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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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화(48)
2006.12.25 03:42
Ⅳ, 나오는 글
- 春秋筆法(중국인들의 역사 서술 방식)-
중국은 옛 문헌에 나타나는 東夷족(고조선)시대는 대체로 전설상의 시대라고 이야기하며 감추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秦始王도 이전의 東夷족의 漢族 지배역사를 없애는 방법으로 焚書坑儒를 단행하였다. 여기에서 중국인들의 특유한 역사서술 방식을 볼 수 있다. 자신들에게 불리한 역사는 쓰지 않거나 없애 버린다는 것이다.
당나라(선비족 왕조?) 멸망이후 漢族은 북방의 통일된 세력으로 인하여 강 아래로 밀려나서 文弱한 왕조만 유지되고 있었고, 황후나 후궁을 북방민족에게 보내어 禮를 갖추는 힘없는 모습의 역사가 기록되고 있다.
이후 중화민국이 등장할 때까지 북방까지의 통일이 한 번도 없었음에도 최근의 동북공정은 대한민국이 분단 된 틈을 타서 중국이라는 우산을 씌워 漢族만이 대륙의 주인인 것처럼 쓰고 있다. 동북공정이란 제국주의를 교묘하게 미화시킨 단어일 뿐이다.
진정한 국경은 압록, 두만강이 아닌 그들이 자랑하는 만리장성인 것이다. 담을 쌓을 때는 어느 한쪽은 자기 땅이 아닌 것이다. 우리의 힘이 강해지면 만리장성이라는 담을 넘어온 漢族은 제 땅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다음의 이스라엘 수상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나의 건강이 극히 나쁘다는 의사의 진단서가 없으면 나는 수상이지만 계란 한 개를 내 마음대로 먹을 수 없습니다. 그것을 유럽시장에 팔아서 무기를 사지 않으면 이스라엘은 생명을 지킬 수 없습니다. 평화란 힘이 있을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2천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철조망 속에 가두고 자기 생존을 외치는 이스라엘이 잘한다는 뜻은 아니고 그들의 생존에 대한 정신만은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다.
좀 더 얘기하면 이스라엘은 남녀 모두 2년 6개월의 군대생활을 해야 되고 이 기간에 그들이 습득할 수 있는 최대한의 무기 다루는 법을 배워온다는 것이다. 전투기, 탱크, 미사일 등 모든 자기나라 무기를 다루는 법을 모든 남녀군인들이 2년 6개월의 군복무 기간 중에 다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말단병사에게까지 장교교육을 마친 북한의 군인들 보다 더 높은 군사 교육을 시키고 있는 것이 유대인들이다.
물론 이스라엘도 핵무기 공장이 여러 개 있고 각 종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본시 이스라엘에서는 남자 3년 여자 2년의 군복무를 했었는데 여성쪽에서 같이 3년으로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남녀 똑같이 2년 6개월로 조정하였다고 한다.
중국이 자기 역사라고 주장하며 소수민족이라고 하는 북방계열의 왕조는 요나라, 원나라, 금나라, 청나라로 이어지면서 이들 모두 고조선, 고구려, 신라, 고려, 조선으로 이어지는 현재 우리민족과 똑같은 구성원인 것이다. 같은 북방지역 민족을 두고 몽고, 흉노, 선비, 말갈, 여진, 거란, 만주족 등 각각의 명칭은 단순히 중국인들의 고등수법인 ‘以夷制夷’ 정책의 한 술수에 지나지 않으며 북방의 모든 민족은 오로지 몽고족인 고구려인으로 통칭해야 한다.
그것은 13억 중국인구 중 90% 한족이고 나머지는 55개 소수민족이라고 하는 것과 똑같은 논리이다. 어찌해서 넓은 대륙에 한족만이 90%이상 분포되어 있다는 말인가? 말이 되지 않는 자기중심 논리이다.
중국이 多民族國家이면서도 90% 이상 漢族이라는 말이 가능한 것은 외모에서 구별이 어려운 똑같은 아시아인이라는 데 있다. 같은 다 민족국가라도 미국은 흑, 백, 황인종 같이 외모가 확연히 구분되기 때문에 중국처럼 한족 90%라는 말이 불가능하다.
고구려 유민이 중심이 된 원나라는 몽고인을 규합하여 세계 최대의 제국을 건설한다. 이 때 漢族은 4등급의 낮은 민족이었다. 몽고는 고려와 연합정권을 이루어 혈연으로 고려황후를 맞이하여 원나라의 지배층을 형성한다.
조선건국시기에 원의 고구려 제국에 대항하여 일어난 明은 북방지역까지 진출하지 못한 상태인데 이 때 이성계 일파의 가족중심의 이기주의적인 발상이 역사의 흐름에 큰 획을 그어 아시아 동단부로 밀리게 된다.
자세히 보면 고려를 멸망시킨 조선의 중추세력인 이성계 집안은 민족의식이 없는 원나라 다루가치로서 6대에 걸쳐 함흥지방에 근거를 둔 집안이었다.
