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강석굴몽고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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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강석굴몽고고원

2,935 박선화(48) 2006.12.25 03:20
10. 운강석굴 내몽고 답사기 성도고등학교 박선화 어언 대학에서 1년간 어학 연수중인 동아일보 기자가 일이 생겨서 못 가게 되어 내 놓은 광고를 보고 7월 21일(금) - 24일(월) 大同 內蒙古 草原 自費 硏修를 1,000元(1,050元에서 50원 割引)을 주고 사서 신청하였다. 어언 대학 국제 유학생처에서 주관하는 연수는 대부분이 서구 어학 연수생 및 유학생이다. 7월 21일 밤 10시 교정에 대기 중인 관광버스에 몸을 실었다. 약25분을 달려서 북경 역에 도착하여 가이드의 녹색 깃발을 따라간다. 6명씩 조를 짜면 침대 6개가 방하나가 되는 6장의 침대 번호표를 준다. 23시 40분 북경 역 출발 K705 열차. 침대 맨 아래 칸을 배당 받아 시끌벅적한 속에 잠이 들었다. 天鎭 이라는 작은 역에서 5시쯤 눈을 떴다. 검붉은 빛을 약간 띤 새벽하늘, 바깥은 무척 더울 것 같은데 에어컨 탓인지 추운 느낌이 든다. 차내 화장실 옆에서 양치질, 간단한 세수를 하였다. 차장으로는 높은 구릉 상에 물길 따라 제멋대로 생긴 깊은 도랑이 있고 홍수의 물길에 패인 평야 곳곳은 절벽을 이루어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채 놓여있다. 높고 낮은 평지 곳곳에 농작물을 심어 놓고 부지런한 농부 두 서넛이 힘없는 모습으로 밭을 가꾸는데, 검은 나귀 한마리가 목을 길게 늘인 채 종종거리며 주인을 따라간다. 간간 흙무덤이 허술하게 속살을 드러내는데 유일하게 묘비만이 묘지임을 알려준다. 멀리 낮은 절벽에 구멍을 파서 만든 집이 몇 채 보인다. 곳곳에 폐허된 집들은 아마 홍수 때 재난을 당한 채 방치된 것 같다. 우리네 옛 모습 같다. 비포장 신작로, 키 큰 미루나무가 이곳 저곳 서있고, 층층이 쌓인 지층이 드러난 낮은 구릉절벽들이 특이한 모습을 보여준다. 토요일 아침 7시 大同, 거대한 구릉이 꺼진 분지 속에 도시가 생겼다. 높은 철교를 지나 들어간다. 유럽의 룩셈브르크 성을 연상케 한다. 大同 역에 내려서 미리 대기된 세 대의 버스에 나누어 타고 太和春 貴賓樓라는 큰 음식점에서 아침식사를 한 후 16km 떨어진 雲岡 石窟로 향하였다. 가는 길은 멀지 않았으나 중간에 도로 공사를 하는 곳이 많아서 40분 쯤 걸린 것 같다. 주차장에 내려 상점이 길게 늘어선 가운데를 지나 석굴 앞에 오니 ‘世界 文化 遺産 雲岡 石窟’의 흰색 큰 돌이 가로 놓여 있고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벌판에 구릉처럼 하나의 바위 동산(길이 약 2km, 높이는 100m 이하 정도)이 길게 놓여 있는데 군데군데 작은 바위산의 절벽에 붙여진 기와지붕을 갖춘 절집들이 보인다. 조금 떨어져서 보니 교과서에서 본 것처럼 엄청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바위 절벽은 퇴적암 종류의 砂岩 계통으로 보이며 단단한 돌은 아니다. 그러나 여기에 절벽을 뚫어 굴을 파고 그 가운데 부분을 천정까지 남겨 불상을 조각하는 일은 쉽지 않을 뿐 아니라 많은 시간, 인력이 소요 되었을 것이다. 크고 작은 굴이 총 42개이고 각 굴속에는 바닥만 빼고 천정까지 모든 벽에 불상이 조각되어 있다. 자료에는 약 5만여 불상이 조각 조성 되었다고 한다. 높이 17m, 14m 등의 거대한 불상이 절벽을 뚫은 석굴 속에 만들어 지려면 무척 힘이 들었을 것이다. 가장 큰 불상 앞에 香 10元 한 봉지를 사서 거대한 철 향로에 향을 사르면서 만사형통하기를 빌었다. 몇 개의 석굴은 들어가서 관람을 할 수 있는데 나머지는 철문을 막아 창살 사이로만 볼 수 있었다. 