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안 화산에 가다
3,246
윤희철(40)
2004.09.25 15:31
中國 西安과 華山에 가다
40기 鎬山 尹 熙 鐵
망월 산악회에서 하는 해외산행에 참가한다. 일정은 8월12일부터 8월16일까지 4박5일이며 참가인원은 120여명이며 우리40기는 14명으로 김유일, 김도훈 부자간, 박동식 부부, 최형진 김종성 부부, 최형진 친지 부부, 문기원, 김경택. 공삼택, 윤, 뒤의 4사람은 독신자 클럽이다.
첫날 김해공항에 9시30분까지 모이라고 하였으나 뒤의 4명은 조금 늦었다. 부산에서 시안으로 가는 직행이며 대한항공 891편으로 비행시간은 3시간쯤 걸린다. 출발하기 전에 시간이 있어 은행에 환전한다. 151.000원을 주니 중국돈 1000. 위앤을 받고 옆의 대한항공에 가서 마일리지를 입력한다. 중국의 비자는 단체비자로 旅遊團人員名單으로 그룹비자이다.
보딩패스를 받고 세관 심사대를 지나 면세구역에 들어선다. 지난 2월에 중국에 여행하면서 호텔에 휴대용 면도기를 놓아두고 와서 이참에 하나 구입하니 30.000원이다.
비행기에 타서는 안내원의 지시를 따라야하니 주는 것은 먹고 마시는 것도 먹고 하니 배는 불어나 계속 들어간다. 밥 먹을 때 양주 한 잔식을 주는 것을 여럿이 있으니 또 한 잔씩을 더 시킨다. 제일 뒷좌석에 앉았으니 편리하다. 변소 가기가 수월하니까, 문, 김, 윤 3인이 양주 한잔씩을 더시켜서먹고 나중에는 모자라 비행기에서 판매하는 시바스 리갈을 한 병 사서 마실려고 하니 자기들이 주는 것 외에는 마실 수 없다고 하니 그냥 들고 나와 저녁식사 때에 다 마셨다.
시안의 첫인상은 공항시설이 새로 지은 것이라 그런지 깨끗하다. 도착 후 바로 버스 4대에 조별로 나누어 타고 진시왕의 兵馬俑坑과 능묘를 본다.
이 시안은 陝西省의 성도이며 행정구역은 8개시와 5개의 현으로 나누며 關中盆地의 중앙부, 북으로 웨이허강(渭河)이 남으로 終南山이 솟아있는 곳에 있으며, 특히 이곳은 周의 武王이 세운 수도로 鎬京에서 시작되어 그 뒤 漢나라에서 唐나라에 이르기까지 1000여 년 동안 12개 나라의 國都로 번영한 역사적인 古都로 그 동안 長安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어 졌고, 가장 번영하였던 唐代에는 동서가 9.5km, 남북이 8.5km의 규모에 인구 100만이 넘는 대성곽의 도시를 이루어 멀리 서방에도 그 이름이 알려졌다. 그 뒤 唐의 쇠퇴와 안사의 亂으로 장안도 파괴되어 ,古都로서의 면모만 간직하였으나 지금 이곳은 중국의 신흥공업 지구가 형성되어 대규모 화력발전소가 건설되어 방직 기계 항공발동기 비행기제조 전자공업 군수공장 우주 연구센터등 핵심적인 산업체가 움직이고 있다,
또 이곳 시안은 역사적 도시로 사적이 풍부하니, 秦始皇의 兵馬俑坑은 시안에서 가장 큰 유적지로 1974년 한 농부가 우물을 파다가 우연히 발굴했다고 하니, 이 곳이 1호갱이며 지금도 계속 발굴하고 있고 현재까지 3개의 坑이 발굴 되였으며 그 가운데 1호 갱에만 6,000여 병마가 실물크기로 정연하게 늘어서 있어 금방이라도 함성을 지르며 무기를 가지고 나올 것 같구나, 이들 병사용은 하나같이 표정이 다르고 손에는 무기를 들고 갱내에 있는 토병과 말은 가운데를 중심으로 동쪽을 바라보며 줄을 지어 정렬하여 있다. 이것은 남쪽과 북쪽의 병사들이 동쪽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고 남쪽의 병사는 남쪽을 북쪽의 병사는 북쪽을 바라보며 서있다. 또 동쪽에 있는 가로 3열의 병사들은 武士土俑으로 먼 곳을 저지할 수 있는 궁수 병기를 쥐고 있다. 그 뒤로 약 6,000여명의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정렬하고 있는데 손에는 창과 같은 긴 병기를 들고 서 있다. 사진을 몇 장 찍고 2호갱으로 이동하였다. 2호 병마갱의 평면은 曲자 형태로 되어있고 갱내에는 기마병, 보병, 궁병과 전차들이 혼성하여 서쪽에서 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크게 4등분하여 나누면 궁병들이 서 있는 궁병용부대 말과 전차가 있는 전차용부대, 보병, 기마병이 혼합되어 있는 부대, 기마병만 있는 기마부대 등 4개의 부대가 서로 독립된 단위로 배치되어 있고, 이곳에서 출토된 토기병마는 약 1,300여명이며 전차가 80여량과 함께 다량의 금속병기가 출토되었다. 3호 병마갱은 凹자형태로 되었으며 면적은 520m이다. 이곳은 1호와 2호를 통솔하는 지휘본부로서 6개의 토기병마용과 4마리의 말과 함께 1대의 전차가 출토되었다.