원의 쇠퇴기를 틈타 군사기밀을 가지고 고려에 투항하여 함흥지방으로 고려영토를 넓힘으로써 고려공신에 편성된 신흥귀족인 것이다. 이성계의 최대 실수는 왕조를 훔치기 위해 위화로 회군을 단행한 것이다.
압록강만 넘어서면 북쪽으로 밀려갔던 元과 연합하여 새로 일어나는 明을 치고 고구려를 대륙에 세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집안 이기주의에 집착한 이성계의 실수는 두고두고 한국민족을 어렵게 하는 크나큰 부담으로 남겨졌다. 조선이 계속 귀족들의 집안 이기주의에 집착하는 동안 일본은 국가지상주의의 꼭대기에 막부를 형성하여 온 국민의 생활을 도덕성을 중심으로 일본정신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서양제국주의 시기에 천황에게 실권을 넘겨 세계 속에 우뚝 서게 된다.
명나라는 고구려 연합제국 元에 대항하여 일어났으나 그 힘이 미약하여 원을 대신한 金나라가 등장한다. 金나라는 신라후손 金函普라는 사람이 고구려 유민을 규합하여 세운 나라이다. 이후 ‘淸’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明을 무너뜨리고 대륙을 모두 차지하여 아시아에 다시 신라 후손이 세운 고구려제국이 등장한다.
청나라 末에 서양 제국주의자들과 일본의 등장으로 아시아 세력 균형이 틈이 생긴다. 이 때 漢族 출신 손문이 고구려 제국 淸에 대항하여 三民主義, 滅滿興漢의 미명 아래 중화민국을 건설하여 장개석에게 넘긴다. 신무기를 西歐에서 공급받은 장개석은 초기에 대륙의 많은 부분에 세력을 얻었으나, 모택동의 공산당에 패배하여 대만으로 밀려나고 대륙은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선다. 모택동은 특별한 군사력을 갖지 못한 유목 국가인 여러 지역을 공산군의 힘으로 정복해 간다.
모택동은 漢族 중심주의를 내세워 漢族으로 되지 않은 주변 민족을 모두 漢族으로 바꾸어 중국이라는 우산 속에 소수민족이라 하여 제국주의를 펼쳐오고 있다. 장개석 밑에 있던 많은 두뇌들이 모택동을 도와서 공산정권을 세우고 이들이 현재 중국의 기본 틀을 만들게 된다.
목축이 주업인 여러 지역에 제대로 된 軍隊가 없는 틈을 이용하여 혁명의 이름아래 만들어진 공산군이 진주하게 되어 모두 중화인민공화국의 깃발이 날리게 된다.
미국이 중심이 된 2차 대전 승전국들이 전쟁 후 남은 무기를 처분하기 위해 아시아 동단부(한반도라는 명칭은 일본중심 단어로서 좋지 않음)에 韓國戰을 일으킨다. 잔여 무기룰 처분하는 韓國戰爭 3년간에 걸쳐 한국인들의 수난과 민족 간의 골은 치유되지 못한 채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소용돌이 속에도 모택동은 군대를 나누어 무장하지 않은 티베트를 무참히 짓밟아 중국 오성홍기를 꽂아버린다. 북방지역은 몽고까지 진출하였으나 러시아 지배하의 몽골 공화국은 정복하지 못 한 채 중국 공산군 점령지를 내몽고라 하여 다시 중국 깃발을 세우게 된다.
한국이 분단 상태에서 신음하는 동안 중공은 공산군을 이용하여 이웃 나라들을 침략해 갔고 티베트지역에 철도건설, 다시 서북, 동북공정이라 하여 막대한 돈을 집어넣어 철도, 도로건설 등으로 이웃 지역을 약탈해 가고 있다.
아시아 동단부 한국의 급속한 발전과 통일기운은 중국에 큰 압박카드가 되어 이제까지 방치해 오던 고구려 유적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록을 하고, 고구려 역사와 발해 역사를 중국 역사로 포함시키고 있다.
더구나 경제력이 높은 남한과 군사력이 강한 북한의 통일은 역사적인 맥락에서 대륙에 다시 고구려 제국의 등장을 약속하게 한다. 더 늦기 전에 티베트, 몽고 등 중국을 에워싼 나라들과 연합하여 중국이라는 제국주의 우산을 걷어내고 각 민족에 어울리는 문화 창달의 場이 형성되어야 할 일이다.
- 留學은 국력이다. -
등소평은 프랑스 유학파이고 현재 중국 각 대학에는 하버드를 비롯한 세계최고대학 출신자들이 교수로 활약하는 숫자가 엄청나게 많다.
충남대학교 연수중에 중국대사관 직원 안옥상씨의 해외 留學에 대한 이야기는 중국의 급속한 발전의 힘은 海外留學에서 온다는 것이다.
