔다. 기세 등등했던 출발은 여기에서 막을 내리고 오후 3시쯤 돼
서 늦은 점심을 대동장 여관 식당에서 먹는데 며칠 전에 무리한 산행 끝에 한사람이 죽었다
고 한다.
식사 후 해수목욕탕에서 목욕. 독도박물관 관람을 한 후 저녁식사를 하였다. 육지에서 문흥
만(47회) 선배로부터 한현근 후배에게 전화가 걸려와서 지난해 울릉도에 와서 일주일간이나
묶여있었다고 하면서 걱정해도 방법이 없으니 그냥 구경이나 잘 하라고 한다. 정두진, 한현
근(49회) 후배가 맥주를 사와서 함께 마시고 TV를 보다가 잠이 들었다.
2005년 1월 17일 (월) 비온 후 갬, 강풍
엊저녁부터 바람이 조금 수그러들고 눈도 줄어들었지만 40여 년만의 폭설이라 하여 포항,
부산, 강원도 등 전국 모든 곳이 눈으로 온통 난리다. 오늘도 배는 뜨지 못한다고 한다. 일
찍 식사하고 선발대로 한현근(49) 후배와 친구, 나와 집사람, 4명이 성인봉을 향해 8시 45분
에 나섰다. 눈은 어제보다 더 많이 쌓였지만 날씨는 좋다. 강풍에 안자일(능선에서 모든 대
원을 묶음)용 20m 보조자일 카라비너 10개, 방풍고글 및 겨울 장비를 모두 챙겨서 러셀을
해나갔다. 팔각정 아래쪽부터는 길 찾기가 어제보다 더욱 힘들다. 도동에 산다는 사람이 같
이 산행하면서 조금씩 길을 내며 나가다가 힘이 들어 뒤로 쳐지고 한현근 후배와 러셀을 해
나갔다. 조금만 길을 잃으면 허벅지까지 빠져버리니 다리를 들어올릴 수가 없을 정도이다.
덮힌 눈을 자세히 보면 약간 단단해 보이는 곳을 찾을 수가 있지만 그냥 감각으로 더듬어
가는 수밖에 없다. 러셀로 가파른 길을 오르는 것은 힘이 많이 든다. 11시 팔각정에서 간단
히 휴식하고 바람등대, 주능선에 올라서니 어제와는 달리 바람이 적다. 계속 정상까지 발자
국을 찾아가며 러셀을 해 나갔다. 12시 정상도착. 성인봉이라고 쓴 가슴께까지 오는 돌을 쓰
다듬어 본다. 갑자기 눈발이 날리며 바람이 세어진다. 간단한 촬영을 하고 연이어 올라오는
분들에게 방을 빼주고 나리분지 쪽 길은 깊은 눈과 나쁜 기상으로 포기를 하고 곧바로 하
산. 14시 40분 대동장 여관에 도착하여 중식을 하였다.
중식 후 개인택시 데라칸 (7인승 4륜구동)을 불러서 김환(45)선배, 한현근, 정두진, 집사람
과 나, 모두 5명이 모두 나리분지로 향하였다. 울릉도 출신 천태원 기사는 울릉도 풍물에 관
해 많은 것을 설명해 준다. 길가 밭에 나는 '부지갱이 나물'은 아궁이 불 땔 때 쓰는 부지깽
이처럼 까맣게 싹이 올라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산마늘과의 '명이 나물'은 옛날 울릉
도 사람들이 겨울에 먹을 것이 없을 때에 눈 속을 파보니 파란 싹이 나와서 이것을 캐서 연
명을 하였다고 명을 이어준 나물, '명이'라고 한다고 했다. '명이 나물'은 뾰족하게 초봄에 처
음 나오는 것을 '뿔명이', 잎이 넓어진 것을 '잎명이'라고 한다. 재배가 되지 않아 산에서 캐
야 하는데 허가 없이 캐는 때에는 3백만원의 벌금을 물게 되니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
또 인구 9,700명되는 울릉도에 차가 2500대가 되니 거의 모든 집에 차가 1대씩 있는 정도
이며 교회의 비율이 높아 37개가 있고 절이 9개 성당 2개 등이 있다고 한다. 도로 옆 절벽
에 국화모양의 꽃을 피운 풀이 자라는데 해국화라고 하지만 육지의 국화와는 다른 종류라고
한다. 후박나무는 군목이며 육지에서는 희귀종인 마가목이 가로수로 되어있다.
