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박지원승덕피서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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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화(48)
2006.12.25 03:01
3. 承德 避暑山莊
성도고등학교 박선화
2006년 8월 5일 토 맑음.
承德 避暑山莊 가는 날, 5시 10분 語言大學 會議 中心 기숙사 앞을 출발하였다. 일찍 출발해서인지 운무로 흐릿한 도로가 텅 비었다. 도로상에 사고가 나서 트럭이 옆으로 쓰러져 있고 앞쪽에 청소차와 승용차가 접촉해서 세워져 있다. 중국의 교통질서가 문란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종종 교통사고 현장을 보게 된다.
6시 50분에 承德 144km라는 입간판 통과. 7시 57분 京承 국도 톨게이트 10元, 偏僑 80km 입간판을 지나 8시 고속 톨게이트 진입, 8시47분 承德 톨게이트를 나가면서 25元의 통행료를 지불하였다. 약 1분 뒤 承德 汽車東站.
높이가 다른 橡膠壩라고 표기된 물막이 보가 대 여섯 개 시내 중심을 흐르는 武烈河에 만들어져 있고, 각각의 물막이 위쪽은 호수를 이루어 물놀이 배가 많이 오고 간다. 9시 承德시 武烈河를 가로지르는 松鶴橋 다리를 건너 避暑山莊 麗正門을 들어갔다.
피서산장이라는 현판이 걸린 입구에서부터 전시된 다양한 궁중 생활용품, 도자기, 청동 세공품, 생활했던 방, 침실, 거실 모두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황실 가족들의 모습이 사진과 같은 형태로 잘 그려져서 전시되어 있다. 강희황제 늙고 여윈 얼굴, 귀부인의 풍모를 지닌 황후의 사진에서 고려(신라)인의 피를 읽을 수 있는데 그 부분의 이야기는 모두 생각을 안 하는 것 같다.
마의 태자의 신라 부흥의 꿈이 금강산에서 무너진 후 ‘김 함보’라고 하는 신라 사람이 고구려 땅으로 가서 고구려 유민(여진족)을 규합하여 세력을 확장하고 7대 후손인 아골타가 금(시조왕의 성)나라를 세우고 고구려(만주) 지방의 그 후손들이 후금을 일으켜서 다시 청 이라고 이름 하여 옛 고구려 땅을 장악하였다.
신라 부흥의 꿈을 옛 고구려 땅에서 이룬 것이다. 우리가 우리 조상 경주 김씨의 땅을 밟고 서 있는 것이다. KBS 역사 스페샬에서 이러한 내용이 적힌 중국의 역사책(金史, 松漠紀聞) 페이지를 화면에 비추면서 소개하였는데 모두 쉽게 잊어버리는 것 같다.
역사란 ‘현재 강한 민족’ 중심으로 쓰여 질 뿐이다. 문화적으로 앞서가던 고구려의 모든 문화 유물이 왕조의 멸망과 함께 중국 것으로 바뀐 것처럼 모든 다른 민족의 문화가 중국이라는 우산 속에서 중국 문화로 바뀌었다.
고구려 유물은 재단장하여 유네스코 세계 유산 등록을 하고 관광 수입을 올리며 옛 고구려 땅 우리 민족을 중국의 소수 민족이라고 하며 지금의 한국인과 다르다고 열을 올린다. 남과 북이 서로 돕는 모습에서 통일이 되었을 때를 불안하게 여기는 것은 아닐까?
방치만 하던 고구려 유산을 다시 제 것으로 챙겨가는 저들의 모습은 한족 중심의 팽창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나중에 아시아에 한족 아닌 사람이 어디 있을까? 힘을 기를 일이다. 힘이 가장 강한 나라에 留學을 가서 그 힘을 배워서 강한 나라로 거듭나야 할 일이다. 그러나 배우기만 하면 항상 2등이 된다. 배운 것을 바탕으로 재창조하여 앞서가야 한다.
세 개의 큰 호수를 돌아가는데 호숫가 정자에서 나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중국 전통악기를 이용하여 노래를 부른다. 남자가 한 곡을 하고 나면 여자가 또 한 곡을 하며 특이한 목소리로 노래를 하고 있다. 호수 가운데로 이어지는 다리를 지나 열하천에 이르러 단체사진을 찍었다. 많은 사람들이 ‘열하천’이라고 쓴 돌비석에 몰려서 사진 찍기가 아주 어려웠다. 연암 박지원의 발자취가 서려있는 곳이고 ‘열하일기’의 무대가 되는 곳이기도 하다.