문화란 물과 같아서 높은 곳에서 아래로 흐른다. 그냥 두면 오래 걸리지만 留學을 가면 먼저 배워올 수 있고, 먼저 배운 민족이 그렇지 못한 쪽을 정복해 가는 것이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의 핵심도 해외 留學의 장려가 그 핵심이며 이토히로부미가 런던대학출신이다. 중국은 ‘천안문 사태’ 당시 美國에 있는 中國 留學生들에게 미국의 책략으로 미국 시민권을 주게 되어 중국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에 당시 정부에서는 ‘어디에 있어도 중국인이다.’ 라고 하여 오히려 수십 배로 국비 유학생을 늘렸다고 하는데 그들이 모두 현재 중국건설에 크게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留學은 國力이다’ 그러나 현재 韓國 海外留學의 실태는 생각해볼 부분이 많다. 무분별한 개인 해외 留學은 國富流出이 된다. 어느 수준에 이른 사람을 국가의 돈으로 유학을 보내면 愛國心과 先進文物 習得을 동시에 이룰 수 있다.
중국유학은 모두 국비 유학생이고, 극소수 부유층만이 私費로 유학을 떠난다. 이들은 자기를 유학시켜준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한다. 반면 내 돈으로 내가 다녀온 한국유학생이 국가의 부름에 따르지 않을 때 어떻게 할까? 더구나 조국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조기유학을 떠나는 것은 더욱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 漢字는 한국 민족의 고유 글자인 韓字 -
또한 漢字라는 명칭은 漢族의 글자라는 뜻이다. 그러나 갑골문자의 발굴지가 산동성 옆 하남성 안양현 이라고 하면 옛 고조선의 영역이 된다. 한마디로 ‘漢字는 한국 민족의 고유 글자’ 이다.
그 증거는 발굴 지역은 말할 것도 없고 당나라 이전의 漢字 발음이 현재 한국에서 쓰고 있는 한자발음과 똑같다는 것이다. 즉 ‘漢字는 한국인이 옛날부터 개발하여 현재까지 쓰고 있는 고유한 韓國글자다.
몽고, 티베트, 만주 곳곳 에는 자신들의 고유한 글자가 있으며 지금도 쓰고 있다. 북경 자금성의 현판에는 漢字와 만주글자가 함께 쓰여 있다.
- 韓民族 벨트 형성 -
몽고, 만주, 한국, 일본은 모두 언어 배열이 유사하여 배우기 쉽다. 그러나 중국어는 많이 다르다. 몽고, 만주, 한국은 혈통에서 많은 동질성을 가리지만 漢族과는 다르다.
몽골시베리아 벨트를 형성하여 이것을 이어주는 하나의 끈이 필요하다. 만리장성 북쪽은 모두 같은 民族이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고 이에 따르는 일이 행해져야 한다.
이러한 일은 정부가 나설 때는 많은 문제점이 생기지만 민간 차원의 일일 때는 그렇지 않다. 그린닥터스 라는 의사들 모임에서 고구려 지방을 돌며 인술을 펼치는 일은 크게 환영할 일이며, 다른 모든 분야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나야한다.
각기 다른 고유한 글자를 배우되 손쉬운 소리글자 한글 가르치기 운동이 필요하다. 사실 동북 3성의 조선족 자치주에서는 우리말과 글을 가르치며 우리 역사를 배워왔다.
그러나 요즈음 한국의 진출이 많아진 이후로 무수히 많은 초등학교가 문을 닫고 다른 시설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기막힌 일이다. 약간의 지원만 있으면 유지될 수 있는 학교가 중국 당국에서 교사에게 주던 봉급을 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교사들은 모두 수입이 많은 관광 가이드나 다른 직장을 찾아 떠났다고 한다. 고구려 부흥운동을 그냥 운동이 아니고 잃어버린 역사를 찾고 흩어진 고구려인들을 결집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조금 덩치 큰 나라들이 엄청난 핵무기를 갖고 있으면서 무기 장사에 혈안이 되어 전쟁을 일으킬 곳을 물색하는 일은 없어져야한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우리나라 땅을 다시 전쟁터로 만들려는 획책은 무조건 받아들일 수 없고 끝없이 두 개의 무기 시장을 유지하려는 주변국들의 통일 방해 분단 고착의 어떠한 술수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국민이 열심히 배우고 알뜰하게 살아가야 할 일이다. 소비의 미덕이라는 이야기는 분단된 현실에서는 맞지 않는 일이다.
- 어학연수란 보통의 연수와는 다르다.
해당 나라들의 높은 기술과 문화 문명 제도 등 모든 것을 배우는 짧지만 효과적이고 유용한 특별한 형태의 留學이다.
부산 교육청과 북경 어언 대학 그 외에 이번 연수에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중국에서 얻은 지식을 내 나라 학생들에게 돌려주는 온 힘을 기울일 것을 다짐하며 보고의 글을 마치겠습니다.
모두 건강하십시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