천부리를 지나 빙판길을 이리저리 미끄러지면서 오르는데, 산으로 둘러싸인 눈 덮인 대평
원 여기가 바로 나리분지인데 트렉터를 이용한 기계농업을 하고 있다. 나리분지는 분화구인
데 해발 480m되는 분지형의 평야로서 17가구가 살고 있고 공군부대가 있어서 성인봉 옆 간
두산 레이더 기지를 군용 케이블카로 연결하고 있다. 멀리 붉은 전광판은 기상 안내판이라
고 한다.
굴피로 지붕을 이은 '너와집' 앞에 차를 내려 들어가 보니 추녀 아래로 '우데기'라고 하는
판자벽이 땅바닥까지 만들어져서 틈 하나 없이 집을 둘러싸고 있어 안이 컴컴하였다. 소마
구간, 정지, 머리방, 큰방, 사랑방 등이 한 지붕 밑에 모두 있고 바깥에 화장실이 있는데 화
장실을 가기 위해서 집에서 화장실까지 줄을 매달아 두고 눈이 쌓이면 줄을 돌려서 눈 굴을
만들어 화장실까지 간다고 한다.
지붕을 띠풀로 이은 전통 '투막집'과 교회를 지나 나리촌이라는 식당 겸 민박집으로 갔는
데 주인이 없어서 기사가 직접 파전 감자전을 굽고 '씨 껍데기 술'(천궁 술)을 가져와서 먹
게 되었는데 천궁 씨가 까맣게 뜨는 동동주인데 독특한 향이 아주 좋은 술이다. 제주도의
'조 껍데기 술'(좁쌀 술)과 쌍벽을 이룬다고 하는데 무슨 소린지 알 길이 없다.
술맛도 좋고, 부침개도 맛이 좋았다. 다 먹고 나니 '또순이'라고 하는 주인 아주머니가 와서
값을 치르고 나왔다. 기사에게 차비 6만원(보통 12만원임)에다 팁 1만원을 더 주었다. 밤에
밖에 나가서 나리분지에서 얻어온 '씨 껍데기 술' '더덕안주'와 맥주. 한치회로 울릉도의 마
지막 밤을 담소하며 보냈다.
2005년 1월 18일(화), 맑음
오늘 못 나가면 대마도 1박2일(14만8천 원/1인) 예약해둔 가족여행(20일, 21일)이 어렵게
되는데 다행히 날씨도 좋고 도로 소통도 좋아져서 배가 올 수 있다고 한다. 아침 식사 후
김환(45)선배님의 제안으로 섬목까지 산행하기로 하고 어제 탔던 개인택시 테라칸을 불렀다.
여자 분들이 합류하여 9명으로 늘어나서 두 대의 차를 대절하여 저동 쪽으로 향하였다. 저
동 넘어가는 고갯길에는 울릉도 사람이 마지막가는 '화장터'가 있다.
저동항은 어업전진기지로 부두 시설이 잘 되어있다. 작은 마을이지만 교회가 8개, 다방 13
개 등이 있어서 오징어 철이 되면 성시를 이룬다고 한다. 내수전에 있는 내연화력발전소를
지나 고갯길을 오르는데 4륜 구동을 해도 오를 수가 없어서 차를 돌려보내고 걸어서 넘어가
게 되었다. 아이젠과 같은 겨울장비를 전혀 준비하지 않았기에 고갯길 오르기가 무척 어렵
다. 산길에 들어서니 눈이 많이 쌓여서 계속 갈 수가 없다. 멀리 섬목 쪽을 바라만 보고 그
냥 되돌아가기로 하였다. 내수전 약수터에서 쇠의 녹물이 잔뜩 끼인 약수를 받아 마시고 저
동까지 걸어 나오는 길에 최상호 총무팀을 만났다. 김환(45) 선배님께서 독도가 보인다고 하
여 수평선에 낙타 등 같은 두 개의 점을 보았는데 정확하게는 알 수가 없다.