얼마 전 KBS 고두심 역사 스페샬에서 박지원 열하일기의 순서를 따라 중국의 곳곳을 취재를 하였다고 하는데 그 열하의 발원지가 되는 온천이 나왔다는 곳이다.
역사의 숨결과 박지원의 발자취를 읽을 수 있어서 친근감이 들었다. 여행 기간은 5월 25일부터 10월 27일까지 약 5 개월 간 이었으며 1780년 6월 24일-8월 20일까지 견문한 내용을 쓴 것이 열하일기이다. 한양-박천-의주-요양-성경(심양)-거류하-소흑산-북진-고령역-산해관-풍윤-옥전-계주-연경(북경)-밀운성-고북구-열하 등을 다녀왔다.
사신으로 연경(북경)에 건륭제를 만나려고 왔는데 이곳 피서 산장에 피서를 하고 있어서 사신 일행이 이곳을 찾게 되었다고 한다. 본시 뜨거운 물이 솟아서 강을 이루었다고는 하나 현재는 깨끗지 않은 물이 웅덩이처럼 고여 있어서 생각만큼 감격을 주지는 못했다. 몽고 파오 등 건축물들을 둘러보고 다시 입구 쪽으로 나와서 산성 횡단 버스표(40원 × 7명 = 280원)를 샀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30분쯤 기다려도 탈 수가 없었다.
총무를 맡으신 강수희 선생님께서 돌아갈 시간 때문에 매표소에서 돈을 되돌려달라고 갔는데 직원이 와서 작은 승합차를 한 대 주선하여 기사에게 ‘한국인이니까 잘 모시라’고 하며 태워준다. 줄을 서있는 사람들에게 미안하였지만 자국민보다 외국인인 우리를 먼저 태워 준 데에 모든 선생님들께서 ‘謝謝’라고 인사를 하였다.
피서산장은 작은 산 하나와 세 개의 호수를 산성으로 둘러싸고 있는데 버스로 약 한 시간(12시 10분 - 13시)이 걸린다.
산을 돌아가다가 가장 높은 지점 정자에 올라 인구 342만의 承德 시가지를 내려다보았다. 다시 전망 좋은 성벽위에서 건너 편 산기슭의 포탈라궁과 보령사 등을 건너다보고 규모가 엄청나다는 것을 느꼈다. 산속 곳곳의 휴시 공간과 임시 궁전 등을 둘러보고 나오니 13시쯤 된다.
주차장 옆 나무 밑 풀밭에 깔판을 깔고, 송남경, 강선애, 홍성자 세 분 선생님께서 손수 밥을 지어 싸오신 도시락과 상추, 배추, 풋고추, 오이, 피망 등의 야채와, 쌈장, 고추장 등을 곁들여서 김치와 함께 야외 뷔페가 차려졌다. 오랜만에 맞보는 한국식 진수성찬이다. 북경에서 승합차를 몰고 온 기사에게 같이 식사를 하자고 하였더니 먼저 식사를 하였다고 한다.
식사 후 라마교 사원인 보령사와 포탈라 궁을 관람하였다.
갈색의 팔이 긴 옷을 입고 특이한 모자를 쓴 악사들이 분향하는 사람이 있을 때마다 음악을 연주해 준다. 이 라마사원에서 본 기마민족의 전투 장면은 북방민족과 한족의 싸움 모습일 것이다. 라마교의 절 자체가 이민족의 것인데 중국인들이 차지하고 관광 수입을 올리고 있다. 무슨 공장을 세워서 이렇게 엄청난 수입을 올릴 수 있을까?
큰 절 건물 앞 분향대가 철로 만들어졌는데 배 모양을 하고 있고, 재가 수북이 쌓여있다. 돈이 향으로 바뀌어 타버린 것이다. 포탈라 궁전은 산기슭에 기대어서 지어진 엄청나게 큰 궁전인데 채광을 위해 만들어진 창문이 있고, 벽에 창문 모양만 붙여 놓은 곳도 있다. 큰 산 하나를 성벽으로 둘러싸고 그 속에 궁전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