이 병마용갱을 처음 본 것은 일본 출장길에 호텔에서 우연히 보고 놀라움이 있었고 저번 BEXCO에서 진시황의 병마용갱을 보았으니 새삼스러움이 없구나.
나오는 입구에 환영객들이 줄지어 서 있으니 잡상인들이다. 기본단위가 1,000원이다. 얼마나 한국 관광객이 많이 찾아 왔는지 여실히 증명된다. 여기는 또 석류의 산지로서도 유명하다 진시왕의 무덤으로 가본다 큰 야산 같으나 인공으로 무덤을 조성하였으니 백성들의 고초는 상상하기 힘들다. 무덤의 꼭대기까지 가보니 평지만 가물가물하게 동서남북으로 보일 뿐이다. 내려오다가 안내판에 지도가 있기에 우연히 보니 秦의 영역표시가 평양까지 경계로 되어 있는 것을 보고 고구려 역사 왜곡이 멀리 서안까지 뻗쳐 있는걸 실감한다. 그것도 고친 흔적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으니 사람의 눈은 속여도 역사적인 사실은 속이지 못하는 법이다. 무덤에 올라가는 길에는 과수를 재배하였으니 따 먹으면 벌금 50위앤 이라고 적혀있다. 둘러본 후 입구에서 복숭아 하나씩 먹어보니 달기는 시원찮았으나 살은 야물다. 어찌되었던 무덤은 크다. 이걸 보고 우리 경주도 왕릉을 조성하였겠구나란 생각이 든다. 여기도 여름이라 그런지 몹시 덥다. 그러나 비가 조금 뿌리니 땅에서 올라오는 열기가 후끈거린다. 시안에서 화산으로 이동 하니 버스가 2시간여 달려 도착한곳이 저녁에 잘 華山金融賓館으로 호텔이다. 저녁 식사 때 39회의 회갑축하를 하니 임따거외 10여명이 참석하였구나. 다음은 우리 차례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감회가 새삼스러워 진다. 오늘의 별미는 만두로서 조그마하게 빚은 정성은 먹기에 아깝다. 종류별로 모양이 다르게 여남개가 나오니 맛이 있다. 마지막에 나온 것은 뜨거운 물에 데워서 먹는다. 술도 있고 친구도 있으니 기분이 좋아 비행기에서 산 술도 다 마시고 중국술도 마신다. 독한 술은 빨리 취하고 빨리 깬다. 식사후 방에 들어오니 침대가 4개구나. 독신자 클럽4명이 옳다구다 싶어 공따거, 문따거와 같아 함께 잔다. 한방에 다 모여 가져온 술과 안주로 특히 공회장이 가져온 김치는 띵호아다.