봉래폭포로 올라갔으나 매표소에서 중간에 길이 끊겨서 갈 수 없다고 하여 되돌아 왔다.
저동에서 약간의 해산물 쇼핑을 하고 기사식당에서 오징어 내장탕과 '붉은 고기 회'를 먹고
도동으로 와서 선플라워로 돌아오게 되었다. 울릉도로 들어올 때는 평소에도 역풍을 받고
오기 때문에 배멀미를 많이 하게 되지만 육지로 나갈 때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어찌해볼
도리없이 1박2일이 3박 4일(추가비용 2만 3천 원/1인)로 바뀌었지만 울릉도를 많이 둘러 볼
수 있어서 좋았다.
##. 글을 마치면서
'독도 바다는 울릉도의 문전 옥답이요, 이 바다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키겠다.'고 개인 재산을 낱낱이 털어 '독도 의용 수비대'를 만들어서 한국전쟁동안에 독도를 지키시고
경찰에게 그 임무를 넘겨주신 고 홍순칠 님에 대하여는 묵념으로서 예를 표합니다.
독도 흡수를 선거공약으로 했던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가 독도를 차지하기 위해 일본을 위
해 일을 했다면 그 당시 내 나라의 정치인들은 누구를 위해서 바다를 '공동 수역'이라고 하
여 일본에게 내 주었을까?
저 일본인들은 확실한 내 나라 영토를 수순을 밟아가며 국제법을 이용하여 합법을 가장하
여 겁탈하려 하는데 내 나라 정치인들이 나서서 그 일을 대신해 주고 국민들의 입과 귀를
막는다면 그들은 어느 나라 사람이란 말인가? 경찰청장이 독도 바다를 지키는 경찰을 위문
하려고 해도 상륙이 어렵다는 외교통상부의 입장은 어찌된 일일까? 손가락 하나를 잘라 달라
고 하는 놈은 필시 몸통도 탐이 난다는 뜻이다. 한 정치인의 잘못은 자손 만대에 온 국민의
부담으로 넘어오는 것이요, 한 개인의 노력이 영토를 지키는 큰 힘이 됨을 절감한다.
'대마도에는 한국인들이 땅을 살수 있다.'고 크게 홍보를 하고 있다. 한국인들이 대마도 땅
을 모두 사들이면 그 땅과 땅위의 많은 것을 함께 누릴 수 있다. 일본이 내 나라의 어려움
을 나쁘게 이용하여 독도 해역을 흡수하려고 애쓰는 일과 맥이 통하는 일이다. 실제 우리
가족 네 사람이 1월20일과 21일에 대마도(총 137명 참가)를 가서 내 나라 호텔인 대아 호텔
에서 묵으며 내 나라 사람들의 봉사를 받았을 때 그 감회는 남다르다.
시라다케 정상(519m 산행 1시간 40분 소요), 아리아케(558m) 인근 산책을 하고 관광지 곳
곳을 둘러보았는데 울릉도 보다 훨씬 가깝고 쉽게 접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물이 잔잔하여 맛이 별로 없다는 대마도 낚시를 하는 일에 엄청난 장비와 비용을 들여 많은
사람들이 해외 낚시를 하는 모습은 생각해 볼 일이 아닐까? 히타카츠항 부두에서 봉고차에
낚시꾼들이 가득 타고 1톤 트럭에 낚시 도구를 가득 실은 차가 따라가는 모습은 깊은 생각
을 하게 한다.
부족한 영토를 늘리기 위해 아메리카로 향한 영국, 브라질의 땅 부자인 일본, 동남 아시아
곳곳의 화교, 각 지역의 유태인,... 세계 각지에 흩어진 한국인들이 한국을 중심으로 하나되
는 대영제국을 앞지르는 '대한제국'으로 거듭나겠다는 사고 전환이 절실하다는 생각이다. 이
러한 말들이 술자리에서 안주 거리로 말할 일은 아닌 것이다.
나라의 힘은 각 개인의 힘이 강할 때에 그 합력으로 나타나는 것이므로 각 개인들이 몸과
마음을 갈고 닦아서 국력을 키우는 일에 동고인들이 앞장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