약 1km 에 걸쳐서 만들어진 석굴은 낮은 곳에는 절벽위의 빗물이 스며들어 불상에 손상이 생겨서 본드 등의 약품 처리를 해둔 곳, 따로 물파이프를 넣어 빗물을 밖으로 나오게 한 후 바위 틈새를 때운 곳도 있다. 굴 마다 부처의 얼굴을 손상시킨 곳에는 붉은 페인트로 번호를 써서 손상되었음을 표시해 두었다 . 섬세함보다는 거대함, 엄청난 수의 불상 등이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석굴 앞 광장 옆에 云岡 중학교가 있다. 아침에 식사를 했던 음식점으로 돌아 와서 점심을 먹고 내몽고로 향하였다. 대동 시가지에는 높이 6-7m 쯤 되어 보이는 흙으로 만들어진 두껍고 큰 성벽이 있다. 京呼고속도로는 몽고글자가 병기된 표지판이 나타나고 갓길 있는 4차선의 잘 만들어진 고속도로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우산 속에 몽고를 집어넣고 철도, 고속도로 등을 이용하여 그들의 지배권을 확보해 간다. 豊鎭 톨게이트를 13시 45분에 통과하니 넓은 초원에는 국적이 불분명해 보이는 얼룩소들이 양떼들과 어울려 풀을 뜯고 있다. 얼룩소는 젖소라고만 알고 있는데 수레를 끌며 밭을 갈고 있는 모습을 보니 이상하게 느껴진다. 平地泉 톨게이트 15시 통과 후 주유소에서 잠시 휴식하며 기름을 넣었다. 하얀 지붕의 집, 끝없는 草原에 소, 양떼, 빠오, 옛 몽고 땅을 점령한 지금 중국의 잠재력이 놀랍다. 한국은 무엇을 하고 있나? 중국이 차지한 내몽고 밖의 외몽고 쪽에 대한 집중투자가 필요한 때라는 생각이 든다. 이미, 중국, 일본 미국 등의 손길이 몽골국에 뻗치고 있으니 인구 200만 이 조금 넘는 이 넓은 몽고를 가장 혈통이 가까운 한국이 다가가야 하는 일이 시급하다. 卓子山 톨게이트를 4시 8분에 통과하여 99泉 입구를 지나 숙소에 닿았다. 숙소 입구에는 몽고 전통의 화려한 옷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양손에 펼쳐 길게 늘어뜨린 하얀 얇은 천위에 가득 찬 술잔을 받쳐 권하면서 노래 부르며 환영한다. 독한 술을 한잔 받아 마시면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수 십 개의 몽고 전통 천막이 눈에 띈다. 나는 스위스 출신남자와 독일 도르트문트 여자 캐나다 여자, 한국인 3명과 함께 71번 텐트에 들어갔다. 모양은 몽고 전통의 둥근 ‘파오’지만 사각철근을 용접한 골조위에 일반 텐트를 쳤다. 바닥은 30-40cm 정도의 철 앵글 다리를 만들어 마루를 깐 위에 텐트를 씌워 놓았다. 한 개의 작은 문을 들어가니 찻잔과 다기 세트가 얹힌 작은 탁자, 세수 대야, 바닥 깔개 침구, 이불이 한 개 씩 놓여있다. 수 십 개의 텐트 중앙 초원 위에 파오 모양의 높고 큰 등근 콘크리트 화장실이 있다. 앞쪽에 큰 무대가 있는 대 식당으로 가서 저녁식사를 하였다. 저녁 식사 중 같이 온 사람 중에 오는 교수라고 하는 것 같은데 영어가 능숙하고 독일, 미국에서 공부했다고 하는 중국인이 와서 독일인들과 독일어로 대화를 능숙하게 한다. 독일어 교사라고 하는데 독일어가 술술 나오지 않아 부끄럽고 난처했다. 나머지 두 한국인도 영어가 조금 되는 것 같다. 중국인들은 보통 영어가 능숙하고 네델란드인(부모 중국인), 프랑스인(부모 중국인)들은 자국어와 중국어가 능숙하다. 외국어에 있어서 한국인들이 생각할 부분이 무척 많다. 내가 하는 4개 언어가 모두 부실하다. 어찌해야 외국어를 잘 하는지 잘 알고 있지만 실천을 안 하니 아무 소용이 없다. 뭔가 다른 변화가 필요하다. 행동만이 철학이라고 하는 말이 실감이 난다. 불에 구은 통 양 한 마리를 작은 수레에 얹어서 밀고 들어온다. TV에서 본 적이 있는 가수들이 노래하며 종업원들이 화려한 차림으로 합창하며 따라오고 흰 긴 천을 덮은 손에 술잔을 받쳐 들어 손님에게 권한다. 머리까지 완전한 통 양고기를 신속한 동작으로 잘라서 접시에 담아 상으로 가져간다. 통 양의 배 속에는 통배추 덩이를 채워 모양을 만들었다. 우리 식탁에 놓인 삶은 고기보다 구운 통 바베큐가 더 맛이 좋다. 다른 상에는 말고기라 하여 먹고 있는 곳도 있다. 풀기 없는 쌀밥, 빵이 나온다. 저녁 식사 후 9시. 