2시쯤 마치고 잠을 청한다. 내일을 위하여... 이번 중국 여행의 목적지인 화산 등산을 한다. 간밤에 비가 온 관계로 땅은 조금 젖어 있고 화산을 바라보니 구름 속에 가려 한번씩 보인다. 식사 후 등산가방을 메고 미니 버스를 타고서 산의 입구까지 이동한다. 입장이 지체되여 물어본 적은 걸어서 산을 올라가는 팀을 기다린다고 한다. 비가 온 관계로 통제되는 구나. 우리 같으면 그냥 올라 갈 것인데 어찌되었던 합류하여 입구에 도착한다. 물을 막아 댐을 만들어 놓은 옆에 검문소가 있어 조사한다. 산이 높아 그런지 계곡이 깊어서 그런지 많은 물이 흐른다. 버스에 앉아서 가면서보니 도로 아래 위쪽으로 온통 바위덩어리로 만들어져 절벽과 단애로 형성되었구나. 이 산을 말할 것 같으면 중국 5岳 중의 하나로 西岳에 해당되며 오악은 산동성의 泰山, 섬서성의 華山, 하북성의 恒山, 하남성의 嵩山, 호남성의 衡山이다. 호산은 들어가지 않는구나 농담을 하면서 올라간다. 이산은 시안의 동쪽 120Km 지점인 화양현에 있으며 산세가 가파르고 험한 산으로 이름이 있고 이산의 이름에 대한 내력은 화산의 산봉우리는 한 송이의 꽃 모양을 하고 있는데, 멀리서 보면 산의 봉우리가 꽃 모양 같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옛적에는 꽃 花와 빛날 華를 같이 사용했다 하니 어찌되었던 좋은 산 이름이로다. 또한 太華山이라고 불리어지며 東 ,西, 南, 北, 中 모두 5개의 峰으로 이루며 이산의 높이는 2,160m이며 험준하고 웅장하며 거대한 돌덩어리인 천하 제1산으로 불리어진다. 산의 중턱에 케이블카가 놓여서 중간시점까지 이동하니 그 길이가 1,550m이며 밑에서 보니 산의 능선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찔하다. 玉泉院은 華山북쪽에 위치한 입구로 화산의 山門에 속하며 등산을하려면 이곳을 통하여 화산에 들어가게 된다. 五里關은 이산에서 제일 험준한 관문으로 산의 입구에서 5m나 되는데 서쪽으로는 절벽이 있고 동쪽으로는 깊은 골짜기가 형성되어 있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섬뜩함을 느낄 정도로 그 지세가 험하다. 東峰은 가지 못하고 북봉, 남봉, 서봉으로 간다. 이 北峰은 일명 雲臺峰 이라 하며 역시 산세가 높고 험준하며 세면에는 절벽이며 오로지 남쪽방향으로만 한 갈레의 길이 있다. 꼭대기에 아직도 道敎의 발상지답게 큰집에 道士가 있어 허연 수염을 달고 방문객을 바라보고 있다. 그 다음으로 남봉으로 간다. 落雁峰이라 불리며 또 화산의 주봉으로 2,160m에 달하며 이곳 역시 매우 가파르며 소나무와 잣나무가 어우러져 푸르고 무성하다. 西峰역시 절경을 자랑하는 봉우리 중의 하나로 산정에는 翠雲宮이 있으며 그 앞으로 거대한 돌이 세워져 있는데 그 생김새가 마치 연꽃 같다고 하여 蓮華峰이라 불린다. 화산의 산길은 매우 가파롭고 풍경은 아름다워 산길을 따라 옥천원부터 창룡령까지 뛰어나게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며 즐길 수 있으나 지금의 형편으로는 안개가 있어 산이 운무에 가려 조금씩 보일 뿐이다. 올라가는 길에는 안개가 있어 돌계단만 바라보고 걸었으나, 꼭대기에 올라서니 조금 안개가 그쳐 사진도 몇 장 찍고 사방을 둘려보며 휴식을 취한다. 정상까지 4명만 같다가 돌아온다. 여름이라 습기도 있고 더워 연방 물을 찾으니 아침에 멀건 숭늉을 통에 넣어 온 덕택에 갈증을 이겨낸다. 내려오는 길에는 올라오는 사람과 부딪혀 혼잡을 이룬다. 무사히 내려와 정상에 올라가지 못한 사람들과 합류한다. 케이불 카를 타고 내려와 아침에 올라온 길을 다시 내려가니 몇 시간은 족히 걸었다. 따그들,(大兄), 신쿠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