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07차 낙동정맥 20차 경북 경주 어림산(510.4m)
일 시: 3월23일(일) 오전 7:00
출발장소: 명륜동 전철역 동편다리
산행로: 시티재-호국봉(382.9)-야수골갈림-어림산(510.4)-마치재-남사봉(471)-한무당재
소요시간: 14.2km(6.0h)
준비물: 회비30,000원,중식,간식,식수,여벌옷,랜턴
*산이야기
안강휴게소 광장을 가로질러 우측 고갯마루가 시티재다. 안강과 영천을 이어주는 4차선 국도가지나는 곳으로 1918년 일제가 발행한 지도를 보면 시령현(柴嶺峴)이라 적혀있어 검불나무와 같은잡목이 많은 곳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고갯마루에는 정자나무를 사이에 두고 옛 2차선 도로가남아있는 모습이다. 4차선 국도를 무단횡단하여 호국봉으로 향한다.
호국봉(護國峰)은 낙동강 방어선의 최대 격전지였던 안강전투가 있었던 곳으로 한국전쟁 초기 1950년 8월 11일부터 18일 까지 국군 수도사단이 북한군 12사단을 포위 격멸한 곳이라고 하는데, 호국봉 서쪽 아래 영천시 고경면 청정리에는 국립묘지 격인 '국립영천호국원이 자리하고 있다.
호국봉에서 200m 가량 더 진행하면 돌탑의 흔적이 남아있는 382.9봉을 지나면서 우측으로는 고경저수지가 얼핏얼핏 내려다 보이고 좌측으로는 안강평야가 아스라이 펼쳐져 보인다.
옛날 야수들이 들끓던 골짜기라서 이름된 야수골, 깊게 패인듯한 안부 갈림길로 내려서자 좌측 평지말의 보현사와 우측의 논실리 야수골을 이었던 옛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논실리의 개척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400여년 전 처음으로 김녕 김씨가 이 마을에 정착하였고 임진왜란 때 영천 의병장 권정 장군과 김귀희(金貴希)장군이 이곳에서 거문고와 비파소리로 암호를 정하고 제반 작전을 의논하여 왜군을 크게 무찔렀다 하여 이 마을을 논실(論瑟)이라 하는데, 일제 때 강제로 답곡(沓谷)이라 지명을 바꿨고 광복 이후 이곳 주민들이 다시 논실동(論瑟洞)으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308봉을 한고비 올랐다 내려선 후에 다시 본격적인 된비알을 올라서면 어림산 정상이다.
한국전쟁 당시 국군과 북한군간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으로 신라 때 왕이 둘러보고 간산이라는 뜻에서 이름이 유래하였다고 한다. 밋밋한 육산으로 사방이 잡목숲으로 둘러쌓여 있어 특별한 볼거리는 없지만 정상표지판과 삼각점이 있을 뿐이다.
올라왔으니 또다시 내려가는 길, 30분 정도를 내려가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마치재다.
남사고개라고도 불리우는 마치재(馬齒재, 馬峴)는 이곳 지형이 말의 이빨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경주 남사리와 영천 덕정리를 잇는 927번 지방도로가 산허리를 타고 넘어가고 있는 곳이다.
앞쪽으로는 또다시 올라야 할 마지막 봉우리 남사봉(南莎峰)이 고개를 쑥 빼들고 있다.
밋밋한 남사봉 정상에 올라 휴식을 취한뒤에 목적지인 한무당재로 향한다. 우려했던 바와 다르게 한무당재로 가는 길은 거의 평지와 다름없는 완만한 길이 이어지다가 한무당재를 얼마 남겨두지 않고 작은 봉우리 몇 개를 지나자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감도는 한무당재가 내려다 보인다.
청석골재, 할미당재로도 부르는 한무당재는 중국의 한신장군을 모시는 무당이 살고 있었다고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909번 지방도가 지나는 곳이다.
어느새 영천시계의 끝자락가까이 내려왔으니 낙동정맥의 끝인 몰운대도 이제 얼마남지 않은 것 같다. 다음 구간은 한결 가볍게 걸을 수 있길 기대하며 한무당재를 내려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