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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2-27 03:21
   *<훌륭한 선배님> : 윤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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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박명식44
    조회 : 201  


* 윤인구(尹仁駒) :1903~1986 .교육자.종교인. 부산출생.

 

* 1919년 부산 동래고등보통학교 3학년 때 3.1운동에 참가하였다가 퇴학당한 다음,성직자로서의

  인생목표를 세우고 메이지학원(明治學院)신학부를 거처 1931년 영국 에딘버러대학원을 수료하

  고 귀국하여 같은해 9월 진주장로교회 강도사(講導士)로서 첫출발을 하였다.

 

  1941년 조선신학원을 개설하고 교장이 되어 기독교정신에 따른 민족교육사업에 투신하였으나

  일제탄압으로 교장직을 사임하여야만 했다. 광복을 맞아 1945년11월 부산광복교회를 세워 성직

  자 로서의 길을 계속 밟으면서도,미군정하 경상남도 내무국 학무과장으로 부임, 당시 무엇보다

  민족의 고등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고,광복기념사업으로서 부산대학 창립안을 계획하여 이듬

  해 5월 부산대학을 개교시키고, 9월에 따로 부산사범학교를 설립하여 초대교장이 되었다.

 

  광복 직후의 어려운 여건 속에서 민주적이고 원활한 학무행정을 수행하고 불굴의 노력과 계획

  의 성공적 실천으로 미군정장관 표창을 받았다.

 

  1953년 6.25의 상처를 딛고 부산대학을 종합대학으로 승격시켜 같은해 11월 초대총장으로 부임

  하여 1960년 5월 사임할때까지 현재의 효원에 캠프스를 이전시키는 등 교육재건에 공로를 세워

  경남교육회의 특별공로상(1958)과 부산시문화상(1958)을 수상하였다.

 

  그의 교육관은 진리,자유,봉사였고 ,이것은 1961년 연세대학교 총장으로 취임하였을 때도 일관

  되게 견지되었다.

 

  1964년 총장 사임 후에는 지병과 싸우면서도 종교철학연구와 인재양성에 힘섰다. 종교계와 교

  육계의 큰별이라고 지칭될만큼 정계진출의 유혹을 뿌리치고 온갖 시련과 불의와 싸우면서 복음

  사상를 바탕으로 한 민족교육에 헌신하였다. 

                                                                                  <한국학 중앙연구원 전산정보 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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