밤하늘이 무척 맑아 별빛이 초롱초롱하다. 5-6발의 불꽃축포를 쏜 후 춤, 노래 전통악기 등의 야외 무대공연이 시작 되었다. 같은 파오의 독일여자, 독일 남자와 한 팀이 되어 구경을 하고 광장 가운데 캠파이어 불을 켰다. 많은 사람이 소리 지르고 손을 잡아 원을 그리며 불꽃 주변을 돈다. 공연이 끝날 무렵에 비가 쏟아져서 많은 사람이 가버렸고 바람이 많이 불어 날씨가 무척 춥다. 우산을 펴서 구경을 끝까지 한 후에 파오에 돌아와 11시쯤 잠들었다. 밤중에 천둥소리가 많이 나고 비가 엄청나게 쏟아졌다. 5시 43분 기상하여 大同에서 2元주고 샀던 양날 면도기에 1,5元을 준 면도날을 끼워서 공중변소에서 면도와 세수를 하였다. 새벽에 말을 타러갔는데 50元이라고 하여 그냥 뛰기로 하여 달렸다. 철조망 끝까지 500m달렸는데 숨이 차다. 다른 말을 몰고 오는 부부를 만나 40元에 초원을 한 번 돌기로 하였다. 딸이 있다는 마부는 몽고말을 못하며 38세이고 漢族이라고 한다. 나보다도 많이 늙어 보인다. 약 2km를 말을 타고 이동하였는데 현재 위치는 해발 1700m라고 한다. 아침 식사 후 말을 타고 달려오면서 수건 줍기, 돈 줍기, 몽고 씨름, 말 타기 등을 구경하는 동안 소낙비가 조금씩 오간다. 많은 서구 유학생들이 말을 타려고 줄을 서 있는 동안 나는 대 식당 옆의 초원에서 양을 잡는 것을 구경하였다. 여러 개의 풍차가 왜 돌지 않고 멈춰 있는지 물으니 양을 잡고 있던 사람이 10시간 충전하면 자동으로 멈춘다고 한다. 이곳에서 쓰는 전기는 풍차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한다. 양을 잡는데 머리 뒤쪽에 뾰족한 칼을 꽂으니 금방 쓰러진다. 가슴 아래 명치끝의 배를 갈라 손을 밀어 넣어 심장을 분리 했는지 손에 피가 묻어난다. 영 움직이지 않게 되자 뒷다리에 칼집을 내고 입을 대어 바람을 불어 넣으니 가죽 틈새로 바람이 풍선처럼 되면서 몸과 가죽이 분리된다. 구멍을 냈던 다리를 끈으로 꼭 묶어서 누르니 곳곳의 가죽이 분리된다. 조그만 아이가 다리를 잡아준다. 10마리 양을 차례로 껍질을 벗겨 벗긴 가죽으로 다시 싸둔다. 양들은 크게 반항하지 않고 죽는다. 94개의 파오 반대편에 콘크리트 호화 파오도 있다. 11시 40분 숙소를 출발하여 5분 뒤에 숙소 5km를 표시한 갈림길을 지나 11시 53분에 언덕배기에서 버스를 내렸다. 도로 옆에 보이는 작은 산정의 깃발을 보고 약 7-8분 쯤 맨 먼저 올라가는데 젊은 서구 유학생 한사람이 초원을 가로질러 앞서 간다. 모두 가쁜 숨을 몰아쉰다. 정상의 가장 높은 곳 돌무더기에 박힌 기둥에 여러 가닥의 줄을 쳐서 원추 모양이 된 각각의 줄에 여러 가지 색깔의 천을 달아 놓았다. 제사를 지내거나 의식을 행하는 성스러운 곳이라고 한다. 전망이 아주 좋아서 멀리까지 보이는 곳인데 이 부근에서는 이만큼 높은 곳이 없다고 한다. 다른 한 팀은 계곡 아래쪽에 있는 몽고 전통 시골 마을에 가서 삶은 감자를 얻어 왔다. 전통 마을도 보고 싶었지만 시간상 산정이나 전통 마을 중 어느 한 쪽을 선택하여 다녀오는 것이다. 2시까지 점심을 먹고 卓資山을 출발하여 8분 뒤에 卓資山 톨게이트를 지나 15시 45분 豊鎭 收費站, 16시 19분 古店 收費站을 통과하여 大同에서 식사를 하고 鑫三環 大酒店에서 샤워와 휴식을 한 후 18시에 외출하여 걸어서 大同 시내 관광을 하였다. 먼저 명태조 주원장의 13째 아들 주계대의 저택의 정문의 일부라고 하는 九龍壁을 구경하였다. 남겨진 정문의 일부 벽 하나가 이 정도라면 저택은 얼마나 컸을까 생각을 하니 감이 잡히질 않는다. 市 博物錧인 華嚴寺와 善化寺는 문이 닫혀서 안쪽은 구경하지 못하였고 네거리에 있는 鼓樓를 보고 돌아 와서 저녁 식사를 하고 22시 쯤 대동 역에 도착하여 휴식하였다. 23시 밤기차의 3단 침대 열차를 타고 월요일 아침 6시 30분에 북경 역 도착하였다. 미리 대기되어 있던 버스에 승차하여 7시 북경 역을 떠나 어언 대학교에 내리니 7시 30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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